2026.5.31.주일
창세기 50장 15-26절
형들의 두려움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 갚지나 아니할까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히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의 형제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의 신앙고백과 위로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응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날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의 장수와 후손
요셉이 그의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 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출애굽을 기다리는 요셉의 죽음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은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으 ㄹ메고 올라가겠다 하라하였더라.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
지옥과 천당을 오갔던 삶을 살았던 꿈 꾸는 자가 110세에 삶을 마무리 하였다.
아버지의 극진한 편애 속에서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고 성장하던 소년이
애굽의 노예로 은 20에 팔려 종과 억울한 성추행범으로 감옥살이로 13년을 보냈다.
바로의 꿈의 해석으로 일약 애굽의 총리가 되어 7년의 대풍과 7년의 대흉년을 잘 극복한다.
기근으로 가나안에 살던 야곱의 후손들이 곡식을 사러 내려와 요셉과 조우하고
야곱과 70명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이주하게 된다.
형제들과의 화해와 아버지 야곱의 장례를 치르고도
에브라임의 자손 3대를 보며 살다가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야곱이 죽고 난 뒤 형들은 자신들의 지난 죄로 인해 후한이 두려워 걱정하며
아버지 유언을 구실 삼아 용서를 구한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한 형들 때문에 안타까워 요셉은 운다.
이 모든 일들의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형들 때문에 운다.
인간적인 갈등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우선할 수 없음에도
아직 이런 믿음의 눈이 없는 영적 무지에 대해 안타까워 운 것인가?
한 번 저지른 죄는 그로 인한 죄책감이 평생을 따라 다닌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주어진 죄의 용서와 구속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이 없이는 죄의 해방과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수 없다.
죄 용서의 확신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진정으로 누릴 수 있다.
야곱처럼 요셉도 마지막 유언의 모습은 가나안 땅에 있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실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 하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것을 예언하며,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에 가지고 올라갈 것을 형들에게 맹세시킨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지, 천국을 향하여 삶의 여정은 마무리 되어야 한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구별하며 살아가야 한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나의 죄가 온전히 사함 받았음을 확실히 믿고 의심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연약하여 죄를 반복하거나 믿음이 연약하여 흔들릴 때도
하나님의 이 큰 사죄의 은총을 믿고 의심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남은 노년이 천국을 향하는 믿음의 여정, 순례길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
[ 섭리를 기억하고 약속을 바라보며 ]
야곱의 장례를 치른 후 요셉은 보복을 두려워하는 형제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합니다.
그 역시 훗 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때 자신의 유골을 가져가라고 유언합니다.
15-18절
과거 요셉을 종으로 팔았던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자 다시 두려움에서 휩싸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며 그들을 용서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죄의 기억은 영혼을 죄책감이라는 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들의 아버지의 유언을 운운한 것은
요셉의 인격과 하나님의 사죄하심을 신뢰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과거의 허물을 감추려는 안간힘으로 아니라,
이마 다 용서하신 하나님의 자비로 주어집니다.
우리 역시 스스로를 다그치는 죄책감에 붙들리기보다,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도발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하나님 아버지의 인자하심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19-21절
요셉을 해하려 했던 형들은 보복을 두려워하지만,
요셉은 '그것을 선하게 바꾸신' 하나님 이야기를 하며 그들을 위로합니다.
요셉 자신의 교만, 형들의 질투와 살의, 보디발 안의 악행,
술 맡은 관원장의 태만과 망각 모두,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게 하셔서(롬 8:28),
요셉을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지위로 인도하는 '선'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이들의 말과 행동은,
우리를 통해 선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억울함조차 하나님의 선한 계획 안에 있음을 신뢰할 때,
우리는 증오를 멈추고 이해와 용서를 모색할 수 있습니다.
22-26절
요셉은 죽음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를 시킵니다.
자신의 유해를 애굽에서 남져 두지 말고
반드시 가나안으로 메고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세상 권력의 정점에 서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을 향해 있었습니다.
입관된 요셉의 시신은 이후 400여 년간 이스라엘에게
'우리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침묵의 설교가 되었습니다.
성도는 이 땅의 풍요에 안주하는 자가 아니라,
죽음조차 가두지 못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오늘의 나그네 길을 걷는자입니다.
이 땅에서 책암을 다하되, 결코 하늘 시민의 정체성을 잃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지난날을 돌아보는 지혜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을 주소서.
=============================
[ 믿음, 소망, 사랑의 공동체 ]
찬송가 604 완전한 사랑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첫 인간 역사 이야기인 창세기의 핵심은
창조 이야기나 사건들이 아니라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사건이 아닌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창세기는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
곧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새로운 피조물들은 각기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는 인격체가 아니라,
새생명 공동체의 지체로 존재하는 '삼위일체적' 인격체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이 삼위일체로 존재하심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 형상을 우리는 다른 표현으로 '사랑'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둘이면서 하나인 것, 셋이면서 언제나 하나가 되시는 인격,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닮은 자로 지어져 가는 것이
구원이고, 다른 말로 새창조라고 합니다.
이 새창조의 결과로 다시 태어나는 피조물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화해와 용서, 사랑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공동체는 처음에는 혈연적인 가족 공동체(이스라엘 공동체)로 시작하지만,
그다음 더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영적 이스라엘)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원한 전 우주적 교회인 하나님 나라 공동체로 완성될 것입니다.
(15-21절) 이 공동체는 믿음으로 만들어집니다.
오직 믿음으로 출발하여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이 분명해질 때,
서로를 온전히 용서하고 사랑하는 새생명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새생명 공동체로 세워지는 이야기의 1막(창세기)이,
화해와 용서의 확증에 대한 말씀으로 끝나는 것은 참으로 마땅한 일입니다.
용서는 말로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강자가 약자를 용서하는 것에는
용서가 취소되지 않는다는 보증, 확증이 필요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잘못에 대해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이 감히 하나님이 하신 일에 어떻게 이의를 제기하겠느냐고 반문함으로써,
형들을 안심시켰습니다.
형들의 자녀 양육을 직접 책임지는 사랑의 수고를 함으로써
또한 용서를 보증하였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신실한 용서와 사랑을 하게 되고
그것을 형들이 확실히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이스라엘 공동체가 든든한 새생명 공동체로 세워졌습니다.
(22-26절) 그런데 요셉은 어떻게 이런 용서와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요셉의 마음에 조금의 억울함이나 앙금도 남아 있지 않았을까요?
예,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되도록
요셉에게 그 억울함을 상쇄하고도 남는 큰 사랑과 보상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애굽의 총리가 된 것과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믿음으로, 소망으로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었고 야곱에게도 있었던,
가나안 땅을 향한 소망이 요셉의 마음에도 생겼습니다(24절).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이 출애굽할 때
자기 해골을 메고 올라갈 것을 유언으로 당부한 것은,
야곱이 자신을 가나안 땅에 매장해줄 것을 요구(49:29)한 믿음과 같은 믿음입니다(25절).
영원한 본향에 대한 소망에서 나온 믿음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온전히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용서를 넘어선 사랑의 수고까지 하였습니다.
그 소망의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위해,
새계명(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을 따라 사는 연습을 했습니다.
합리적인 사랑, 주고받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코앞에 두고,
서로 누가 높은가를 따지며 다투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이런 요셉의 사랑, 사랑의 수고가 진정한 용서의 보증이 되어
형제들을 사랑의 공동체로 끌어들였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은 더 분명한 확증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첫 열매가 되심으로써,
우리에게 보증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예쁜 짓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은망덕한 자들인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랑으로,
피 흘리는 수고로, 용서를 보증하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또한 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친히 영원히, 항상 함께하시며
생명의 양식으로 부족하고 미숙한 우리를 양육하여 주신다는 보증으로
성령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4-5]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요셉이 형들을 용서했다는 말로만 끝내지 않고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책임을 끝까지 진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의 대속으로만,
우리를 용서하는 것으로만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참사랑의 사람으로 세워지기까지
영원히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말씀으로 양육하실 것을 성령으로 보증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진실된 믿음과 소망이
새생명 공동체로 부름받은 자들로 하여금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동력입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한 하늘에 소망을 둘 때,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화해와 용서의 보증이 되는 희생과 사랑의 수고가 나타납니다.
하늘에 소망을 둘 때 땅에서의 이런저런 일들,
서운한 것들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억울한 것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습니다.
하늘의 소망이 분명한 만큼,
땅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마음은 희미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랑이
더 큰 믿음을 만들어내고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를 완성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키듯이
오늘 나 자신에게 맹세를 시켜야겠습니다.
“반드시 내 소망을, 내 해골을, 하늘에 두리라.
이 땅에 아무 미련도 남겨 두지 아니하리라.”
주님,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늘 소망에 대한 분명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보증)에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용서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부터 시작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마침내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로 골인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2026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하나 됨의 비결 (0) | 2026.06.02 |
|---|---|
| 고린도전서 묵상을 시작하며 (0) | 2026.06.01 |
| 야곱의 장례 (0) | 2026.05.30 |
| 야곱의 축복 III (0) | 2026.05.29 |
| 야곱의 축복 II (0) | 2026.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