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27. 수요일
창세기 48장 8절-22절
야곱의 두 아들을 만난 야곱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 보게 하셨도다.
팔을 엇바꾸어 축복하는 야곱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장자권의 역전과 확정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
야곱이 요셉과 두 아들을 축복한다.
축복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소개한다.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 로 소개하고 있다.
이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으로 불려지기를 원하고,
세상에서 번식하기를 축복한다.
애굽의 총리의 아들, 제사장 딸의 아들로 애굽의 백성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아들, 언약 백성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가인보다 아벨을, 이스마엘보다 이삭을, 에서보다 야곱을 축복하였듯이
야곱도 므낫세보다 차남 에브라임을 장자로 축복한다.
요셉에게도 세겜의 땅을 더 많이 주었다고 말한다.
장자의 축복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인간적인 생각과, 관습을 뛰어넘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자신은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들과 함께 계시고
너희들을 인도하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을 예언한다.
야곱의 관심은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고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후손들을
약속의 땅, 조상들이 있는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확언한다.
야곱의 육신의 눈은 멀어 손자들을 구별하지 못하지만
영안은 열려서 하나님의 구원과 일하심과 역사하심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육신은 부폐하여 가나 영은 더 새롭게 되기를 기도한다.
삶의 모든 비밀을,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잘 깨닫는 남은 인생 되기를 기도한다.
먼 훗날 삶을 마감하면서 자녀들에게 야곱처럼 축복하며 떠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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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손길, 주권적 은혜]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손을 엇갈려 얹음으로
인간의 관습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택과 구속적 은혜를 확증합니다.
15-16절
인생을 가르치시고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는 신실한 목자이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나의 목자가 되어 주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부족한 양 같은 인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성품을 드러냅니다.
또한 자신을 환난에서 건지신 '구속자'로 찬양하며,
벧엘에서 시작된 언약이 허악한 세월을 뚫고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통치자가 아니라,
우리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 개입하여
연단하시고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신실한 양육자입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조차 희망의 서사로 바꾸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위기에 처해 있든 자비로운 손길로
마침내 우리를 평안의 항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8-11, 20-22절
요셉과 애굽 여인 아스낫(41:45) 사이에서 태어난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혈통을 이유로 언약 공동체에서 소외될 수 있는 존재이지만,
야곱은 이들을 반가이 맞이하여 언약 공동체에 수용합니다.
또한 야곱은 세대와 문화의 격차를
강압적인 통제나 훈계가 아닌,
진심 어린 '감사와 축복'의 언어로 극복합니다.
우리 역시 내가 정한 틀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을 소외시키기보다
야곱처럼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들을 품어야 합니다.
진정성 있는 축복의 말은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의 간극을 메우고,
젊은 세대를 언약의 새로운 주역으로 세우는 강력한 영적 동력이 될 것입니다.
12-14,17-19절
요셉은 관례에 따라 장자를 야곱의 오른손 아래 두었으나,
야곱은 의도적으로 손을 엇갈려 차남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습니다.
이는 인간의 역사가 합리적 예측이나 태생적 서열이 아닌,
하나님의 자유로운 주권적 선택에 있음을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야곱은 비록 육신의 눈이 어두었으나 영적인 명민함으로 주의 섭리를 읽어 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통념에 갇히지 않아야 하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낮은 자를 높이시며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삶을 맡기는 영적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통념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역설적인 뜻을 깨닫고 따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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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은' 복 ]
찬송가 19장 찬송하는 소리 있어
야곱은 자기가 양자로 삼은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면서,
차자인 에브라임을 장자인 므낫세보다 더 앞세웁니다.
요셉이 극구 말렸지만 강행합니다.
나이 많아 치매 증세로 판단력이 흐려진 노인의 고집일까요?
이것이 단순히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만 일어난 일이었다면
그렇게 의심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믿음의 조상들에게 공통된 일이었다는 사실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장자가 아닌 아들이 언약의 복을 상속한 것은
아브라함의 1대손 이삭부터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적 장자는 이스마엘입니다.
그러나 뒤에 태어난 이삭이 언약의 자녀,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이삭의 아들 중에 장자는 에서입니다.
이스마엘의 경우는 서자이니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에서의 경우는 그가 장자인 것이 명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의 자녀가 되어
장자의 명분을 이어간 자식은 동생인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자녀와 달리
자녀 모두가 언약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다만 장자의 축복은 장자인 르우벤이 받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런데 역시 실제적인 장자의 축복은
첫째도, 둘째도 아닌 11번째 자녀 요셉이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언약의 복 상속자들은
하나같이 혈통적으로 장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인위적으로 꾸민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 가문에 둘째 아들이 상속자가 되는 전통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복을 장자가 아닌 아들에게 상속하게 하심으로써
이 언약의 복이 오직 은혜로 받는 복임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래서 야곱도 요셉에게 이를 상기시키며 당부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유일하게 소망을 두어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은혜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적 혈통이나 능력, 서열에 따라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야곱은 자녀들에게 유언으로 축복을 하며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
조건 없는 은혜에 따라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손을 엇바꾸어 얹어 보임으로써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누군가를 축복하며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는 축복문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야곱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므낫세 같고 에브라임 같게’라 아니라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라고 축복하며
그들은 은혜의 하나님, 은혜로 주시는 구원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은혜에 소망을 둔 자들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억할 것입니다.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라는 축복문을 말할 때마다 그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그 축복이 어떤 축복인지, 그 복이 약속된 땅이 어디인지를 떠 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그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21절).
거기에서 능력과 상관없이, 혈통과 상관없이, 심지어 노력과도 상관없이,
오직 은혜에 따라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복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은 혈통이나 능력이 아닌 언약을 따라
아브라함과 이삭으로부터 야곱에게 이어졌습니다.
야곱은 또다시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이 언약의 복이 이어질 것과
그들이 세상에서 번식하(여 계속 이 복을 물려주)게 되기를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16절).
야곱의 기도대로 언약의 자손인 우리에게까지
이 조건 없는 은혜의 복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 이런 복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결코 이 복을 누릴 소망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능력도, 가문도, 노력도 부족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복이 이 복입니다.
주님, 우리에게 주신 복이 ‘므낫세 같고 에브라임 같은’ 복이 아니라,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은’ 복임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좌절하거나 의기소침하지 않겠습니다.
아무 연고 없고, 아무 일한 것이 없이도,
갑절의 몫을 받게 하실 하나님께 여전히 소망을 둡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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