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25. 월요일
창세기 47장 13-26절
돈과 가축을 받고 양식을 줌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
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그들이 그들의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토지를 받고 양식을 줌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리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요셉이 애굽의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토지법 제정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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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년과 기근의 심각성이 여실히 들어난다.
돈이 떨어지고, 가축을 팔고, 토지를 팔았다
그리고 바로의 종이 되었다.
왜 요셉은 7년 대흉년의 기간을 대비하여
백성들 각자가 곡식을 저장하고 대비하는 정책을 준비하지는 못했을까?
모든 재화가 바로에게로 속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바로는 엄청난 부를 소유하게 되고 권력은 더 강화되게 만들었다.
이것이 정말 바른 정책이었을까?
물론 많은 곡식을 범국가적으로 준비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말이다.
또한 토지법의 개량을 통한 안정적인 국가 세금을 거둬들이는 세수 정책도 눈에 들어 온다.
요즘의 무상 지급, 시혜의 혜택은 펼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백성들은 요셉에게 은혜를 얻어 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람의 목숨보다 중한 것이 어디 있으랴
결국 바로의 종이 되었다.
바로의 땅을 경작하는 신분으로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단순한 무상으로 곡식을 나눠주는 것보다
토지법을 개량하여 지속적으로 안정된 삶을 유지하게 하는 제도 개선이
항구적으로 더 나은 정책이었다.
국가적으로 볼 때도 안정된 사회 기반을 다지는 제도 개선이 된 것이다.
이 일에 요셉은 하나님의 지혜를 사용하여 현실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었다.
영적으로는 결핍이 주는 상황에서 삶의 주도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안전한 삶이라는 깨닫음이다.
무엇이 진정 더 나은 정책인지, 더 나은 선택인지 판단할 때 신중해야 한다.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잘 잘못을 판단하기 보다
지속가능한 정책이나 제도가 가져올 유익을 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주님
요셉의 지혜로운 결정으로 모든 사람이 유익을 가져오는 것처럼
당회원으로 교회를, 가정을 위해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지혜로운 결정을 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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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의 살리는 통치]
기근이 더욱 심해지자 애굽 백성은 돈, 가축, 토지까지 바치고 곡식을 얻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지혜로 토지법을 세워 사람들의 터전을 보존합니다.
12-17절
가나안과 애굽 전역을 휩쓴 기근으로
인간이 쌓아온 모든 자원을 무력하게 만드셨습니다.
돈과 가축이라는 가시적인 의지처가 바닥날 때,
백성은 비로소 생명의 주권이
자신들이 아닌 요셉(하나님의 대행자)에게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 인생의 '시냇물'을 마르게 하십니다(참조, 왕상 17:7).
이는 우리를 고립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유한한 자원에 매몰된 시선을 들어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하늘의 창고를 바라보게 하려는
사랑의 섭리입니다.
결핍은 우리가 누구에게 의탁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가장 정직한 이정표입니다.
결핍을 통해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한다면,
우리는 소유로 얻지 못할 참된 만족을 얻을 것입니다.
18-22절
애굽 사람들은 요셉을 찾아와
마지막 남은 소유인 토지를 바치고 자신의 몸을 의탁합니다.
기근으로 인한 죽음의 위협 앞에서
자기 무능을 고백하며 통치자에게 주권을 완전히 이양한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 여정도 이와 닮았습니다.
나의 소유와 주권을 하나님께 완전히 넘겨 드릴 때,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분의 통치 아래서 가장 안전한 보호를 받습니다.
나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무거운 강박을 내려놓고
주님의 소유가 되는 결단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생명을 보존하며 영적 안식을 누리는
가장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23-26절
요셉은 토지를 받은 뒤 백성에게 종자를 나누어 주며
다시금 경작의 희망을 심어 줍니다.
수확의 절반, 혹은 3분의 1을 소작료로 부과하던 당시 관습에 비추어 볼 때,
수확의 5분의 1을 상납하게 한 법은
백성의 생존권을 고려한 정책이었습니다.
이처럼 요셉은 세상의 구조 속에 들어가
생명의 질서를 세우고 공동체를 이롭게 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우리 역시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도록 일조해야 할
'공적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속한 일터와 사회에서
공정하고 자비로운 원칙을 실천하며 지혜를 발휘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할 것입니다.
주신 은혜를 지혜롭게 경영하여 이웃을 살리는 청지기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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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나라의 토지법 ]
찬송가 50장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요셉이 애굽의 토지법을 세웠습니다.
7년 풍년이 들었을 때,
요셉은 백성들에게 아무런 추가적인 대가를 주지 않고
소출의 20%를 풍년세로 거두었습니다(41:34절).
아마 보통 때보다 더 많은 세금이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백성들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세금을 더 내고도 먹고 살기에 넉넉했으니까요.
7년 흉년이 들었을 때,
요셉은 백성들에게서 공짜로 거둬들인 그 곡식으로
백성들의 가축과 토지를 다 사들였습니다.
애굽의 모든 토지가 바로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애굽의 모든 백성들은 바로의 종이 되었습니다.
얼핏 보면 요셉이 아주 야비한 짓을 한 것 같습니다.
풍년 때 백성들에게 거저 거둬들인 곡식들을
마땅히 흉년 때 거저 되돌려 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요셉이 바로에게만 좋게 하고 바로에게만 잘 보이기 위해
백성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인가요?
하나님의 꿈을 가진 요셉이 왜 이렇게 가난한 자들에 대해
긍휼을 베풀지 않고 왕의 유익만을 위해 일하는 것일까요?
바로의 종이 된 백성들이 내는 토지세는 오분의 일(20%)이었습니다.
풍년이 든 때 내었던 세금과 동일합니다.
이에는 소작료가 포함되어 있었으니, 실제 세율은 훨씬 낮다고 봐야 합니다.
2023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부담율(국민이 납부한 세금과 각종 사회보장기여금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6.9%로서 OECD 38개국 중에서 30위입니다.
OECD 평균은 33.8%이며
1위는 프랑스(46%), 2위 덴마크(43.1%), 3위 오스트리아(43.0%), 4위 핀란드(42.8%) 순입니다.
애굽 백성들이 내는 세금(소작료 포함)이 얼마나 적은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왕의 토지를 소작하면 자비로운 왕의 치하에서는
흉년이 들었을 경우 소작료를 감면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사장 계급의 대지주 소유의 토지를 소작하게 되었을 경우
소작료는 20%를 훨씬 상회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 양반 대지주와 소작농 사이에
일반적으로 적용된 소작료는 ‘병작반수’라 하여 수확물의 절반 즉 50%였습니다
요셉은 백성들을 착취한 것이 아니라, 토지법을 확립함으로써
당시 지주계급인 제사장들의 횡포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한 것입니다.
만약에 백성들이 토지 소유권을 그냥 가지고 있었더라면,
제사장 계급의 대지주들에게 빼앗길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이었습니다.
22절에 그리고 25절에 다시 반복하여
제사장들이 지주 계급으로 계속 남아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은
이 위험에 대한 암시입니다.
요셉이 백성들에게서 토지를 사지 않았다면,
아마도 대지주들이 백성들의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여
더 헐값에 토지를 빼앗았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잘 넘어갔다 하더라도 흉년은 언제든지 또 닥칠 수 있고
흉년이 아니더라도 사고나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백성들은 제사장들에게 토지를 빼앗기는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러나 왕의 소유가 된 토지라면,
아무리 부자들이라도 감히 탐내지 못합니다.
토지를 왕의 소유로 바치고,
그 왕에 의해 안정된 소작권(청지기권)을 받아 누리는 것이
가난한 백성에게는 훨씬 안전하고 유리합니다.
요셉은 7년 풍년과 7년 흉년의 상황을 이용하여
가난한 백성들을 안전하고 유리한,
왕의 소작농으로 삼는 토지법을 확립하였습니다.
요셉이 확립한 애굽의 토지법은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되는 토지법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종임을 스스로 인정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기 소유가 없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소유를 가진 자들보다
훨씬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보장받은 사람들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에 의해서 그들의 권리가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 권리는 이 세상의 어떤 권세자, 부자도 빼앗지 못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하나님의 소유로 내어놓는 것,
이것이 나의 권리를 가장 확실하게 보장받는 방법입니다.
주님,
내 소유를 확보하고 내 능력을 키워서 안전하게 살려는
이 땅의 체제와 가치관에 무의식적으로 물들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깨우쳐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한 삶임을 잊지 않도록 말씀으로 계속 깨우쳐 주옵소서.
사랑의 나라의 왕에게 모든 소유를 맡기고,
하나님 나라의 안전과 행복을 누리는
청지기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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