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12.화요일
창세기 41장 1-24절
바로의 두 가지 꿈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도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 즉 꿈이라.
요셉을 천거하는 신하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바로 앞에 선 요셉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깍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게엑 들어가니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요셉에게 꿈을 들려주는 바로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꿈에 나일 강 가에 서서 보니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띁어먹고
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 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그 파리하고 흉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흉하더라
내가 깨었다가 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그 가는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점술가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풀이해 주는 자가 없느니라.
...................................................
드디어 요셉이 중앙 무대 진출의 기회가 찾아 왔다.
그 방법은 '꿈의 해석'이라는 요셉이 잘하는 재능을 통해서였다.
이 재능은 사주관상을 봐주는 자들처럼 요셉이 스스로 노력하여 얻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오랜 기도 생활과 교제 가운데 얻어진 지혜이고 능력이 아니겠는가
바로의 연달아 꾼 꿈은 심상찮은 꿈은 분명하다.
사람이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술객들이라도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반복은 강조라고 한다.
속히 그리고 분명히 되어질 일들은 거듭 반복해서 말하고 강조하는 것이 일반이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히브인들에게는 완전수이다.
먼저는 풍성한 것이 나중에 빈약한 것들이 삼켜버리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라는 왕에게 보이는 것은 국가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강 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당시 나일 강의 범람으로 인해 농사가 대풍이 되고, 나일 강이 마르면 흉년이 발생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요셉은 바로에게 꿈을 해석해 내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많은 일들을 잘 생각하고 헤아려 보면
문제의 진실이나 되어가는 과정들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지혜가 아닌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지혜의 능력이다.
주님
사람이 알 수 있는 일들을 우리 앞에 펼치시고 행하게 하십니다.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삶의 문제들을 헤쳐나가게 도와주소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혜를 얻어 삶의 문제들을 조명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잘 따라가도록 인도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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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빚으신 최적기 ]
바로는 두 번 연달아 기이한 꿈을 꾼 후 그 뜻을 알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술객들도 그뜻을 풀지 못하고 있을 때 술 맡은 관원이 요셉을 기억해 내고 천거합니다.
1절
비효율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이 석방되면 곧 뒤따라 석방되리라고 믿었는데,
무려 2년 동안 감옥에서 속절없이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더디고 돌아가는 듯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동행하고 있다면,
그것이 가장 빠르고 가장 효율적이며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낭비처럼 느껴지는 시간에 아무런 답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주님 안에 있다면 단 한순간도 헛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2-8절
바로는 두 번의 꿈을 꾸고 자신의 모든 권력으로도 감당하지 못한 채 근심에 빠집니다.
그 나라에서 제일 지혜롭다는 자들도 모두 이 꿈 앞에서 무기력할 뿐입니다.
자기 맘대로 현재를 통제하고, 자기 힘과 지식과 자원으로
내일도 안전하게 맞이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입니다.
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듯 우리의 미래와 역사의 주인도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9-13절
술 맡은 관원장은 2년 전에 요셉이 자신의 꿈을 해석한 이야기를 바로에게 전하며
요셉을 천거합니다.
2년이나 요셉의 부탁을 잊고 지낸 그의 부주의함이 야속하지만,
하나님은 그것마저도 하나님 나라의 최적기를 빚으시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관원장이 2년 전에 요셉을 기억했다면 석방 정도로 그쳤겠지만,
2년 만에 기억한 덕분에 요셉은 왕의 부름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정확합니다.
14절
형들에게 상처를 줬던 채색옷(37:3),
죄에서 벗어나려다 오히려 누명의 도구가 된 종의 옷(39;12),
이제 요셉은 깨끗한 옷을 입고 애굽 왕 앞에 섭니다.
굴곡진 인생이었지만
하나님이 요셉 인생에 두신 꿈을 향해
점점 나아가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15-16절
요셉은 왕이 기대하는 해몽 능력이 자신에게 없음을 인정하고,
그 대신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합니다.
요셉은 이제 자신이 '꿈꾸는 자'(37:19)가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해석하는 '도구'에 불과함을 압니다.
이제 요셉의 꿈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뿐입니다.
주님이 행동하기 시작하실 때까지 그 의미를 몰라도 묵묵히 오늘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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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가장 빨리 가는 길 ]
찬송가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40장의 마지막 절은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요셉이 특별히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그래서 풀려나게 해 달라고 신신 당부를 했는데...
요셉의 꿈 해석대로 사면복권이 된 것이 조금도 신기하게 생각되지 않았던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믿고
고난도, 핍박도 다 감수하며 순종하는 길을 걸었는데 결과가 기대 밖입니다.
자꾸 일이 꼬이고, 호의를 보여줄 거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은 자기 이익만 챙기고 떠나가 버립니다.
섬기고 봉사했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무엇을 기대했을까요?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감옥에서 풀어주시는가 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낙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요셉은 아마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여기서 풀려나 버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요셉이 자유의 몸은 될 수 있겠지만,
바로를 만날 기회도 없어지고 애굽의 총리가 될 기회는 더욱더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쓸데없이 노예살이, 옥살이로 요셉을 고생시킨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여 요셉이 계속 옥중에 있어야 합니다.
요셉이 자유의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면,
바로가 꾼 꿈을 해석하기 위해 요셉이 필요할 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요즘같이 통신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면 몰라도
4천년 전 이집트에서 어느 나라, 어느 지방에 사는지도 모르는 한 소년을
찾을 방법은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가 꿈을 꾸기까지, 바로가 찾기까지,
곧바로 찾을 수 있는 감옥에 남아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안전한(?) 감옥에 딱 대기시켜 놓고는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는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빨리 꿈을 꾸게 하여 요셉이 옥살이를 덜 할 수 있도록 하시지 않고
만 2년을 기다려 꿈을 주셨습니다.
덕분에 요셉은 만 2년을 꼼짝없이 감옥에서 기다렸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막 달려가도 시원치 않을 것인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감옥에서 허송하는 그 시간이 낭비하는 시간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특히 ‘빨리빨리’의 국민성을 가진 우리에게는 더욱 그럴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가장 빨리 가는 길이었습니다.
단 2년만에 세계 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는 지름길이었습니다.
만 2년 동안 요셉이 무엇을 하며 기다렸을까요?
원망하면서, 한탄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을까요?
혹시 잠시는 실망감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요셉을 오랫동안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요셉이 갇힌 옥은 보통 옥이 아닙니다.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39:20)이었습니다.
그런데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었습니다(39:22).
단순히 요셉을 후대했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요셉이 지혜로운 소년인 줄 알게 된 간수장이 요셉을 부려먹었다는 뜻입니다.
간수장이라 하더라도 죄수들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곳이, 왕의 죄수들을 가둔 감옥입니다.
죄수들 중에는 무죄로 풀려나 복직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간수장에게는 왕의 죄수들을 다루는 일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그 일을 떠넘긴 것입니다.
요셉이 그들을 상대하면서 쌓은 경험과 들은 이야기들은,
그가 이후에 애굽의 총리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소중한 자산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 2년간 요셉을 특별속성과정으로 훈련시키셨습니다.
바로가 찾으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곳에서
요셉은 착실하게 애굽 총리가 되는 훈련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2년의 단기간이지만 확실한 훈련을 끝내고서
곧바로 바로의 부름을 받게 하십니다.
바로에게 심상치 않게 여겨지는 꿈을 연이어 두 번이나 꾸게 하여 마음이 초조해지게 만드셨습니다.
꿈을 해석하지 않고는 불안해서 견딜 수 없게 만드셨습니다.
꿈의 내용을 본문에 두 번이나 반복하여 기록한 것은
꿈 때문에 불안해진 바로의 초조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바로에게는 꿈을 해석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붙잡고 백 번이라도 꿈 이야기를 할 용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옥의 관리들은 요셉을 급히 옥에서 내보내야 했습니다(14절).
하나님의 시계는 느린 듯하지만 결코 느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장 빠른 타이밍을 정조준하여 조금의 낭비도 없이 진행됩니다.
원망하거나 초조해하지 말고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해야 할 것을 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형통의 길입니다.
주 하나님; 빨리 되지 않는다고, 마냥 기다려야 하느냐고, 왜 이러시냐고,
더 이상 불평하지 않는 믿음을 제게도 주시옵소서.
요셉이 자기의 원대로 되지 않아도 만 2년을 잘 기다렸듯이,
저도 여전한 믿음으로 잘 기다릴 수 있도록 지켜주옵소서.
기다리는 동안 시키시는 훈련 잘 받을 수 있도록 성실함과 건강을 더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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