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다시 벧엘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5. 4. 07:10

2026.5.4. 월요일

창세기 35장 1-22절

 

- 벧엘로의 귀환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서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 벧엘의 예배와 드보라의 죽음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 새 이름과 언약 갱신

야곱이 바닷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 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네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 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 베냐민의 출생과 라헬의 죽음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 패륜을 저지른 르우벤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

디나의 사건 후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시고

믿음을 회복시키시려고 벧엘로 올라가라고 지시하신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다시벧엘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에 야곱은 순종하여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몸을 정결하게 하고 벧엘로 올라간다.

무슨 심정이었을까?

에서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갈 때 자신을 만나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한다.

하나님과 약속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을 것이다.

처음 벧엘로 올라가던 상황과 지금 다시 벧엘로 올라가는 상황을 비교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제단을 쌓고 엘벧엘이라 부른다.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찾으며 믿음을 회복한다.

 

갑자기 드보라의 죽음을 기록함은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알론바굿은 무슨 뜻일까?

어떻게 드보라가 야곱 일행과 함께했을까?

리브가가 죽고 그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찾아왔던 것일까?

리브가와 드보라와 함께 했던 지난 날들에 대한 기억을 땅에 묻고 통곡함의 표현일까?  

이제 야곱은 한 집의 가장으로, 한 가문의 대표로  오롯이 홀로 서야 한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언약을 갱신하시고 복을 주신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부르겠다고 하신다.

사람이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다짐이다.

이제 이스라엘로의 삶이 시작된다.

야곱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던 곳에

또 돌 기둥을 세우고 물로 전제를 드리고 기름을 붓으며 그 곳을 벧엘이라 불렀다.

야곱의 인생에서 '벧엘'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자신을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떠올리는 지명이 되었다.

 

얼마나 벧엘에 머물렀을까?

다시 삶의 거처를 옮겨 에브랏으로 이동한다.

이동 중에 라헬이 베냐민을 낳고 죽는다

라헬이 지은 이름 베노니를 왜 베냐민으로 바꿨을까?

마냥 라헬의 죽음에 슬퍼하지만은 않겠다는,

이 아들은 자신의 오른 손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이제 나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굳건하게 서겠다는 다짐이었을까?

에브랏 곧 배들레헴 길에 장사하고 묘비를 세운다.

 

계속 이동하여 에델 망대를 지나고 장막을 쳤는데

르우벤이 아버지 첩 빌하와 동침하는 죄를 저지른다.

여기서도 야곱은 이 말을 들었으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야곱이 변했으면 르우벤의 행동에 잘못을 지적하고 교육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아니면 야곱이 온유함으로 변하여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인가?

 

세겜에서 벧엘로 그리고 에브랏으로 이동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벌어진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만나며 믿음을 회복한다.

그러나 자신의 유모 드보라가 죽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아내 라헬도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우벤의 범죄는 아직도 가정이 온전하지 못함을 나타낸다.

 

주님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이라 개명하며 새 삶을 다짐해 봅니다.

주님 저에게 새 이름을 주시고 날마다 새롭게 살아가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어렵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만난 벧엘을 기억하며 새롭게 출발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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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벧엘로 ]

 

야곱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세겜의 비극을 뒤로하고 언약의 원점인 벧엘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부모 세대의 그늘을 벗어나 당당한 족장 '이스라엘'로 우뚝 섭니다.

 

1절

그릇된 길에서 헤맬 때 약속의 장소로 부르시고,

세파에 시달리고 지쳤을 때 회복의 장소로 부르십니다.

야곱에게는 그곳이 '벧엘'이엇습니다. 

 세겜의 참혹한 일을 겪고 보복의 두려움에 떨던 그가 돌아갈 곳은

하나님을 만난 곳,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벧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은혜와 회복의 자리, '나의 벧엘'은 어디입니까?

 

5-7절

야곱이 순종하여 길을 떠나자, 가나안 민족들이 보복하지 못하도록 지키셨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지지하신 것입니다.

'나의 벧엘'로 돌아오기를 주저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보호와 지지를 믿고 하나님이 부르신 곳을 향해 담대히 경로를 수정합시다.

 

8-15절

부르신 사람을 하나님과 독대하는 주체적 신앙인으로 세우십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의 죽음과 '알론바굿'(통곡의 상수리나무)은 

야곱을 붙들던 부모 세대와 정서적 탯줄이 끊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로 재확증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그에게 직접 전수하셨습니다.

부모 세대의 그늘 아래 있던 야곱이

이제 '전능한 하나님'의 언약을 짊어진 독립된 족장으로 공인받는 순간이었습니다.

 

2-4절

야곱 일가는 벧엘로 가기 전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꿀 뿐만 아니라,

세겜에서 탈취한 귀고리와 우상들을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정돈이 아니라 과거 세속적 가치관과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 은밀히 스며든

'세겜의 흔적들'을 과감히 땅에 묻어야 합니다.

 

16-22절

성도의 삶에는 벧엘의 영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라헬의 죽음과 르우벤의 범죄 같은 아픔이 공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든 소동 뒤에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고 기록하며,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열두 지파를 준비하시며 구속사를 멈추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집념을 부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둠의 순간에도 '베노니'(슬픔의 아들)가 아닌,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과 연약함을 상수리나무 아래 묻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주체적인 신앙인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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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벧엘의 이스라엘 ]
찬송가 415장 십자가 그늘 아래

왜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가,

왜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님을 향한 한 길밖에 없는가에 대해

많은 불신자들이 의문을 제기합니다.

심지어는 기독교 신자들 가운데서도 이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예수님만 믿어야 되는지를 모르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춰내십니다. 야곱의 상처를 긁으십니다.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라고 직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야곱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부끄럽고 기억하기 싫은 장면을 떠올리게 하십니다. 

거기에다 야곱이 지키지 않은 약속까지 들먹여 고개를 못 들게 하십니다.

야곱이 인정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폭로합니다. 

세겜에서의 야곱 가족의 신앙 실태가, 2절에 인용된 야곱의 말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라헬이 가지고 왔던 드라빔이 제거되기는커녕 온 가족과 종들에게까지 퍼져 있었습니다. 

세겜에 거주하는 동안 얼마나 야곱이 나태해져 있었는지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얍복강을 건너면서 고점을 찍었던 야곱의 믿음이 평안한 삶 가운데서 슬금슬금 후퇴했습니다. 

믿음이란 것이 신앙 연륜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좋았던 믿음이, 앞으로도 최소한 그 정도의 믿음은 유지될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위기를 만나, 야곱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고집이 세지 않은 점, 겁이 많은 것, 재빨리 잘못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야곱의 장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여 벧엘로 곧장 올라갑니다. 

우상들을 모두 세겜에 묻고 올라갑니다. 

세겜에서 이룩한 모든 기반을 다 버리고 올라갑니다.

벧엘에 이르러 야곱이 벧엘의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세겜에서 야곱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불렀지만 아직 돌아온 것으로 기록하지 않던 성경이, 

이 장면에서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왔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9절).

왜 ‘벧엘’일까요? 왜 세겜은 안 되고 벧엘로 올라가야 하는 것일까요? 

세겜도 똑같은 가나안 땅인데, 왜 하나님은 야곱에게 굳이 벧엘에 올라가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벧엘에 올라가서 정착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 ‘거주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야솨브’는 정착을 위해 거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제단을 쌓게 하신 것은, 그곳에서 하나님이 야곱을 만나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곳이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벧엘은 곧 ‘성전’을 의미합니다.

왜 ‘벧엘’이 성전의 의미를 가지는 장소가 되었을까요? 

그곳에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닥다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닥다리는 곧 자신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연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벧엘을 고집하고 계십니다.

이 벧엘에서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유모를 장사지냅니다(8절). 

세겜의 상수리나무 밑에는 우상들을 묻었지만, 

벧엘의 상수리나무 밑에는 어머니의 유모 드보라를 묻었습니다. 

이 드보라는 리브가가 하란을 떠나올 때에 동행했던 여인으로서(24:59),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고,

또 야곱을 이스라엘로 온전히 세우시는 전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그녀를 벧엘에 묻은 것은,

그녀가 벧엘의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인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확실히 벧엘로 돌아온 야곱에게, 

얍복강가에서 이미 주셨던 이름 이스라엘을 마치 처음인 것처럼 다시 주십니다. 

얍복강에서 받은 그 이름이 하늘의 완성을 약속하는, 언약으로서의 이름이었다면 

벧엘의 이름은 땅에서 몸으로 체화되고 살아지는 현재 진행형의 이름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이스라엘'(하나님과 씨름하다)을 몸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땅에서부터 하늘에 이어지는 사닥다리가 있는 곳 벧엘에서만 이 역사가 일어납니다. 

자기부인의 십자가 밑에서만, 

주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그 자리에서만,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도 살아남는 이스라엘이 성취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확실히 벧엘로 돌아온 야곱에게, 

얍복강가에서 이미 주셨던 이름 이스라엘을, 마치 처음인 것처럼 다시 주십니다. 

얍복강에서 받은 그 이름이 하늘의 완성을 약속하는, 언약으로서의 이름이었다면,

벧엘의 이름은 땅에서 몸으로 체화되고 살아지는 현재 진행형의 이름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이스라엘'(하나님과 씨름하다)을 몸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땅에서부터 하늘에 이어지는 사닥다리가 있는 곳 벧엘에서만 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면 당연히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의 실력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잠깐만 필요하지 않고 영원히 필요합니다. 

세겜에서 사는 삶은 중보자 없이 하나님을 믿어 보겠다는 시도였습니다. 실패로 끝났습니다. 

얍복강의 승리는 단지 한 번의 승리, 일시적인 승리에 불과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사닥다리가 있는, 중보자가 있는 벧엘로 와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로 와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승리를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하나님을 안심시켜 드릴 수 있는 믿음입니다.

벧엘을, 벧엘의 언약을 붙들게 된 야곱은 

이제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여인 라헬을 담담히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야곱은 베냐민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라헬의 죽음을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라엘을 장사지낼 때 묘비를 세워 애틋한 마음을 표시하지만, 

슬픔에 빠져 그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본래의 목적지 헤브론으로 계속 나아갑니다. 

28:21절에서 서원한 대로, 벧엘을 거쳐 아버지 집으로의 여정을 계속합니다.

야곱이 벧엘을 떠났지만 단지 지리적으로 떠났을 뿐입니다. 

도중에 잠시 멈추지만, 가축들을 돌보기 위한 임시 거주지였을 뿐입니다. 

33:19절처럼 땅을 사서 장막을 치지 않습니다. 

잠시 머무는 동안, 르우벤이 불륜을 저질렀습니다. 

야곱은 그 사실을 듣고서도 잠잠합니다. 

왜 화가 나지 않았겠습니까? 

르우벤을 혼낼 힘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온유입니다. 

원수 갚는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온유한 믿음입니다. 

야곱의 신앙 여정이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벧엘은 단순히 지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벧엘의 언약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한, 

야곱은 영원히 벧엘에 거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의 십자가를 붙들고 있는 자리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복을 주시겠다는 언약이 벧엘의 언약입니다.

주님, 

벧엘에 거주하라(35:1)고, 벧엘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스라엘의 믿음을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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