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5.1. 금요일
창세기 33장 1-20절
- 야곱과 에서의 만남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게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 형제의 이별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하건데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 세겜 정착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크시타에 샀으며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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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망설임으로 길을 가다 에서가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는 것을 본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몰라 그의 가슴은 요동쳤을 것이다.
형이 자기와 가족들을 죽이려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한다.
중요성에 따라 여종과 그의 자식들, 다음으로 레아와 그의 자녀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라헬과 요셉 순으로 세운다.
이번에는 자신이 가족들 제일 앞에 나선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 제일 뒤에 자신을 감추었던 야곱이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일 앞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상대방에게 표할 최상의 예를 갖추어 형 에서를 맞이한다.
몸을 땅에 일곱 번 굽히며 에서에게 나아간다.
그러나 너무나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에서는 달려와 자신을 끌어 안고 입맞추며 격하게 운다.
울면서 야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에서의 태도와 행동에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자신이 보내 준 예물 때문에 에서가 마음이 누구려졌다고 생각했을까?
그런데 지금 에서의 행동은 그 이상의 모습이다.
속으로 하나님께 연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렸을 것이다.
에서가 궁금해하는 가족들과 야곱이 보내 준 예물에 대하여 답을 한다.
에서는 온전히 마음을 열었을까?
20년 오랜 세월 동안 보지 못했던 동생을 만난 반가움과 기쁨만 있었을까?
야곱이 보내 준 많은 예물 때문에 마음이 조금 누구러뜨려졌는데
절뚝거리며 일곱 번 절하며 나아오는 동생이
햇빛이 그을린 모습과 몸이 불편한 것을 보자 측은지심이 들어서
그동안 야곱에게 가진 모든 미움과 적대적인 감정이 다 사라진 것일까?
처음에는 예물도 거절했다.
동생이 세일로 오는 길을 인도하라고 몇 사람을 가이드로 남겨두려는 배려를 한다.
통 큰 에서의 모습, 지난 날들의 감정들은 다 잊어버린듯한 행동이다.
누가 그의 마음을 이렇게 부드럽고 배려심 많은 사람으로 바꾸어 놓은 것일까?
야곱은 이런 에서를 보면서 형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얼굴을 본 것 같다고 고백한다.
같이 세일로 내려가자는 제안에 야곱은 짐승들의 핑게를 두고 양해를 구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에서를 온전히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선한 의도의 가이드들을
자신을 감시하기 위한 첩자로 남겨두려는 것이라 생각하여
은혜를 핑게되며 거절한다.
야곱은 세일로 내려가지 않는다.
숙곳에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해 우릿간을 지었다.
더 이상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착하겠다는 의도이다.
형 에서에게 용서를 받았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시 형하고 같이 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세일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땅이 아니다.
그는 세겜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거주하기 위해 돈을 주고 땅을 산다.
아브라함에 이어 두 번째 매입한 땅이다.
그리고 제단을 쌓고 그 땅을 '엘엘로해이스라엘'이라 불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이 고백이 있기까지
하나님은 야곱을 연단시키시고 함께하셨다.
에서의 행동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사랑과 우정이 넘치고 배려심이 많은 부드러운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존재다.
에서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이 그를 만지셔서 이렇게 행동하게 하신 것이다.
도망가는 야곱을 죽이고 짐승들을 되찾아 오리라 다짐하며 무리를 데리고 추격하던 라반도
야곱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야곱의 소식을 듣고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나아오던 에서도
처음에는 라반과 별반 다른 감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을 보자 동생을 껴안고 우는 모습은 예측하지 못한 에서의 행동이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역사하신 결과이다.
그것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주님
이 두 형제간의 화해 뒤에 주님이 개입하셨음을 믿습니다.
주님이 간섭하지 않으셨다면 형제간의 싸움이 일어나
야곱과 가족들은 생명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돌보시고 보호하셨음을 생각합니다.
저의 인생가운데도 주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야곱이 에서가 떠난 후 하나님께 뭐라고 고백했을까요?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긴장이 풀려 땅에 주저 앉았을까요?
라반의 추격과 에서의 공격 앞에서 자신을 구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인생 가운데도 함께하시며 은혜 베풀어 주셨음을 기억합니다.
야곱의 '엘엘로헤이스라엘'의 고백처럼
저의 동일한 고백과 감사와 영광을 받아 주소서.
이 은혜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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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
야곱과 에서, 두 형제의 해묵은 갈등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극적인 화해와 용서로 승화됩니다.
형과 화해한 야곱은 가나안의 세겜에 정착합니다.
1-3절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빚으십니다.
에서가 부하들을 거닐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종들과 식구들을 방패막이로 앞세웠던(32장) 애곱이
하루아침에 가족을 위한 방패가 되었습니다.
극적인 변화의 중심에는
강력하고도 지독한 사랑으로 야곱과 함께하신 '브니엘'의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깊숙이 개입하심으로,
우리를 진정 강인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4-7, 10절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 내 이웃의 마음도 만지십니다.
야곱은 '용서하는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는 말로
에서의 마음에 용서를 빚으신 분이 하나님임을 고백합니다.
깨어진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면
이미 그의 마음에 계신 하나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20절
야곱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 벧엘에서부터 20년 동안
그와 동행하며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서 '엘엘로해이스라엘',
곧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받아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려고
우리 삶에서 자신의 사랑과 성실을 끊임없이 증명하십니다.
8-11절
야곱은 에서에게 주는 선물을
'예물', 원어로는 '복'(히.베라카)이라고 부름으로써
과거에 에서를 속여서 빼앗았던 복을 갚으려 했습니다.
형의 것을 빼앗으려던 야곱이
형에게 복을 나눠 주는 사람으로 변한 것은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탐욕을 거둡니다.
손해 입힌 것을 보상하고, 자기 것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참조. 눅 19:8).
12-20절
야곱은 함께 가자는 에서의 권유를 완곡하게 거절하고 가나안 세겜으로 갔습니다.
이로써 야곱은 에서와 화해했으나 동화되지 않았고,
에서와 분리되었으나 분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면서도
거룩하신 방식으로 구별되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되시려고 제 삶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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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하나님을, 은혜를 굳게 붙들게 되니 모든 상황이 달라집니다.
아직 완전치는 않지만 행렬의 순서가 달라졌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을 편애하는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는 모습이 야곱에게서 나타납니다.
맨 뒤에 있던 야곱이 제일 앞에 서서 나아갑니다.
야곱의 이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셨습니다.
자신의 꾀를 신뢰하며 담대하게 에서 앞에 서는 야곱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긍휼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겸비하게 에서 앞에 서는 야곱을 기다리셨습니다.
그 옛날 사사건건 자신에게 도전했던 야곱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자기를 진심으로 형으로 대접하는, 아니 ‘주’로까지 높이는 야곱의 모습에 에서는 놀라버렸습니다.
에서의 노여움이 전혀 반대의 마음으로,
오히려 긍휼히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단지 야곱의 진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먼저 나아가서 에서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놓으신 결과입니다.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장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던 시도들이 모두 헛되었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회개하는 야곱의 마음이 에서에게 충분히 잘 전달되었습니다.
위협이 되었던, 에서가 거느린 장정 400명이 오히려 야곱의 호위대가 되었습니다.
에서에게 잘못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야곱에게 권리가 도무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고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뱃속에 있을 때부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고 선언하여
야곱의 권리를 인정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알게 된 자는 남의 잘못을 탓하여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며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습니다.
멸시를 당하여도 대항하지 않고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언제나 겸비한 자세로 자신을 낮춥니다.
힘이 약하여서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합니다.
오직 은혜밖에 없음을 믿는 믿음이 이런 진심을 만들어 냅니다.
오직 은혜가 전부임을 믿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던져버린 진심의 믿음이,
에서의 적대감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신 말씀이 응했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굴복한 것 같지만, 실상은 에서의 적대감이 야곱의 믿음 앞에 무너졌습니다.
야곱이 더 강한 자입니다. 야곱이 더 풍성한 자입니다.
에서가 자신의 소유가 족하다(9절)고 말했지만,
그 '족함'은 단순히 풍부하다는 의미에 불과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직역은 ‘내게 풍부하게 있다’입니다.
이는 11절에서 야곱이 족하다고 하는 의미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11절의 '족하다'는 표현의 히브리어 직역은 ‘내게 모든 것이 있다’입니다.
이 의미의 연장으로 에서가 붙여주겠다는 보디가드를 야곱이 사양합니다.
야곱이 더 풍성하고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주 하나님,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모든 것이 족합니다.
이 믿음을 날마다 마음으로, 입술로 고백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아무것도 없어도 담대한 마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니, 아무것도 없어서 오히려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니,
한없이 담대해지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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