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미스바에서 조약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4. 28. 06:46

2026.4.28. 화요일

창세기 31장 36-55절

 

- 분노하며 지난 세월을 항변하는 야곱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니이까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의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내가 이 이 십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힐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 평화조약 체결과 증거의 돌무더기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르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 불가침 선언과 작별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에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

20년 만에 야곱이 외삼촌 라반을 향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할 말을 다 하고 있다.

라반이 장막을 샅샅히 뒤졌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날 자신의 수고에 떳떳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게 살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이 보시고 아시며 함께하시고 일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억울했던 지난 날들 마으므 속에 응어리진 것들을 강력하게 항의하듯 지난 일들을 내뱉는다.

그러나 이야기 마지막에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하셨음을 힘주어 고백하고 있다.

 

무색해진 라반은 돌 무더기를 쌓고 증거를 삼자고 제안한다.

외삼촌과 조카 사이에 불가침 증거의 돌무더기가 왜 필요했을까? 

라반의 말 속에 화해의 말은 들어 있지 않다.

갑자기 야곱이 두려워졌기 때문일까?

야곱이 나중에 힘이 더 생기면 저 억울함을 분풀이 하기 위해 처들어 와서

자신들의 재산을 훔쳐갈까 걱정이 되었을까?

아무튼 미스바, 갈르엣 돌 기둥과 돌 무더기를 둘 사이에 세워 증거를 삼는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은 라반은 불가침 선언을 하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게 한다.

야곱이 준비한 음식을 먹고 딸과 외손자들을 축복하고 고향으로 돌아 간다.

 

미스바에서 세운 언약이 의미하는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라반과 야곱 사이에 세운 불가침 증거 돌 기둥과 돌 무더기만은 아니다.

하나님이 이 증거의 돌무더기를 세우게 하심은 어떤 의도이실까?

야곱은 이 미스바의 돌 기둥을 생각할 때마다 무엇을 떠올렸을가?

단지 지난 20년 동안의 고생과 힘든 일들 뿐이었을까?

아니면 약속의 땅이 아닌 세상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는 다짐이었을까?

 

라헬은 르비딤을 훔친 것과 거짓말로 속인 죄의 사필귀정으로

가나안 땅에서 길을 가다가 객사하고 만다.

야곱의 말이 무섭게 실현되는 것을 본다.

말 한 마디도 조심해야 한다.

 

주님

모든 일들 저변에는 욕심이 있었음을 생각합니다.

자신의 것에 늘 만족하며 살게하시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서

주변에 나의 삶과 문제들에 떳떳하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인생의 모든 일들 위에 하나님의 주관하심과 개입하심과 간섭하심을 기억하며 살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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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맺어 주신 평화의 결말 ]

 

수색을 허락하였음에도 아무것도 발견한 것이 없자,

야곱은 라반에게 강력히 항변합니다.

그제야 라반은 화해의 언약을 제안하고 야곱을 축복하며 보냅니다.

 

36-42절

나의 고난과 수고를 계수하시는 변호자이십니다.

야곱은 20년 동안 라반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심지어 라반의 가축에 손실이 생기면 자기 것으로 물어내며 일했는데,

라반은 임금 조건을 수없이 바꾸며 야곱은 빈털터리로 만들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야곱의 고난과 그 손의 수고를 보시고' 라반을 꾸짖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때가 되면 억울한 자를 위해 직접 나서는 변호자시며,

상황을 역전시키는 공의의 재판장이십니다.

 

54-55절

야곱과 라반 사이에 전쟁 대신 식사를 마련하셨습니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죽이겠다며 쫓아오던 추격전이

하나님이 개입하시자 함께 밥을 먹는 식탁 교제로 바뀌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라반은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 맞추고 축복한 후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이로써 20년에 걸친 야곱의 험난했던 하란 생활이 마무리됩니다.

하나님은 해묵은 갈등이 평화로운 결별로 마무리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36-42절

야곱이 라반에게 큰소리칠 수 있었던 근거는 그의 '탁월한 성실함'이었습니다.

그는 악덕 고용주 밑에서도 꾀를 부리거나 태만하지 않고 주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만약 야곱이 게으르거나 불성실했다면,

하나님이 그를 변호하실 명분이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부당하게 대우할 때, 감정적으로 맞서기보다

야곱처럼 맡은 자리에서 성실함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나의 정직과 수고가 쌓일 때,

하나님은 그것을 근거로 나를 높이시고 대적의 입을 막으십니다.

 

43-53절

할 말이 없어진 라반은 언약을 제안합니다.

그들은 돌무더기를 쌓고, 그곳을 하나님이 감시하시는 '미스바'(망대)라 부릅니다.

언약의 내용은 완전한 화해가 아닌, 불가침 조약에 가깝습니다.

때로는 억지로 하나 되려 하기보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건강한 경계선'을 긋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갈등 관계가 있다면,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고 서로 거리를 두는 것도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지혜일 수 있습니다.

 

수고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웃과 평화를 세워 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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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돌이킴 없는 돌이킴 ]
찬송가 525장 돌아와 돌아와

하나님께서는 왜 야곱을 하란 땅에 머물게 하셨을까요?

야곱은 거기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만드십니다.

처음부터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돌아올 때에 외삼촌 라반과 완전히 결별하게 만드십니다.

하란 땅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란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을 맹세하게 만드시는 것,

이것이 하란으로 도망가게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대로 야곱은 순종하여 하란을 단호하게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 야곱의 순종에 라헬의 불신앙이 섞여 들어갔습니다. 

아내 라헬의 불신앙이 야곱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야곱이 자기 안목의 정욕에 따라 선택한 배필이 라헬이었기 때문입니다. 

옛 불순종의 흔적이 하마터면 야곱을 위기로 몰아갈 뻔했습니다. 

라헬이 속임수로 위기를 모면한 것 같지만, 단지 라반을 피하였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라헬은 결국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죽어 장사되고 맙니다(35:19).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든지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라는 야곱의 말대로 된 것입니다. 

아마 이것 때문에 야곱은 라헬을 조상의 무덤에 장사지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망친 야곱과 추격해 온 라반이 만나는 순간은 일촉즉발의 긴급 상황이었습니다.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해버리는 것을 보면, 

둘 사이의 앙금과 긴장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하지만, 라헬이라는 약점을 야곱도 가지고 있으니 셈셈입니다. 

둘이 똑같습니다. 팽팽한 대치가 이어집니다.

(43-55) 그러나 하나님은, 라헬 때문에 야곱의 가나안행이 지체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사건을 라반과 야곱이 분명한 분리를 선언하는 계기로 삼으셨습니다.

갑작스런 긴장 해소가 이루어집니다. 

라반이 야곱의 책망에 화를 내며 반발했다면, 일이 더 악화될 수도 있었는데, 

라반이 수그러들며 하나님을 증인으로 한 언약 체결을 제의합니다. 

하나님의 개입 때문입니다(31:24).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한 라반은 

오히려 야곱의 일행들에게 축복을 하며 보내줍니다. 

이후로 믿음의 조상의 족보에 아브라함의 하란 혈족들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쓰임새는 여기까지였습니다.

이삭의 결혼 이야기와 야곱의 하란 도피 생활을 보며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란 혈족을 통해서 자기 백성을 만들고 계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혈족을 떠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자기 나라를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는 믿음을 확고히 세우기 위해 

하란의 혈족들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하란의 것, 라반의 것은 단 하나라도 가지고 오지 말아야 합니다. 

다 두고 떠나와야 합니다. 

또한 다시 하란으로 넘어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기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에는 관심이 없는

라반과는 영원히 결별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란과 야곱 사이에 맺은 언약이고, 

증거의 무더기 앞에서 맹세한 내용입니다(52절).

반드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언약을 하나님은 이루셨습니다. 

그 언약은 단순히 돌아오게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게 하겠다는 언약이기도 했습니다. 

지긋지긋하게 만들어서, 학을 떼고 진절머리가 나도록 만들어서,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이요 지혜입니다.

거기에 어떤 미련도 없게 만드십니다.

단 한 점이라도 미련을 두지 않을 것을 선언하게 만드시고,

그것이 아무리 애틋한 것이라도 끊어내게 만드십니다.

야곱이 가장 사랑하고 애착을 가진 라헬조차 끊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의 것들을, 세상의 가치들을 허용하시는 목적을 잘 알아야겠습니다. 

그것 즐기라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결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그것에 진저리가 나는 상황을 경험하도록 놓아두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것에 마음이 유혹되지 않도록, 

다시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도록 만드십니다.

착각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즐기며 행복하라고 세상의 쾌락과 가치들을 허용하시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고,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볼 때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며 잘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주님, 돌아가게 하실 주님을 바라봅니다. 

온전히,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도록, 다 끊어내시고 증거의 무더기를 세워 확증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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