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라헬의 기도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4. 24. 06:50

2026.4.24. 금요일

창세기 30;1-24

 

- 라헬의 투기와 여종 빌하의 출산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러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며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 레아의 대응과 여종 실바의 출산

ㄹ[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으매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때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 합환채 거래와 레아의 출산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내가 네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들어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드러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 요셉을 출산한 라헬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

야곱의 아들 베냐민을 제외한 11명의 아들과 딸 한 명이 출생한다.

레아가 4명, 빌하가 2명, 실바가 2명, 레아가 3명, 라헬이 한 명

 

레아가 여러 아들을 낳는 동안 라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레아가 남편 때문에 고통으로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면 

라헬도 불임으로 인한 고통의 세월을 보내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모습은 차이를 보인다.

레아는 갈수록 기도가 성숙해지고 남편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라헬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다 동원한다.

합환채에 의지하기도 하고 여종을 통해 자녀를 얻으며, 

요셉을 낳고도 더 달라고 고백하는 것을 본다.   

두 사람 다 기도하였지만 한 사람은 성숙한 기도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목적 달성만을 바라고 기도하지만 성숙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야곱은 라헬을 향한 책망 중에 라헬의 불임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하나님의 주권으로 돌리는 말을 퉁명스럽게 던진다.

오랜 세월 자녀 때문에 라헬이 야곱을 피곤하게 하였을 것 같다.

야곱은 짜증스럽게 화를 내며 말을 하고 있다.

20년 넘도록 아내의 불임을 위해 기도하던 아버지 이삭의 모습을 닮지 않았다.

아내의 고통을 들어 주고 위로해 주며 격려하는 따뜻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레아보다 더 사랑했다고 하는데 진정 인격적인 사랑이 있었던가 싶다.

라헬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라헬이 야곱이 한 말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다른 기도를 드렸을까? 

생명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간절한 눈물의 기도를 드렸을까?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야곱도 레아도 라헬도 불안전한 모습들이다.

오랜 세월 라헬의 투정에 지져 화를 내며 투명스런 말을 하고 있는 야곱이나,

자신은 여려 명의 자녀를 두었고 한 명도 없는 남도 아닌 동생 라헬의 심정을 이해해 주지 못하고

합환채도 기꺼이 양보하지 않는 자매의 우애나 연민의 마음은 찾아보기 힘든 레아의 모습, 

오랜 기도 끝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녀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언니와 경쟁하려는 라헬의 모습 속에서,

변하지 않는 인간의 죄악된 모습,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모습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 오셨다.

 

주님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기도를 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면서 자신을 돌아 보고

기도를 통해 내 삶이, 인격이, 믿음이 변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역사와 생사화복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때를 겸손히 기다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성령님 겸손히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를 올려 드리기를 바랍니다.

레아의 찬송과 레아의 기도 속에서 그녀들을 닮은 저 자신을 봅니다.

저들을 반면 교사 삼아서 성숙한 기도자의 모습으로 살게 인도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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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이 주께 있네 ]

 

언니를 시기한 라헬이 출산 경쟁을 부추기고 동생을 질투한 레아도 이에 동참합니다.

질투와 시기가 난무하는 중에도 구원 역사는 차곡차곡 진행됩니다.

 

3-13절

악도 선으로 바꾸어 쓰십니다.

언니를 시기한 라헬은 여종 빌하를 야곱과 동침하게 하고, 이를 통해 두 아들을 얻습니다.

이에 질세라 레아도 여종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 두 아들을 얻습니다.

서로를 향한 미움과 시기, 질투가 빚은 참담한 상황이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얻은 아들들을 통해 열두 지파로 이뤄질 국가 이스라엘을 준비하십니다.

죄악이 난무하는 중에도 하나님은 선한 계획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악한 일까지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50:20),

참담한 현실일지라도 소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22-24절

고난으로도 가르치십니다.

아이를 낳지 못해 상심한 라헬을 돌보셔서 그에게 요셉이라는 아들을 주십니다.

이로써 라헬은 문제를 해결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자기 입술로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을 거치면 고난도 소망이 되기에(롬 5:3,4),

그리스도인의 인생에는 버릴 것이 없습니다.

오늘 만나는 모든 상황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입니다.

 

1-2절

라헬이 자식을 낳지 못한 절망감으로 불평을 쏟아내자,

야곱은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생명은 하나님 주권'이라는 야곱의 말은 옳지만 거기에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는 리브가를 위해 간구했던 아버지 이삭처럼(25:21) 함게 기도해야 했고,

적어도 한나를 위로한 엘가나처럼(삼상 1:8) 아내의 고통을 헤아려 주어야 했습니다.

공감 없이 옳은 말만 쏟아낸 야곱의 질책은, 도리어 다툼의 장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14-21절

라헬은 레아의 임신 비결이 '합환채'에 있다고 믿어 그것을 집요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라헬의 기대와 달랐습니다.

합환채를 얻은 라헬은 여전히 불임이었고,

도리어 합환채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기도한 레아는 연이어 생명을 잉태했습니다.

이는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오직 하나님이심을 보여 줍니다.

혹시 나도 무능한 세상의 수단이 가진 '유사 전능성'에 속아,

진짜 전능하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능력 안에서 슬픔도 기쁨이 되는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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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된 만족 ]
찬송가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C.C.M)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 내게 만족함을 주나

결국 레아도 라헬도 하나님의 긍휼로만 만족하게 됨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결핍되면,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위로와 인정도 소용없습니다. 

야곱의 그 지극한 편애도 라헬을 위로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아무리 잘 해 주어도, 하나님께서 그 태를 막으시니 

그 마음이 너무나 슬펐던 한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사무엘상 1장).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고 말하는 엘가나의 말이

한나를 전혀 위로하지 못했지요.

라헬이 시기와 질투, 원망 가운데서 갖은 애를 썼지만 만족함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여종을 통해서 아들을 얻어 

이름을 ‘단’(억울함을 푸심, 문자적으로 '단'은 '판단하는 자, 판단'의 뜻)이라고 지어보지만, 

억울함이 풀리지 않습니다. 

경쟁(납달리, 문자적으로는 '나의 씨름'이라는 뜻)하여 이겼다고 외쳐 보지만, 

승리의 만족감이 없습니다.

반면에 사람에게서 버림받고 멸시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면 그 심령은 만족함을 얻습니다. 

하나님께 들으심을 받을 때(17절), 하나님께서 생각해주실 때(22절), 

비로소 보상이 되고(18절) 후한 만족이 있습니다(20절), 

레아에게 이런 만족함이 있었습니다.

라헬의 성깔이 정말 보통이 아닙니다. 

야곱에게 '죽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하는 모습에는 입이 딱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라헬까지도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십니다. 

오래 기다리셔서 기어코 그녀를 하나님 의지하는 자로 만들어 가십니다. 

오직 하나님께 기대하는 자로 만들어 가십니다.

결국 라헬도 부끄러움과 결핍에서 벗어납니다(23절).

하나님으로 충분하고, 하나님이 나의 전부이십니다. 

하나님이 생명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한 만족이요 영생입니다.

이것을 뼛속 깊이 체험하게 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위로와 보상을 오히려 차단시키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아멘!

1.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 내게 만족함을 주나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은 삶
오직 주님이 채워주시는 의와 신령한 것들이
내 영혼에 참된 의미 또한 기쁨 되나니
[후렴] 내가 구하는 것은 단 하나 주님 계신 나라 들어갈 수 있는 정결함이며
내 영혼 온전한 빛이 되어 날마다 주님을 깊이 체험하며 만나는 그것, 

내 한 가지 소원


2.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 내게 만족함을 주나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은 삶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는 허상 그리고 어둠뿐
변해만 가는 세상에서 단 하나의 영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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