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22. 수요일
창세기 29:1-20
- 목자들과의 대화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느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 라헬과의 만남과 라반의 영접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그가 라헬에게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게 거주하더니
- 7년의 봉사와 라헬을 향한 사랑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공동번역 :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지만, 라헬은 몸매도 아름답고 용모도 예뻐서)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게 있으라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
야곱의 여행길을 선하게 인도하셔서 라반의 집에 이르게 하셨다.
우물에서 라헬을 만난 일이 아브라함의 종 에벤에셀이 리브가를 만난 일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구하는 종의 기도하는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야곱이 라헬을 만나 초면의 여인 앞에서 입 맞추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뭔가 어색하다.
야곱이 라반에게 한 자신의 모든 일을 말하였는데 무엇을 어디까지 이야기했을까?
사람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과연 야곱은 팥죽 사건과 축복 사건까지도 말하였을까?
라반의 환대는 한 달로 끝난다.
정식으로 일꾼으로 채용하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된다.
결혼 자금을 준비하지 아니한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칠 년의 노동을 계약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니 칠 년이 수일처럼 지나간다.
야곱은 에서의 살해 위협을 피해 도망왔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아내를 구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과연 이 중대한 결혼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은 없다.
아브라함의 종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리브가를 만나고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던 종의 모습도 야곱에게는 없다.
레아와 라헬 중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성격과 인품보다는 외모에 한 눈에 반한 야곱의 모습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야곱과 함께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묵상한다.
주님
임마누엘, 야곱과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나의 삶의 모든 순간들에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함께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좌충우돌의 삶이었지만 그 과정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었음을 믿습니다.
에벧에셀의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믿고 오늘도 삶의 현장으로 나아갑니다.
성령님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믿고 의지하며
두려워하거나 근심하고 염려하지 않고 살아가게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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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이끄신 여정 ]
벧엘을 떠나 마침내 하란에 도착한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을 만나 라반의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라헬을 얻기 위해 외삼촌과 계약을 맺습니다.
2-10절
순조로운 만남을 예비하십니다.
야곱이 하란에 도착했지만 그곳에서 외삼촌을 찾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일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우물가에서 외삼촌 라반을 아는 목자들을 만나 라헬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이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라헬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만날 때와 흡사합니다(24:12-16).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니,
앞날에 대한 불안과 근심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깁시다.
15-20절
그릇된 삶의 자세를 바로잡으십니다.
야곱은 남의 약점을 이용해 귀한 것을 헐값에 가로채고(25:31),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남을 속이는(27:18-29)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라반과의 계약에서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기다리며 노동'하는 가혹한 조건에 스스로 묶였습니다.
하나님은 '속이는 자' 야곱을 '더 잘 속이는 자' 라반 밑에 두심으로,
그의 내면을 다루기 시작하십니다.
1절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의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브엘세바를 떠날 때만 해도(28:10) 천근만근이었던 야곱의 걸음이,
벧엘을 지나서부터는 깃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동행하고 계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28:16).
목숨을 위협하는 환난에도 두려워하지 않던 다윗처럼(시 27:1-3),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은 인생의 문제 가운데서도 그 걸음이 가볍습니다.
오늘 내 발걸음이 무거운 이유는 하나님을 잃고 살기 때문은 아닙니까?
11-14절
하나님의 인도는 기쁨을 동반합니다.
야곱은 라헬을 만나자마자 복받치는 감정으로 눈물을 흘렷습니다.
하나님의 절묘한 인도하심을 확인한 데서 솟아난 감격의 눈물이었습니다.
야곱은 기쁘게 환대하는 라반의 인도를 받으며 지나온 과거를 털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간증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의 인생에는 기쁨과 감격의 이야기가 쌓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 곳곳에 수놓으신 감동적인 아야기들을 헤아려 봅시다.
제 삶을 가장 적절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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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적 인도의 불확실성 ]
찬송가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
야곱이 외삼촌 라반이 사는 곳 근처에 이르렀습니다.
우물 곁에 모여 있는 목자들로부터 확인을 받았습니다.
감개가 무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공교롭게도 때마침 라헬이 그곳에 나타납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 식구 중 야곱이 최초로 만나게 되는 사람이 우물가의 여인 라헬이었던 것입니다.
야곱에게 이 만남은 운명적인 만남으로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이렇게 공교로운 상황들이 있습니다.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상황 말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특히 그 상황이 내가 원하는 상황일 때에 더욱 그렇습니다.
과연 야곱이 맞이한 이 상황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을까요?
17절의 공동번역은 이렇습니다.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지만, 라헬은 몸매도 아름답고 용모도 예뻐서].
말씀이 이 구절을 통해 우리에게 암시하는 의미는,
레아의 장점은 온유한 성품이었고 라헬의 장점은 뛰어난 외모였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래 야곱이 집을 떠난 이유 중의 하나는 아내를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28:1-2).
야곱은 레아와 라헬 중 누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배필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뜻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도할 필요를 느꼈을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야곱의 마음은 한쪽으로 정해져 버렸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18절에 ‘더 사랑’으로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 본문에는 ‘더’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레아도 좋아했지만 라헬이 더 좋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야곱의 마음에는 라헬밖에 없었습니다.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었습니다.
외모가 특출하지 못한 레아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고
라헬에게 야곱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러던 중에 외삼촌이 제의를 하는 것입니다.
대가를 받고 일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모든 상황이 맞아 들어갑니다.
머나먼 여행길 끝에 최초로 만나게 된 사촌 동생이 첫눈에 반할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데,
외삼촌이 먼저 기회를 주는 제안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품삯을 받고 일하라는 라반 삼촌의 제안에,
야곱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칠 년의 품삯 대신에 라헬과 결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라반이 승낙합니다.
야곱은 칠 년을 몇 일같이 여기며 일하였습니다. 참으로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이 사랑은,
에서에 비해 외형적으로 부족한 야곱을 오히려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과는 사뭇 다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야곱에게 기대하신 사랑은,
외모적으로 부족하지만 성품이 온유한 레아를 받아들이는 사랑 아니었을까요?
물론 야곱은 당연히 라헬이 자신의 합당한 배필이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상황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합당한 배필로 레아를 인정하십니다.
먼 훗날 이것이 확인됩니다.
35: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와
49: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유일한 소유로 장만한 무덤 땅에 장사된 야곱의 아내는 라헬이 아니고 레아였습니다.
또한 더 먼 훗날, 죄인의 영원한 신랑이 되어 주신 주 예수님에 의해서 이것이 재차 확인됩니다.
주 예수님은 레아가 낳은 아들 유다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상황적인 인도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야곱의 예를 통해 하나님은 보여주십니다.
특히 야곱과 같이 자기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의 사람은
더욱더 이런 면에서 주의해야 함을 보여주십니다.
야곱은 라헬을 자기 배필로 선택하기 전에,
그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먼저 여쭤봐야 했습니다.
라헬을 순조롭게 만나게 하신 것은,
야곱이 별로 예쁘게 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긍휼을 오해하여 지금 상황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야곱은 배워야 했습니다.
레아와 라헬 사이에서, 또 그들 사이에 태어난 자식 간에 벌어진 불상사(요셉 사건)로 인해서,
큰 고통을 겪은 후에야 야곱은 깨닫게 됩니다.
주님,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확인하여 행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칭찬으로 오해하지 않는 겸비함을 언제나 견지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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