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영성일기

안도의 전율

톨레 메움 에트 톨레 데움 2026. 4. 20. 07:03

2026.4.20. 월요일

창세기 27:30-46

 

- 돌아온 에서와 전율하는 이삭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축복하소서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 에서의 통곡과 야곱을 향한 원망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슬피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았았도다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나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았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이니

 

- 에서에게 주어진 예언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메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표준새번역 : 너는 칼을 의지하고 살 것이며, 너의 아우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애써 힘을 기르면, 너는 그가 네 목에 씌운 멍에를 부술 것이다.)

 

- 에서의 살의와 야곱 피신 계획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사람을 보내어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니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게 거주하라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향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

오늘 본문에 이삭, 에서, 리브가의 모습들이 묵상이 된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받고 나가자

에서가 사냥한 짐승을 가지고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들어간다.

그는 축복을 받을 것을 기대하며 가슴이 설레고 흥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벌어진 상황을 듣고 망연자실하여 대성통곡을 한다.

당시에 아버지의 축복권은 대단하였기 때문에 

그의 장래를 생각하면 단지 축복의 기도 그 이상인 것이다. 

현대로 말하면 작은 아들에게 상속권에 공인 인증을 한 셈인 것이다.

 

에서의 심정도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장자권은 가볍게 여기고 경솔하게 넘기더니

축복은 받으려는 에서도 허물이 전혀 없지는 않다.

이방 여인을 둘씩이나 아내로 맞이하며

부모의 가르침보다 자기 좋은대로 살아왔던 인생이다.

그런 에서가 축복은 받으려고 애달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모순처럼 다가온다.

축복을 받지 못한 섭섭한 마음은 미움과 증오로 자라고

결국 야곱을 죽이려는 살인 계획으로 확대된다.

가인과 아벨의  형제 살인사건이 오버랩되는 상황이다.

인간의 죄성은 변하지 않는다.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지...

 

이삭이 그의 형제들을 야곱의 종으로 주었다는 말은 무었인가?

에서와 야곱 외에도 다른 형제들이 있었다는 말인가? 이삭의 종들을 그리했다는 말인가?

이삭은 의외로 자신의 축복을 변개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 순종하는 이삭의 본 모습이 나타난다.

억지로 에서를 축복하려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일하심에 놀라 떤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짐을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통해 깨달았던 것이다. 

많이 두려웠을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동했고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려 했던 잘못의 위중함을 깨닫았기 때문이다.

 

리브가는 또 한 번 머리를 굴려 야곱을 피신시킨다.

헷 족속 가나안 며느리를 싫어하니

야곱을 친척들에게서 보내서 아내를 구해 오도록 하란으로 보내자고 이삭을 설득한다.

이삭도 가나안 며느리들을 싫어함을 알고 있었기에 만들어낸 계획이었다.

리브가는 권모술수에 능한 전략가처럼 보인다.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대단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여인이었다.

며칠이면 끝날 것으로 보았지만 20년이라는 긴긴 세월이 걸렸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 동안 그녀는 얼마나 후회했을까?

그래도 축복을 받았으니 위안을 삼았을까?

사랑하는 아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되어 버렸다.

 

이삭의 잘못된 계획으로 가족 모두가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고 형제들은 우애가 아닌 살의가 가득한 반목과 미움의 관계가 되었고,

부모 자식간에는 순종과 존경, 사랑 대신에 섭섭함과 미안함과 자녀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가정이 아니라 서로를 미워하고 그리워하고 고통 속에 새월을 보내게 되었다.

 

주님

모든 일에 정직하고 정의롭게 행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조금 손해보고 피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결정과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당장 작은 이익을 위해 평생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성령님 매사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결정을 하고 살아가도록

지혜를 주시고 선하게 인도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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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삭의 떨림, 에서의 살의 ]

 

야곱이 축복을 받고 나가자 에서가 별미를 들고 이삭에게로 나아갑니다.

이미 복을 빌어 준 이삭은 떨었고, 실망한 에서는 절규했으며, 리브가와 야곱은 다급해집니다.

 

30-33절

에서가 들어와서 축복을 요청하자,

이삭은 자신의 계획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음을 깨닫고 '심히 크게' 떱니다.

이 떨림에는 아들을 잘못 분별한 당황스러움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 언약의 방향을

자신의 편애와 고집으로 바꾸려 했다는 자각이 담겨 있습니다.

이때 이삭은 분노하거나 저주하지 않고,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선언하며 야곱을 향한 축복을 확정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의 주권 앞에 자기 고집을 내려놓고 순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내 계획과 다를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불평과 저항이 아니라

이삭과 같은 떨림과 순종, 그로 인한 삶의 전환입니다.

내 계획이 무너진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진짜 믿음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34-40절

에서는 자기에게도 축복해 달라고 울부짖습니다.

야곱이 속여서 복을 빼앗았다는 이삭의 말에, 야곱을 비난하며 억울해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제멋대로의 삶'과

장자의 권리를 팥죽 한 그릇에 팔아넘긴 '경솔함'을

뉘우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복을 놓친 것만 슬퍼합니다.

이는 에서가 자초한 결과입니다.

세속적 욕망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언약의 복을 받으려면,

우리가 욕망하는 대상이 하나님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41-46절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아챈 리브가는

야곱을 외삼촌인 라반의 집으로 피신시키려 합니다.

자신의 꾀로 아들에게 복을 안겨 주려 했으나,

그 대가로 아들을 타향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몇 날 동안'만 떨어져 있으면 될 줄 알았던 이별은 기약 없는 이별이 되어,

리브가는 생전에 야곱을 다시 보지 못합니다.

인간적인 술수와 욕심으로 얼룩진 그의 가정에

형제간의 살의와 부모 자식 간의 생이별이라는 뼈 아픈 고통만 남았습니다.

죄는 결코 개인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가족과 공동체에 상처를 남깁니다.

 

죄와 욕심으로 얼룩진 삶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구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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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의 전율 ]
찬송가 426장 이 죄인을 완전케 하시옵고

* 41-46절은 야곱이 하란으로 떠나게 되는 28장과 내용상 더 잘 연결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고

 또 ‘야곱의 전율’에 집중하여 묵상하기 위해 오늘 묵상 본문을 30-40절로 좁혔습니다.

야곱이 나가고 에서가 들어왔을 때, 이삭은 크게 떨었습니다. 전율하였습니다. 

그의 이 떨림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아들 야곱이 그를 속인 데 대한 분노였을까요? 

에서에게 축복하지 못하게 된 안타까움이었을까요? 

그렇다면 화를 내지 왜 떨었을까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몸이 떨린 것일까요?

만약에 이삭이 화가 나서 진노로 몸을 떨었다면, 

곧이어서 나오는 이삭의 말은 참 이상합니다.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분노했다면, 감히 아버지를 속인 야곱에 대해 저주하는 말을 해야 맞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자기를 속인 야곱에 대해서 축복을 인정해 버리는 말을 합니다.

33절의 ‘크게 떨며’의 히브리어 직역은 ‘두려움을 두려워하며(느끼며)’입니다. 

‘’크게’와 ‘떨며’는 두려움을 의미하는,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로서 

같은 단어를 두 번 반복하는 강조법이 사용된 표현입니다. 

그래서 ‘떨며’는 분노나 추위로 떠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공포나 걱정으로 떠는 것을 의미합니다.

칼빈과 어거스틴 선생님은 이 떨림을 안도의 전율이라고 역설적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깨닫게 되고 

감히 그것을 거역하려 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뜻대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 안도하게 되는, 그런 떨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 이삭이 에서에 대해 축복하는 말들을 보면 확실히 그렇게 보입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축복 아닌 축복을 이삭은 에서에게 하고 있습니다. 

축복해 달라고 소리 높여 우는 에서에게 오히려 저주 같은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네 아우를 섬길 것이라는 선언은

결코 축복이 아님에도 굳이 에서에게 확인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25:23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의 말씀을

이제야 이삭이 분명히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에서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해 주고 싶었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이제는 단호해집니다.

확실한 순종의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감히 하나님을 거역하려 했던 자신의 실수에 대해 크게 두려워하며 떨면서 말입니다.

이삭이 이렇게 믿음으로 회복될 것을 하나님은 아시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에서의 옷을 입고 와서 속이는 야곱에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속아 주셨습니다. 

결국 나중에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라고 회개하는 날을 분명히 내다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이렇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조급해하지 않으십니다. 

잠시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보면서도, 어리석은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보면서도, 

화내지 않으시고 단지 픽 웃으며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가 욕심 때문에, 게으름 때문에 미적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기다려 주십니다. 

무지하여 엉뚱한 짓을 하는 것도 봐 넘겨주십니다. 

곧 우리가 안도의 전율에 이를 것을 아시기에 여유롭게 기다리십니다. 

반드시 두렵고 떨림으로 온전히 엎드리는 순종에 이를 것을 확신하십니다. 

하나님의 충성된 사랑, 헤세드의 사랑이 이를 이루실 것입니다.

주님, 저도 이렇게 기다려 주셨음을 압니다. 

또 앞으로도 동일하게 기다려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제게 이렇게 기다려 주셨으니 

저도 마땅히 내 형제를 기다려 주며 계속 위하여 기도하고 사랑하겠습니다. 

안도의 전율 속에 우리의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아멘!

 

 

# AI의 부연 설명

 

성경 창세기 27장에서 야곱에게 속아 축복을 마친 이삭이

늦게 에서가 들어왔을 때 **"심히 크게 떨었다"**는 대목은 독자들에게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깁니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당혹감이나 아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읽히지만,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의 해석은 그 깊이가 조금 다릅니다.

1. 안도의 전율 (Tremor of Relief)

어거스틴은 이 떨림을 단순한 공포나 후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자의 거룩한 전율'**로 보았습니다.

  • 섭리의 인식: 이삭은 자신이 육신의 생각(장자인 에서를 축복하려는 마음)을 따르려 했으나,                                                                        결국 하나님의 본래 계획(야곱을 택하심)이 성취되었음을 직면하게 됩니다.
  • 저항할 수 없는 뜻: 자신이 실수한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앞에 압도된 것입니다.                                                 여기서 '안도'라는 표현은 **"내가 잘못된 길로 가려 했으나,                                                                                                   하나님께서 나를 막으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셨다"**는 영적인 안도감을 의미합니다.

2. 이삭의 반응이 증명하는 것

어거스틴은 이삭이 떨림 이후에 보인 반응에 주목합니다.

이삭은 야곱을 저주하거나 축복을 취소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창세기 27:33)

이 선언은 이삭이 자신의 떨림 속에서 이것이 인간의 계략을 넘어선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임을 수용했음을 보여줍니다.

즉, 이 떨림은 자신의 의지가 꺾이고 신적 의지에 굴복할 때 일어나는 '거룩한 경외심'의 표현인 셈입니다.

3. 신학적 함의

어거스틴의 관점에서 이 사건은 인간의 연약함과 고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위해 상황을 역전시키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삭의 전율은 자신의 눈먼 사랑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더 컸음을 확인한 순간의 영적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이 느낀 그 '떨림'은 단순한 당황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이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몸소 체험한 신앙인의 전율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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