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14. 화요일
창세기 25:1-18
- 아브라함의 다른 자손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 아브라함의 죽음과 장례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헬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 이스마엘의 후손과 그의 죽음
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람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족보는 이러하고
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 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 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 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열두 지도자들이었더라
이스마엘은 향년이 백삼십칠 세에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고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서 거주하였더라.
......................................................
믿음의 시조 아브라함이 향년 185세에 죽어 막벨라굴에 사라와 함께 장사된다 .
75세에 가나안에 들어와 175세에 생을 마감한 100년의 나그네 인생길이었다.
자신이 뭍힐 무덤 하나만 남기고 장마겡 살면서 본향을 향한 삶을 살았다.
아브라함의 처음과 나중을 보면 그의 믿음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믿음의 조상으로 귀한 본을 보여 주었다.
그동안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어떤 상태로 지냈을까?
하갈과 어린 이스마엘을 내쫓아 보낸 것을 후회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많았을 것이다.
죽기 전에 장자와 화해하고 싶었을 것이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유대 전통에는 아브라함이 나중에 아들 이스마엘과 화해하기 위해 몇 번 찾아 갔으나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이스마엘과 이삭이 함께 아버지를 장사지낸다.
이스마엘은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고 관계를 끊고 살았을까? 아니면 용서하고 관계를 회복했을까?
오늘 이스마엘이 아버지를 장사하는 자리에 이삭과 함께하고 있음은 용서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브라함은 그두라를 언제 후처로 맞이했을까?
사라가 죽고 난 후일까? 아마 노인이 혼자 살 수 없어 후처를 맞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일도 정확한 정보는 주어지지 않았다.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년에 더 많은 자식을 주심은 무슨 의미일까?
이삭과 서자들과의 갈등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 재산을 주어 동방으로 떠나 보낸다.
아마도 재산이 많아 유산에 대한 갈등의 소지가 있을 것을 예견한 것이리라.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소생들도 12 부족을 이루었다.
그두라를 통해 6명의 아들이 동방에서 살았다.
아브라함을 통해 많은 민족이 형성 되었다.
자손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는 달랑 이삭 한 명 뿐이었고 아들도 두 명뿐이다.
그러나 첩과 후처의 자손들은 약속의 자녀가 아니다.
그들이 번창하고 번성하였다고 하여도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이 아니다.
이삭을 제외한 첩과 후처의 소생들은
앞으로 이삭의 후손들과 끝없이 다툼과 전쟁 속에 살아간다.
지금도 이스마엘의 후손들과 이스라엘의 갈등과 전쟁은 계속된다.
만약 아브라함이 이삭만 낳았더라면 역사는어떻게 되었을까?
주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위하여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언약의 아들 이삭을 낳게하시며
그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게 하셨습니다.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역할은 여기까지 였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는 어떤 복을 주시겠습니까?
저도 개인의 구원에만 한정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사의 작은 한 부분을 담당하는 삶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성령님, 저의 인생도 의미있는 흔적을 남기는 발자취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이가 기억하는 아브라함의 죽음처럼 기억되는 죽음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
[ 죽어도 끝나지 않는 복 ]
아브라함이 죽어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지만
이삭과 이스마엘에 대한 하나님의 복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11절
아브라함은 죽었어도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이다"(21:12)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다 죽은 아브라함의 소망을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이어 가실 것이고,
결국 그 후손으로 태어나실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이미 누리면서,
그들처럼 완전한 성취를 기다리며 소망하고 있습니다.
12-18절
이삭뿐 아니라 이스마엘에게 주신 약속(21:13,18)도 성취하십니다.
이스마엘이 낳은 열두 아들은 모두 지역의 지도자가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마엘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21:20).
1-6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로 인간적인 정에 얽매이지 않고
약속을 중심으로 관계와 환경을 과감히 정리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에게 그랬듯이
그두라의 아들들에게 재물을 주어 떠나보냄으로써,
기업이 오직 이삭에게만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한편, 그두라를 후처로 맞은 사건은
본문 위치상 사라의 죽음 이후의 일처럼 보이지만,
사라 사망 당시 아브라함의 나이(137세) 등을 고려할 때
사라 생전 기간과 겹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창세기는사라를 통해 약속을 성취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아브라함이 끝까지 신뢰했음을 강조하기 위해,
그두라의 존재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7-10절
75세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오직 부르신 이만 의지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아브라함은
약속이 모두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가나안 땅에서 죽습니다.
100년 동안 하나님이 지으시고 경영하실 하늘의 도성을 기대하며 나그네로 살다가
175세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라와 함게 묻힌 막벨라 굴은 아브라함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소유한 가나안 땅입니다.
이곳에 묻혔다는 것은 죽는 순간까지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부르심을 받은 날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오직 하나님 나라만 소망하며 믿음으로 걷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삶과 죽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증명해 보이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
[ 영원한 유업, 약속의 유업을 받았으면 다 받은 것 ]
찬송가 489장 저 요단강 건너편에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여 자녀를 더 낳았습니다.
사라의 사후에 있었던 일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여생의 복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가 받은 진정한 복,
하늘의 복과 잠시 이 땅에서 누리는 복을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 얻은 자손들의 번성과 관계없이
하늘 자손의 번성을 바라보는 믿음을 견지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믿음을 죽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무덤 외에는 한 뼘의 땅도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하늘의 땅을 바라보는 사람임을 증거하였습니다(히 11:10).
자신과 사라의 무덤을 만든 땅 막벨라 굴만을 소유함으로써
그 무덤, 그 죽음에 모든 소망을 걸고 있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죽음이 끝이 아닌, 하늘 소망의 시작임을 증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다고 5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두라의 자녀들에게도 재산을 나눠주었으니,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실입니다.
약속의 자녀로서 아브라함의 유일한 상속자는 이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 언약의 복, 영원한 복을 상속받은 자는 이삭뿐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 복이 그의 소유의 전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진실을 확인해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영원한 하늘 복의 모형으로 받았던 이 땅의 복을 이삭이 이어받게 하심으로써(11절),
이삭이 아브라함의 상속자임을 확정해 주십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모든 소유를 준 것입니다.
그러니 이삭이 모든 소유를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장자는 이스마엘입니다.
후처에게서는 늦둥이들을 얻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장자가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고, 늦둥이가 더 귀여울 수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자녀를 그토록 바라던 아브라함이 86세에 얻은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첫아들이었습니다. 첫정이 무섭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유일한 아들로서 무려 14년 동안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지냈습니다.
이 첫정은 절대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늦둥이들에 대한 정은 또 어떻습니까?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 가나안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가운데 키웠던 이스마엘,
이삭에 비해 그두라의 자녀들은 아브라함이 노년에 가장의 역할을 이삭에게 물려 준 후에 얻은 아이들입니다.
느긋하게 노년을 보내면서 방긋거리는 아이들의 재롱을 즐겼을 것입니다. 얼마나 예뻤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준 아들은 이삭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상속자,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얻은 자녀가
진짜 아들이요 진짜 상속자임을 아브라함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한 복을 물려주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이삭이 받은 상속이 더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땅은 없었으니 논외이고 동산에 대해서는 나누어 주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 비율에 대해서 특별한 언급이 없기에 확인할 수 없지만,
이삭에게 특별히 많이 주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두 배였을 것입니다.
다만 자녀의 복을 보면 이삭이 받은 것보다 이스마엘이 받은 것이 훨씬 큽니다.
믿음의 자녀 이삭이 얻은 자녀는 달랑 두 명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이스마엘의 자녀는 열두 명이나 되었으며, 열두 명 모두가 부락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후처의 자식인 욕산, 미디안이 이삭보다 더 많은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두라의 아들들이 이 땅에서 자기들의 자리를 차지하였듯이,
이스마엘의 자손들도 그들의 영역을 확보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투쟁적으로(18절의 ‘그 모든 형제의 맞은 편에’를
표준새번역은 ‘모든 형제들과는 적대감을 가지고’로 번역) 살아갔습니다.
그 정도로 이스마엘의 세력과 소유가 대단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이삭은 히 11:10이 확인해 주는 대로 한 뼘의 땅도 없이 장막에 거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두라의 자식들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후손, 약속된 복의 후손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 백성에게’(17) 돌아가는 것으로 그 인생을 마감하는 서자들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영원한 유업은 없습니다.
이삭과 함께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이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들을 이삭을 떠나 멀리 살게 한 뜻이 이것입니다.
세상에서 얼마만큼 받아 가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유업의 약속을 받았느냐 아니냐가 성도에게 중요합니다.
영원한 유업, 약속의 유업을 받았으면 다 받은 것이고
그것을 얻지 못하였다면 잠시 땅에서 무엇을 얻더라도 아무것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약속의 유업을 받은 성도는 이 땅에서 무엇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다투는 싸움에 뛰어들지 않습니다.
26장에 기록된 이삭의 모습이 그런 모습입니다.
우물을 빼앗기고도 다투지 않고, 옮겨서 다른 우물을 파는 이삭의 모습이 바보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바로 모든 것을 받은 상속자의 마땅한 모습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속 옷을 달라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고 하신 뜻이 이것입니다.
주 하나님, 성도의 복이, 우리의 복이 영원한 복임을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세상에서 잠깐 받아 누리는 것의 많고 적음으로 일희일비하지 않겠습니다.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자임을 증거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자녀에게 이 복을 물려주는 자랑스럽고 행복한 부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마지막 죽음을 통하여 하늘의 소망을 분명히 증거하는 자가 되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아멘!
'2026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부전자전 (2) | 2026.04.16 |
|---|---|
| 이삭의 기도, 하나님의 선택 (0) | 2026.04.15 |
| 행동과 결정의 근거, 하나님의 뜻 (1) | 2026.04.13 |
| 하나님의 인도하심 (1) | 2026.04.11 |
| 사라의 죽음과 히브리인들의 최초의 땅 (0) | 2026.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