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인서 돌을 맞이하여
2022. 11. 17
성경 본문 말씀 :
1. 마태복음 22장 36-39절
36절 :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37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7절 :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요
38절 :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39절 :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 요한복음 13장 34-35절 :
34 절 :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절 :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먼저 인서가 큰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서 오늘 돌잔치를 하게 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는 오늘 인서의 돌을 맞이하여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2021년 11월 18일 현수와 신혜의 둘째로, 인우의 동생으로, 양가의 손녀와 외손녀로
우렁찬 울음과 함께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인서가 저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과 행복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인서를 양육한다고 많이 수고한 신혜와 현수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돌잔치에 말씀을 전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먼저 떠올랐던 단어가 사랑이었습니다.
아니 인서를 위해 기도할 때 마다 늘 떠오르는 단어가 사랑이었습니다.
인우를 위해서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먼저였고, 믿음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기도했습니다.
인우와 인서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인우, 인서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저에게 큰 행복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손자, 손녀를 향한 사랑 때문에 저의 사랑도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습니다.
오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헬라에로 사랑을 4가지 단어로 구분하여 표현한다고 그러지요?
⓵아가페, ⓶ 필리아 ⓷스토르게, ⓸아가페
남녀 간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과 우정, 부모 자식 간의 사랑 그리고 신적인 아가페 사랑
아마도 조부모가 손자들을 사랑하는 것은 아가페 사랑에 조금은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과연 인우와 인서를 향한 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지 돌아봅니다.
젊은 날 저의 사랑이 작아서 하나님께 저의 사랑의 크기가 자라기를 기도하곤 했습니다.
저의 사랑의 나무 아래에 많은 사람이 쉼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 바랬습니다.
아직도 저의 사랑의 크기는 너무 작아서 지금도 그 기도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들이 익히 잘 아시는 본문입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어떠한지,
나의 가족과 자녀와 형제와 이웃을 향한
자신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본체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스스로 모든 것이 충만하신 분이시지만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과 사랑하는 관계를 원하셔서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 사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분이십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목 박혀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공의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들이 십자가에 죽도록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전능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우리는 감히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리기에는 한계를 느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또 어떻습니까?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사랑 아닙니까?
저는 대학교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 사랑을 깨닫고 나의 구주로 영접하였고,
이 분이 가신 곳이라면 지옥에라도 따라가겠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 줄 사랑이 여러분에게는 있습니까?
저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장기기증을 위해 장기 하나쯤은 내어줄 수는 있어도 생명까지 줄 자신은 아직 부족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일면식도 없는 나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이 감사해서 지금까지 그분을 위해 살며 그분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큰 바위 얼굴>이야기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닮고 싶은 것입니다.
그 사랑을 수시로 구하고, 노력하지만 아직도 그 길은 요원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것이 참 많습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관계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관계에는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수평적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수평적인 관계의 만남을 마틴 리버는 ‘나, 너, 그것’이라는 말로 분류합니다.
어떤 사적인 목적이나 사무적인 만남, 성공, 명예, 경제적인 활동 등을 위하여 만나는
피상적인 관계를 나와 그것으로, 진실한 인격적인 만남을 ‘나와 너’의 만남으로 분류합니다.
이 ‘나와 너’의 만남에서도 요구되는 것 또한 사랑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관계를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진실함, 신실함, 관심, 배려, 이해, 겸손, 인내, 의리, 믿음 등등
여러 가지 가치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상대를 향한 관계가 깊어지고, 지속되고, 의미가 있고, 기다려지게 하며 행복해 하는데
사랑보다 더 나은 다른 덕목이 있을까요?
가장 위대한 사랑의 소유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는 것보다
살아가면서 더 소중하고 가치 있고 행복하고 영원한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 인서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배우고 잊혀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깊어져
정말 주님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받은 그 풍성한 사랑으로
자신의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부모를, 오빠를, 조부모들을, 성장하면서 만나는 교회와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성인이 되어서는 직장 동료 및 사회생활 하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더불어 사랑할 뿐만 아니라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는 아이, 이웃들로 부터도 사랑받는 아이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갈수록 마음들이 강팍해 지고 사랑이 메말라 가는 자기중심적 삶을 살아가는 시대에서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경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삶이 있겠습니까?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는데, 가정이 하나 되는데, 관계가 하나 되는데도
사랑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늘 변하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사랑이 저절로 생기고 깊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배우고 훈련한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싶습니다.
성령님께 기도하고 구하고 노력한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믿음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디 믿음뿐이겠습니까? 사랑도 그리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은 어떠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며
이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제일 큰 것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믿음과 소망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사랑은 관계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많았던 고린도 교회에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바울 사도는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관계적인 문제가 있을 때는 성령께 그 사랑을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깨어진 부부 관계로 별거하면서 사는 중년의 한 남자와 이야기하면서
제가 울컥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인생 살면서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며 살아도 부족한 짧은 시간을 살다 가는데,
가장 가까운 관계인 아내, 자식에게 왜 힘들게 하고 아픔을 주고 살아가느냐고 말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나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아 같이 울었습니다.
부부가, 부모 자식 사이에, 형제와 자매 사이에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아껴주고 섬겨주어도 부족한 짧은 시간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상처주고, 상처받으면서 서로를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멀리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진정성이 떨어지지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사도 요한이 말씀하신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시죠.
우리 모두 서로를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갔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은 인서의 첫 번째 생일입니다.
사랑하는 인서와 인우가 늘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사랑받고, 받은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랑이 풍성한 아이들로 성장하고 살아갔으면 참 좋겠습니다.
더불어 육체도 정상적으로 발육하고 발달하여 건강하고 튼튼하게 잘 자라가고,
좋은 성품과 인격을 형성해 가며, 마음이 따뜻한 아이가 되며
지혜롭고 총명하며 명철한 아이,
논리적 사고, 기억력, 창의력, 판단력, 이해력, 상상력 등
지적인 성장도 뛰어난 아이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는 아이가 되고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기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해 가기를 바라고
인서와 인우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충만하게 임하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에게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닮아가며,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흘러 보내는 복된 인생,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가 헬라어로 네 가지를 표현하고 있다.
♡ 에로스 : 이성간의 사랑으로 야심에 불타는 정열이나 강한 애국심에도 사용하고 있지만 육체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또한 뜨겁지만 지속하지 못하는 욕망을 표현할 때도 사용하는 단어이다.
♡ 스토르게 : 가족 간의 애정을 표현하는데 백성들이 그들의 지배자에 대해 가지는 사랑, 국민이나 가족의 수호신에 대한 사랑에도 사용되지만 통례적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가지는 사랑을 나타낸다.
♡ 필리아 : 친구간의 우정이나 부부간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어떤 사랑을 애정에 찬 관심을 가지고 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적인 사랑도 포함하나 그 이상의 것으로 자애로 이름다운 관계를 표현하는 사랑을 말한다.
♡ 아가페 : 원수를 용납하거나 강요보다 자발적인 희생의 사랑을 표현하는데 신이 인간에게 향하는 사랑이나 인간이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을 말하고 있다.
*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단순하지 않음을 본다. 그런가 하면 한글 성경들이 비슷한 단어들로 열거하여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음을 본다. 다음은 히브리어 '헤세드'가 어떻게 번역되었는가에 대한 허성갑 목사님의 검색 내용이다.
1. 개역 개정(1998. 10)의 번역
인애, 인자, 인자하심, 은혜, 은총, 후대, 선한 일, 선대, 긍휼, 자비, 불쌍히 여김, 진실한, 사랑, 동정, 한결 같은 사랑,
아름다움, 우의 (17개) 개역개정은 개역한글과 비교하여 15군데의 교정 외에는 변동이 없다.
2. 표준 새번역(1993. 10)의 번역
은혜, 은총, 친절, 인애, 사랑, 한결 같은 사랑, 변함없는 사랑, 첫사랑, 총애, 자비, 충성, 잘 보살핌, 우정, 갸륵한 마음씨,
의리, 인정이 많은, 성실, 필요, 미쁘심, 인자, 인자하심, 자비하심, 상냥함, 신의, 경건한, 관용 (26개)
3. 킹 제임스(1994. 4)의 번역
은혜, 친절, 호의, 자비, 자비하심, 자애, 자애하심, 선, 선함, 선대, 은총, 인자하심, 선한 행위, 동전, 선하심, 자비로우심,
상냥함 (17개)
4. 쉬운 성경(2001. 10)의 번역
자비, 자비로움, 자비와 은총, 인애, 인자, 나를 위하는 길, 친절, 은혜, 사랑, 변치 않는 사랑, 크신 사랑, 한결 같은 사랑,
진실한 사랑, 변함없는 사랑, 효도할 마음, 잘 돌보아 주심, 진실, 성실함, 신실함, 도움, 충성, 잘해 줌, 좋은 일, 동정,
아름다움, 복, 경건한 (27개)
5. 우리말 성경(2004. 12)번역
자비, 자비하심, 자비가 넘침, 변함없는 자비, 인자, 인자하심, 친절, 잘해 줌, 신실함, 호의, 은혜, 은총, 긍휼, 사랑, 선함,
신실하신 사랑, 변함없는 사랑, 한결 같은 사랑, 큰사랑, 아름다운 마음씨, 아름다움, 충성, 헌신, 특별한 대우, 동정심,
가엾게 보심, 가엾게 여기는 마음, 돌보시는 마음, 성실함, 따뜻한 (30개) 히브리어직역구약성경(2006. 3): 인애,
인애하심(2개) 처음 괄호는 발간 년도이며 마지막 괄호는 단어의 개수다.
이에 대하여 허성갑 목사님은 "헤세드란 단어가 과연 이렇게 다양하게 번역된 것이 타당한 것인가?"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필자도 공감하면서 필자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목회학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게 설명해 보려고 한다.
첫째, 하나님의 부성적 사랑 '헤세드'(인애)
구약성경에서 '헤세드'는 모두 '인애'로 12번 번역되었다. 그것을 내용별로 보기로 하자.
1) 야곱은 요셉에게 죽음을 앞에 놓고 나를 '인애(헤세드)'로 대접하여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조상의 선영에 장사해 달라고 부탁한다(창 47:29).
2)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진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헤세드)'를 베푸신다고 하셨다(신 7:7, 12)
3) 보아스가 룻에게 한 말이다. "너의 베푼 '인애(헤세트)'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 하도다"(룻 3:10). 룻은 기업 무를 자 곧
대를 이을 자를 찾고 있었다. 결국 룻은 보아스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부성애를 통해 인류를 구원한다.
이 밖에도 "여호와는 인애(렘 9:24), "나는 인애를 원 한다"(호 6:6; 12:6), 인애가 크신 하나님(욜 2:1),
인애를 기뻐하시는 주님(미 7:18, 20) 등등으로 하나님의 부성애를 묘사하고 있다.
둘째, 하나님의 모성적 사랑 '라하밈'(자비)
우선 '라하밈'의 어원이 '레헴(자궁)'이라는 점이다. 이는 '라하밈'이 모성애로서 긍휼, 동정, 불쌍히 여김 등의 상응어로 번역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어 자체가 본성적인 모성애를 표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1)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복하는 땅의 탈취물 전부를 불사르라고 하신다. 그러면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라하밈)'를 베푸신다고 약속하신다(신 13:17).
2) "주의 많은 '자비(라하밈)'를 쫓아내 죄과를 도말하소서"(시 50:1) 라는 다윗의 시다.
감싸시는 모성애로 죄과를 없애 달라는 소원의 기도다.
3) "우리 하나님은 '자비(라함)'하시도다(시 116:5)." 4절에서 "내 생명을 구원하소서" 하는 호소에서 나온 고백이다.
이 밖에도 출 34:6, 신 43:1, 대하 30:9, 시 78:38, 시 103:8, 시 111:4 등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셋째, 하나님의 구속사적 사랑 '아하바'(사랑)
'아하바'는 하나님의 영원하고 불변하며 완전하신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구속함에 있어서 흔들림이 없는 창세전에 예정하시고 선택하시며 성취하시는 사랑인 것이다.
1) 간음한 여인 고멜을 사랑한 호세아의 사랑은 하나님의 고속사적 사랑을 예표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아하바)하라" (호 3:1).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길 때는 이웃 나라의 전갈의 매와 질병과 고난의 채찍으로 징계를 하시며 돌아서게 하셨다.
이것은 언약을 따라 택한 백성을 끝까지 놓치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시며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이다.
2) 구약 '아하바'는 신약 '아가페'로 대체(代替)하셨다.
아가페는 로마서 5장 6, 7, 8에서 더욱더 확증된다.
"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6~8)."
3) '아하바'나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의 반영으로서의 여러 가지로 사용되었다.
요나단의 다윗을 향한 사랑(삼상 18:3, 20:17), 헌신의 덕목으로서의 사랑(사랑의 수고, 살전 1:3), 그리스도인의 덕목으로서의 사랑(딤전 4:12), 성령의 열매로서의 사랑(갈 5:22), 연합과 충성으로서의 사랑(첫사랑, 계 2:4).
넷째, 하나님의 값없이 주는 사랑 '헨(은혜)'
1)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헨)를 입었더라(창 6:8; 18:3)."
2)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헨)'를 베푸느니라(창 20:6)."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카리스)'니라(사 55:3)."
4) 구약 '헨'은 신약 '카리스'로 대체(代替)되었다.
(1) "'은혜(카리스)'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카리스)'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3)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카리스')가 나타나(딛 2:11)."
이상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의 종류를 열거해 보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본 하나님의 사랑은 성경을 가르치거나 말씀을 전달하실 때,
심도 있는 의미를 전달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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