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글모음

당연한 것은 없다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2. 12. 14. 11:38

해방을 맞이한 지 어느덧 77년입니다.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주님의 옷자락을 묵상하다 보니

문득 독일 통일의 주역 비스마르크가 남긴 명구가 떠오릅니다.

"역사의 문을 뛰쳐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한 광경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짜릿함과 놀라움에 젖은 눈빛으로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됩니다.

역사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존재의 본질에 다다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경이로로운 은혜입니다.

 

은혜란 무엇일까요?

내게 찾아온 어떤 것도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진실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어떤 것이 은혜임을 아는 순간, 경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감사가 밀려옵니다.

당연하지 않은 은혜는, 밑으로 향하는 중력과 달리 우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무에서 유를 값없이 만들어 내는 하나님의 창조는

피조물에게는 당연할 수  없는 경이로운 사건입니다. 

세상이 존재하고 보존된다는 그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은혜이지요.

과학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우주의 구조가(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심오하다고 말합니다.

우주 기본상수 중 어느 하나가 조금만 달라지면 별이 하나도 없든지, 모조리 타버리든지, 

아니면 바람 짜진 풍선처럼 푹 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주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놀랍게 조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극장입니다. 

 

 이 창조 세계에서 은혜는 보이는 모든 선물의 토대가 되고,

선물은 보이지 않는 은혜의 실천적 작용입니다. 

은혜가 추상에서 나와 구체적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 선물입니다. 

만약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면, 선물 없는 은혜도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선물 없는 은혜를 주장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좌절될 수 있습니다.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은혜는 오직 선물로만 전달됩니다.

이러한 이치를 생생히 간직했던 고대에는

상품을 사고파는 현대와는 달리,

선물을 주고받는 교환시장이 상상 이상으로 정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무대를 장식했던 은혜와 선물은, 노자의 무대에서는 '도'와 '덕'으로 등장합니다.

그에게 우주의 본질은 '도'이며, 천지 만물은 '도'에서 탄생합니다. 

형상도 형체도 없는 '도'에서 천하가 시작됩니다.

만물의 어머니인 '도'는 아무리 써도 다하지 않고 마르지 않는 신비로운 힘이며,

그 '도'가 드러나면 '덕'이 된다는 것이지요.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고 했습니다.

'도'와 '덕'이라는 일반은총의 나무는 '은혜'와 '선물'이라는 특별은총의 나무와 마주합니다.

이 또한 당연하지 않은, 그래서 감미로운 만남입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영국 런던에는 주일이면 사람들이 이리저리 거리를 뛰어다녔습니다. 

주일예배를 드릴 자리를 찾기 위해서였지요.

시내 곳곳 교회마다 자리가 꽉 차 예배 드리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진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불과 한 세대 만에 그렇게 뛰어다녔던 사람들은 자취를 감추고,

런던 시내 대부분 예배당은 텅 비어 버립니다. 

한 언론인이 연유를 밝히고자 영국을 방문해서

여러 신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과학자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수많은 대화 중에 그의 가슴에 가장 깊이 남은 대답은

연세가 지긋했던 구십이 넘은 신학자에게 들었던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망치로 얻어맞은 듯했던 그 한마디,

은혜는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더는 은혜가 아닌 것이 되고 만다는 진리,

하늘을 향한 경외감을 잊지 말라는 경고,

성경은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당연히 여기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칼뱅은 은혜를 호의라고 정의했습니다. 

내 인생에 베푸시는 하늘의 호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서는 곤란합니다.

은혜의 날에는 원수 같더니 사람도 불쌍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이해 안되던 사람도 이해가 된다고 하지요.

조출한 식사도 얼마든지 하늘의 만나가 됩니다.

이를 각성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나에게 주시는 모든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새록새록 감사한 마음을 갖기 마련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포로 되고 눌린 자에게 자유가 찾아오고,

은혜 위에 은혜가 산맥과 파도처럼 밀려오는 환상이 열리기 마련입니다. 

당연하 것은 없다는 진리의 렌즈로 성경을 보면 

온 천지에 공동선의 노다지가 돌처럼  깔린 것이 보입니다.

 

---- 매일 성경, 송용원 목사의 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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