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사랑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2. 12. 29. 09:01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사랑은 비움의 사랑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이신 분이 피조물의 형상으로 피조세계에 들어오신 사건이다.

인간들이 범죄하여 구원받을 길이 없어서 

이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물로 죽으시기 위하여 오셨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표가 있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서 죽으심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셨다.  

인류의 모든 죄를 감당하신 놀랍고 위대하고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의 절정이다. 

 

우리는 수도 없이 사랑 타령을 하지만

참 사랑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더욱 탈진리를 살아가는 시대에

피상적이고 찰라적이며 육체적이고 쾌락적인 사랑만 추구하고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그 사랑에 실망하고 허탈해하며 좌절하고 아파한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다.

그런데 자신들이 신보다 더 똑똑하다고 큰소리친다.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우이독경이다.

자기 좋은 소견대로 살아간다.

지금이 사사시대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다고 말할 수 없다.

참 진리, 절대 진리에는 관심이 없다.

참 사랑, 이 놀랍고 위대한 최고의 사랑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계를 경험할 때마다 조금씩 깨닫게 된다.

엄마가 되어 아이를 낳아 보고 길러보면서 어른이 되어 간다.

인생을 알고 삶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그런데 결혼도 자식도 낳지 않고 오직 자신의 만족과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게다고 한다.  

그렇게해서 누리는 행복이 정말 참 행복일까?

 

오늘 아침에도 요한 사도가 들려주는 사랑의 이야기를 듣는다.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신 최고의 선생을 뒤따라가는 것

닮아가는 것, 보고 들은 대로 살아내는 것이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 아니겠는가!

 

먼저 이 사랑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알고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과 글로만이 아니라 그 사랑을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신 분이 계시기에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분도 완전한 인간이셨기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랑이 내 안에 충만히 거하게 하자.

성령이여 도와주소서.

내 안에 이 사랑이 차고 넘쳐서 이웃에게, 교회에 흘러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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