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갈등하는 양심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2. 24. 21:01

본문 : 마가복음 6장 14-29절

 

마가는 갑자기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 사역을 위해 길을 연 선지자다.

그가 오늘 너무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마가는 예수님의 사역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왜 이 이야기를 중간에 삽입한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야를 아내로 맞이한 사건을 두고

세례요한이 이 일이 옳지 않다고 잘못을 지적하자

헤롯은 이 여자를 위하여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헤로디야는 자기의 욕망이 요한에 의하여 세상에 들어나자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하면서도 달갑게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헤롯은 요한을  죽이려는 헤로디아의 청은 거절하는 모습은

말씀을 잘 이해하고 권위를 인정하며 자신에게 적용하기도 하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않는 것이다.

요한을 죽이지는 않음으로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실천하고 불순종의 불씨는 남겨둔다.

절반의 순종으로 불순종을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는가?

허물을 드러내는 뼈아픈 지적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헤로디야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잔치를 할 때

자신의 딸을 시켜 춤을 추게 하였다.

술에 취한 헤롯이 헤로디야의 딸이 분위기를 흥겹게 하자 기분이 좋아서 허세를 부린다.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도 주리라 하거늘.."

그러자 딸이 망설이다가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헤로디야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하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자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헤로디야가 참 무서운 여자다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허물을 들추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기회를 옆보다가 철저히 계획된 일을 시행한다,

그것도 자신의 어린 딸을 이용하여 잔인한 살인을 청부하게 만들고,

소반에 요한의 머리를 들고 어머니에게 갖다 바치게 하는 무서운 여인,

술에 취한 남편의 허세를 이용하여 남편을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고 

권력을 이용한 살인자로 만들는 냉혈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유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우리 속담이 생각난다.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식도 남편도 이용하고 목적을 달성하고 마는 여자였다.

인간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다. 

 

반면에 헤롯은 허세를 부리기 좋아하는 인물이었나 보다.

귀빈들 앞에서 소녀의 춤에 기분이 좋아졌다고

자기가 얼마나 권위가 있고 말의 권세가 있는지 자랑하고 싶고,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이 작은 일에 왕이 맹세까지 한다.

소녀의 요청에 자기 말을 취소할 수도 없고  거절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자

체면과 자기 말의 권위가 떨어지고 위신이 서지 못할까 봐 요청을 들어준다.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한 인간의 생명보다 가치있다고 결정한 것이다.

세치 혀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존재가 일국의 왕이었다.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 요한을

망설임 없이 죽이고 잔인하게 목을 베어 오게 명령한다.

요한의 질책에 크게 번민하면서 달갑게 들었던 그였지만

자신의 체면과 위신과 권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요한의 목을 베어 오게 한다.

그는 양심의 소리에 귀를 닫아 버린다.

 

양심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가두어 둔다면

언젠가 그말씀을 아예 무시하게 될 것이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회개는 아니다.

죄와 단절하고 떠나지 않으면 그 죄가 나를 가두고 지배할 것이다. 

헤롯은 지적을 받을 때 돌아섰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니까 살인자가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애써 외면할려고 할 때가 참 많았다. 

사탄의 유혹 앞에 무너질 때가 많았었다. 

죄와 수많은 유혹 앞에서 망설인다는 것은 양심의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성령의 음성에 지체하지 않고 결단하여 죄와 유혹의 자리에서 과감하게 돌아서만 한다.

 

성령님 !

내 마음을 지켜 주시옵소서.

진정한 양심은 성령으로 거듭한 양심임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겨진 양심임을 압니다.

그 양심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순종하게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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