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달리다굼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2. 22. 09:39

달리다굼

 

본문 : 마가복음 5장 35-43절

 

야이로의 마음은 타들어간다.

왜냐하면 혈루병 여인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발걸음이 지체되고 있다. 

겨우 상황이 정리되어 출발하려고 하는데 집에서 기별이 와서 아이가 죽었다고 한다.

그러니 예수님을 집에까지 모시는 것은 수고롭게 하는 일이니 중단하라는 것이다. 

 

실날같은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주저앉고 싶었을 것이다.

혼란스럽고 두렵고 희망이 없고 절망적이다. 

모든 희망을 포기하려는 그때 주님이 말씀하신다. 

"두려워 말라 믿기만 하라."

믿음을 유지하라고 명령하신다.

딸의 병을 고쳐달라고 처음 예수께 엎드렸을 때 가졌던 믿음을, 

딸이 죽었더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하신다. 

 

우리도 동일한 상황을 경험한다.

예수께 믿음으로 기도하는 중에 상황이 더 나빠졌을 때를 만난다. 

이 때가 중요하다. 믿음이 요구되고 믿음으로 결단해야 하는 시기이다.

"계속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포기하지 말고

주님의 때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구원을 이루실 것을 기대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 최종적인 승리를 이루실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예수님 안에 희망과 약속이 있다. 

희망이 없다고 느껴지고 두려울 때 자신의 문제를 예수님의 눈으로 보자.

그리고 두려워 하지 말고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믿기만 하자.

 

그리고 따라오는 모든 무리를 따라오지 못하게 하시고

야이로,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시고 서둘러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신다. 

야이로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래도 12년된 혈루병 여인이 고침받음을 기억하면서 

무너져내리는 희망의 끈을 놓치 않으려 발버둥치면서 한 가닥 희망을 붙들고 있었을까?

 

집에 도착하자 어린 아이의 죽음으로 집안은 떠들썩하고 곡하는 소리가

집안 모든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야이로는 마음이 더 무너졌을 것이다. 

주님이 말씀 하신다.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곡하는 자들이 비웃는다. 그들은 돈을 받고 곡을 하는 여인들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장을 비웃는다. 

비신자들은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야이로의 마음 속에는 두 소리가 충돌하고 있다,.

'떠들고 통곡하는 소리'와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는 예수님의 소리가 들려온다.

'딸의 죽음은 죽은 것이 기정사실이므로 인간의 희망은 없다'라는 목소리와

'죽은 딸이 마치 자다가 깬 것처럼 부활할 것이다'라는 목소리가 충돌하고 있다.

두 음성 사이에서 어느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지금도 세상은 절망스런 현실 앞에서 그저 낙담하라고 요구하지만,

예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라고 요구하신다. 

삶과 생명을 모두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그리시는 더 큰 그림을 보라고 요구하신다. 

 

예수님이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부모와 제자들과 함게 아이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는 

"달리다굼."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 걸으니 사람들이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도록 많이 경계하시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신다. 

 

야이로는 믿음이 약해져 갈 때도 있었고 유혹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끝까지 참아냈다. 

딸의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주님 됐습니다. 여기까지 함께 해주신것만도 감사합니다. 

더 이상 수고스럽게 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의 격려와 말씀에 예수님을 믿어보기로 결단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들어보지도, 보지도 못해던 야이로이지만

실날같은 희망을 품고 예수님을 믿어보기로 결단한 것이리라. 

그 결정이 오늘 딸을 다시 살게 하였다. 죽었던 딸을 다시 살리고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엘리야, 엘리사, 베드로, 바울이 죽은 자를 살리던 모습과는 다르다. 

선지자들과 제자들은 하나님게 기도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에는 그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소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던 분이 말씀으로 죽은 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그렇다. 

 

오늘 "달리다굼"이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내 영혼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린다.  

죽어가는, 죽었던 모든 세포들을 다 깨워서 살게하여 주시기를 기도한다.

내 생각도, 믿음도, 삶도 다시 소생하는 아침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연일 내리고 있다.

주차장 가는 길에는 매화가 피었더니만  

진료실 창 밖의 동백나무에도 한 송이 붉은 동백꽃을 피워냈다. 

 

만물이여 들으라.

사람들아 들어라 .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달리다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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