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비가 내리는 출근길이다.
출발 FM에서 나오는 진행자 멘트가 여운을 남긴다.
김수연 시집 제목이 [4월의 '미', 7월의 '솔']이란다.
함석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봄에는 화음 미로 여름 빗소리는 솔로 두 음 높게 난다는 의미라고 한다.
자동차 와이퍼가 연신 빗물을 쓸어내고 있다.
신호등에 걸려 차를 세우고 라디오로 들려오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이럴 때 따듯한 커피가 한 잔 옆에 있으면 금상첨화련만 ....
밤새 비가 내렸다.
배란다로 흘러내려가는 빗물 소리에 잠을 깼다.
일요일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설친 탓인지 어제 밤에는 깊이 잠이 들었었는데..
일어나 거실 미닫이 문을 열고 태화뜰을 바라보는데 구름이 내려와 앞 남산을 가렸다.
장마철이다.
개인적으로 비를 좋아하는 성향이다.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은 한 폭의 수채화같은 느낌이다.
카카르시스를 경험하는 순간이며 정화의 시간이다.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비를 보면 약간은 경건함마저 든다.
가끔은 그 비를 온 몸으로 맞고 걷고 싶을 때도 있다.
어린 시절 장마철에 흙탕물이 거세게 흘러가는 시내를 보고 있노라면
그 물에 몸을 싣고 떠내려가고 싶기도 했었다.
비는 고마운 것이다, 아니 필수적인 것이다.
비 없이는 동물이나 식물 뿐만 아니라 사람도 살 수가 없다.
그러나 많은 양의 비는 감당할 수 없을 피해를 초래한다.
생태계를 바꾸고 지형과 지물도 바꾸어 놓고 동.식물의 생사여탈권도 갖고 있다.
과유불급이다.
광야에도 비가 내리면 식물이 나고 자라며 꽃을 피운다.
늦은 비와 이른 비를 내려 주시면 곡식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때를 따라 적당히 내리는 비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비는 많은 것을 이동시킨다.
쓸고 내려간다.
더러운 것들이 씻기어 간다.
먼지도 쓰레기도 더불어 씻어낸다.
우리 마음에도 비가 내리면 정화가 된다.
우리 말에는 비의 종류가 참 많다.
이슬비, 보슬비, 가랑비, 장대비, 소낙비 처럼 비의 굵기에 따른 이름과
봄비, 여름 장마비, 겨울비, 가을비 처럼 계절에 따라 붙혀진 이름도 있다.
꽃비도 있다.
--- 빗줄기의 굵기에 따른 이름
* 안개비 : 빗줄기가 아주 가는 비
* 실비 : 실을 드리운 듯 가늘게 내리는 비
* 는개 : 안개보다 조금 굴고 이슬비보다 좀 가는 비
* 억수비 : 물을 퍼붓듯이세차게 내리는 비
* 장대비 : 굵은 빗발의 비가 쉴 새 없이 세차게 내리는 비
* 큰비 : 내리는 양이 한꺼번에 많이 쏟아지는 비
* 작달비 : 굵직하고 거세게 퍼붓는 비
* 모다깃 비: 뭇매를 치듯이 내리는 비
* 비꽃 : 비 한 방울 한 방울 비가 시작될 때 몇 방울 떨어지는 비
* 가루비 : 가루처럼 보슬보슬 내리는 비
* 가랑비 : 보슬비와 이슬비
* 싸락비 : 씨래기처럼 포슬포슬 내리는 비
* 달구비 : 달구로 짖누르듯 거세게 매리는 비
--- 비가 내리는 양, 비가 내리는 때, 비가 내린 뒤 효과에 따른 이름
* 봄비 : 말 그대로 봄에 내리는 비
* 가을비 : 가을에 내리는 비
# 떡비 : 가을 비 -가을걷이가 끝나 떡을 해 먹으면서 여유롭게 쉴 수 있다는 뜻
* 겨울비 : 겨울에 내리는 비
# 숨비 : 겨울 비 - 농한기라 술을 마시면서 놀기 좋다는 뜻
* 밤비 : 밤에 내리는 비
* 칠석물 : 칠월 칠석에 내리는 비
# 여름에 내리는 비는 여름비라라 하지 않고, 낮에 내리는 비도 낮비라 하지 않음
* 참비 : 여름에는 바쁜 일이 없어 비가 오면 낮잠 자기 좋다는 의미
* 여우비 : 맑은 날에 잠깐 내리는 비
* 보름치 : 음력 보름께나 비나 눈이오는 날씨
* 그믐치 : 음력 그믐게에 비나 눈이 오는 날씨
* 늦은비 : 철 늦게 내리는 비
* 이른비 : 철 이르게 내리는 비
* 도둑비 : 예기치 않게 밤에 몰래 살짝 내리는 비
* 단비 : 곡 필요할 때 앨맞게 오는 비
* 악비 : 오랜 가움 끝에 내리는 비
* 찬비 : 내린 뒤에 추위를 느끼게 하는 비
* 웃비 : 비가 계속 올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쫙쫙 내리는 그치는 비
* 먼지잼 : 겨우 먼지 나지 않을 정도로 조금 오는 비
* 개부심 : 장마에 큰 물이 난 뒤 한동안 쉬었다가 한바탕 내리는 비
비가 그쳐 강변을 걸을까 하다가 비에 대한 글을 적고 있다.
장마철에는 부침개를 해 먹으면 제격이다.
오늘 저녁 무엇을 해 먹을지 아내에게 물어봐야겠다.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비옷을 사 본적이 없다.
내 손을 거쳐간 우산은 많다.
그러고보니 우산도 참 다양하고 기능도 다양해졌다.
어릴 때 들은 이야기로는 영국에는 비가 자주 내리니까
영국 신사는 늘 우산을 들고 다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대한민국도 이제 아열대성으로 기후가 변해가고 있어 여름철이면 스콜 현상처럼 비가 온다.
그래서 병원 외래에도 차 트렁크에도 우산 하나쯤은 준비되어 있다.
비가 내린다.
내 마음에도, 내 추억 속에서도 무성 영화 필름처럼 비가 내린다.
봄이면 꽃비가 내렸고, 여름이면 여름 장마비가 내리며
가을이면 형형색색의 단풍이 낙엽되어 대지에 내려앉을 것이고
겨울이면 하얀 눈비가 내릴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린다.
생명을 안고 대지에 내려 앉는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내릴 것이다.
비가 내리면 않으면 모든 것이 죽는다.
감사의 마음으로 비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