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기도 : 고요한 마음과 내적 침묵
단순한 기도와 하나님의 현존 연습
기도는 깊어질수록 점점 단순해진다.
내면의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되면서 생각이 단순해지고 마음은 고요해지기 때문이다.
복잡하거나 산만했던 생각은 정돈되거나 내려놓게 되고 감정의 움직임은 평온해진다.
영혼이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다고 느끼면서 내적 기쁨이 충만해진다.
하나님과 연합한다는 것,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이런 상태일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뜻에 따르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단순해질수록 수용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도가 깊어지기 위해 먼저 생각이 단순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로렌스 형제로 잘 알려진 니콜라 에르망(부활의 로랑 형제 니콜라 에르망)은 [하나님의 현존 연습]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누리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연습은 온전한 삶을 살도록 이끈다고 말한다.
로렌스 형제에게 하나님의 현존은 "하나님이 자신의 영혼 안에 계심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는 무수한 노력을 통해 하나님의 현존에 집중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본다.
그렇게 되기 까지 영혼의 깊은 중심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바라면서
하나님과의 예정 어린 대화를 연습했다고 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는 즐거움과 행복을 준다.
하지만 로렌스 형제는 그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현존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바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저 단순하게 하나님과 거룩한 동행을 하라는 말이다.
기독교 역사에는 이렇게 단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억하며
거룩한 현존 가운데 머물도록 돕는 기도 방법이 여럿 있다,
이 기도들은 정화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거나 우리 한계에 갇히지 않도록
마음 밭을 가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수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의사 생활을 하던 중 성경을 읽다가 회심하여 신앙을 갖고, 후에 영국 러시아정교히 총대주교를 역임한
안토니 블룸(Anthonu Bloom)은 [기도의 체험] 을 통해 기도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블룸 대주교가 보기에 기도는 " 하나님께로 향한 겸허한 동경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바로 자신은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기도할 때 지녀야 할 마음 자세라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 라는 세리의 고백은 겸손한 기도 자세의 원형이다.
자신은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 죄인임을 인식하고 있는 세리의 고백은 예수께 의롭다고 인정받았고,
세리의 기도는 복음의 중심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는 간청하는
고전적 기도인 "예수기도"의 기초가 되었다.
사막 교부들의 전통 안에서 싹튼 예수기도는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는 기도이다.
하지만 동방교회에서 시작되어 4-5세기 서방교회 예배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을 통해 유사한 형태를 볼 수 있다.
교파에 따라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혹은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로 번역되는 "키리에 엘레이손"은
개신교 예배에서는 특별한 때를 제외하면 경험할 수 없지만,
정교회와 카톨릭 그리고 성공회 예배에서는 지금도 드려진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님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기도 생활의 중심으로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5세기 포티케의 디아도쿠스(Diadochus of Photice)와 6-7세기 요하네스 클리마쿠스(Joanenes Climacus)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디아도쿠스는 예수를 기억하며 마음을 정화하라고 강조했고,
클리마쿠스는 예수에 대한 기억을 호흡과 하나가 되게 하면 침묵과 고요의 열매를 맛보게 된다고 가르쳤다.
예수기도를 대중에게 널리 알린 작품은 한 러시아인의 순례 이야기인 [이름 없는 순례자]이다.
1870년에 처음으로 출판된 이 책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와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엡 6:18)라고 가르치는
성경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 시작된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 헤매던 순례자는 한 스승을 만나 예수기도를 배우게 된다.
"내심으로 하는 끊임없는 '예수의 기도'란 예수님 앞에 있다 생각하고
어디서나 어느 때나 잠들었을 때라도 항상 마음과 생각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끊임없이, 그저 줄곤 부르는 호칭 기도이다.
...마침내는 안 하면 못 견디게 되고, 절로 입술을 타고 흘러나오게 된다."
교부들이 전해준 전통적인 방법에 따르면, 예수기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기도문으로
들숨과 날숨의 호흡에 맞추어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의 방법은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면서 숨을 내쉬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숨을 들이쉬면서 전체 기도문을 말하고, 내쉬면서 다시 전체 기도문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둘째 방법은 더 훈련된 사람들에게 적절하고, 숙달된 지도자의 식별과 안내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정신을 집중시키고 " 하나님을 마음 속에 간직하게" 된다.
예수기도는 '심장 기도', 또는 '마음의 기도'라고 불리는데, [이름 없는 순례자] 속의 순례자는
"심장의 고동 소리를 주의 깊게 들어가며, 호흡의 박자에 맞추어
심장 안에 예수기도를 넣었다 뺐다 하는 방법"에 관해 설명한다.
숨을 들이쉬고는 " 주 예수 그리스도여"라고 외친 후 숨을 그대로 가슴에 머물게 하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면서 숨을 내쉬라는 것이다.
순례자는 이렇게 드리는 기도를 하루에 삼천 번, 육천 번, 만 이천 번, 그리고 할 수 있는 만큼 횟수를 늘려가면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항구하게 기도하도록 이끄는 예수기도를 통해
순례자의 마음은 기쁨과 평화에 사로잡히고,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기억과 함께 하나님의 현존으로 나아가는 유익을 맛볼 수 있었다.
이처럼 예수기도는 예수님의 존재와 이름을 마음 깊이 간직하며 살기를 열망했던 이들이
가슴에 품고 입술로 되뇌던 하나의 중심추였다.
짧은 문장 기도
하나님의 거룩한 현존을 끊임없이 기억하는 기도 훈련에 대한 언급은 요하네스 카시아누스에게서도 나타난다.
사막 영성을 서방에 소개한 요하네스 카시아누스는 [제도집]에서 짧게 자주 하는 기도에 대해 기록하고
[담화집]에서 이사악 압바(abba)의 가르침을 통해 자세히 설명한다.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하기 위해서는 온갖 '생각과 걱정과 기억을 마음 안에서 몰아내야' 하므로,
기도 중에 원수가 마음을 어지럽힐 기회를 찾지 못하도록 짧은 기도를 자주드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편 70:1이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를 반복하라고 가르친다.
'카시아누스의 저술들을 폭넓게 인용하는 베네딕도(480-547년) 수도회 규칙서는 이 기도를 소중하게 여겨
각 시간경("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님을 찬양하나이다"라는 시 119:14에 기반을 둔 것으로,
하루를 여러 번 나누어 일정한 간격으로 정해진 기도를 드리는 것을 말한다.)을 이 구절로 시작하도록 했다.
카시아누스는 짧은 문장의 기도가 분심에서 벗어나 고요에 이르는 길로 묵상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장치라고 제시한다.
그래서 "지성은(풍부하고 충만한) 온갖 사고의 자료를 버리고 통제하여, 빈약한 한 구절로 스스로를 제한해야 한다"라고
가르친다. 짧은 문장 기도를 그저 주님의 현존으로 가기 위한 도구로 보는 카시아누스는
어떤 이미지도 없이 단순하게 한 음절을 반복하는 이 기도를 "가난의 기도"라고 말한다.
카시아누스의 짧은 문장 기도를 소개하는 [그리스도교 묵상]의 저자 존 메인(John Main)은
자신에게 알맞는 성경구절을 찾아 충실하게 반복하라고 제안한다.
기도는 말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게 있기 위한 시간이고,
자시중심적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 구절에 자신을 제한할때까지 끊임없이 집중하는' 단순한 기도를 계속해서 드리라는 것이다.
향심기도(向心祈禱)
"나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 게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 6:6)
'향심기도', '중심으로 가는 기도', '중심 기도', '센터링 침묵기도'로 번역되는 'centering Prayer' 는
하나님의 실재와 인간의 언어 및 이미지 사이에 차이가 있으므로 이런 중간 매개체를 제거하고
우리 내면 깊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에 단순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내면의 방인 마음으로 들어가 '생각이나 느낌. 감정과 이미지'의 문을 닫고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넘겨드리는 데서 기도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도는 하나님과 더욱 깊은 친밀감을 형성해가는 '관계적 기도'이자,
은혜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수용적 기도'라고 한다.
하나님의 현존에 머물기를 갈망한 사막 교부들의 기도를 현대 언어로 새롭게 옷입힌 향심기도의 창안자 중 한 명인
토머스 키팅은 이 기도를 '지향적 기도'라고 말한다.
어떤 특정한 것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존재 깊이 좌정하신 하나님을 지향하는 기도라는 것이다.
이 기도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하나님 안에 머물려는 열망으로 기도를 시작하는 것뿐이고,
나머지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기도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없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활동을 멈추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미 내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도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지향하는 기도이며,
무엇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라는 기도이다.
향심기도의 기초가 되는 14세기 영적 고전 [무지의 구름] 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것은 그대의 열망에 달려 있다. 하나님을 향한 오로지 하나님만을 향한, 꾸밈없는 의향이면 충분하다.
만일 그대가 이 의향을 쉽게 기억하기 위해 한마디로 요약하려 한다면
짤막한 낱말을 택하되 가급적이면 한 음절로 된 날말을 택하라.
그리고 택한 낱말을 마음속에 단단히 간직해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거기에 늘 머물러 있으라. ...
그것은 평화시나 전쟁시나 마찬가지로 그대의 방패와 창이 되어줄 것이다,."(7장)
이런 가르침에 따라, 향심기도는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에 동의를 표현하는
하나님의 상징으로 거룩한 단어를 사용하라고 한다.
'주님',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사랑', '거룩', 등의 단어를 선택하여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분산되고 기도가 방해받을 때 사용하라는 것이다.
거룩한 단어로 돌아가는 그 시간이 바로 하나님께로 지향을 돌이키는 행동이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향심기도는 네 단계의 길잡이를 통해 기도 지침으 ㄹ안내하며 최소 20분 동안의 기도를 제안한다.
내적 침묵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20-30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기도 지침
1)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에 동의한다는 지향의 상징으로 거룩한 단어를 선택한다.
2) 편안히 앉아 눈을 감고 잠시 자리를 잡은 다음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에
동의한다는 상징으로 거룩한 단어를 부드럽게 불러들인다(고요히 떠올린다)
3) 생각에 빠져들었다면 아주 부드럽게 거룩한 단어로 돌아간다.
4) 기도를 마칠 때는 눈을 감고 2분간 침묵 속에 머무른다.
향심기도가 주는 선물은 내적 침묵이다.
내적 침묵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참 자아(True Self)가 회복되도록 내적 변형을 촉진한다.
피상적 사고의 차원을 넘어 깊은 의식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순수한 기도를 반복하는 것이 필요한 데, 향심기도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매일 성경에서 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