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성일기

멸망과 속량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4. 11. 09:05

본문 : 누가복음 21장 20-28절

 

예루살렘 성의 멸망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다고 말씀하시;면서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말씀하신다. 

 

종말에 대한 묵시적 내용들을 일러주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심판과 구원의 역사이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적한 세력에게는 심판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다.

 

인간은 늘 그 때가 언제인지를 궁금해하며 살아왔고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때에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가 죽음과 부활로 성취되었다. 

신학적으로 already but not yet 의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구원의 완성,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연약한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 하고, 고통을 피하고 싶고 고난을 힘들어 한다.

어떻게 하든지 이 상황을 피하고 싶어한다.

인류에게 그 길은 제시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자는 그 길을 찾아야 하고, 그 길을 믿고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자는 시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악한 영적 세력들과 세상으로 부터 조롱과 핍박과 고난을 받으며 살아도

그 때가 되면 머리를 들게 될 것이다. 

믿는 자들의 속량의 때가 임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이야기하시면서도

예루살렘의  속량을 말씀하고 계신다. 

구원의 확신과 소망을 단단히 붙잡고 오늘도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리라.  

주님이 부활하셨기에 나 또한 주님과 연합된 몸으로 부활의 신앙으로 힘차게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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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날, 속량의 날 ]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날을 예고하신다.

'암탉이 자기 새끼를 날개ㅔ 아레 모음같이' 끊임없이 예루살렘을 품어 오셨지만,

그들이 선지자들과 메시아까지 죽이며 거절했기 때문이다.

성전의 파괴와 예루살렘의 멸망은 패역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하ㅏ님이 자비를 거두실 만큼 죄가 깊어지기 전에 돌이켜야 한다.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기 전에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이 땅의 교회가 주 앞으로 나아가 회개하도록 기도하자.

 

군대(로마군)가 예루살렘을 에워싸는 것을 보변 그때가 멸망의 날일 줄 알고 피하되,

조금도 지체하지 말라고 하신다.

마치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에

롯과 그의  가족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하신 것과 같다.

우리는 타락한 도성에, 변질된 종교에 동화되어선 안 된다.

비록 그 속에서 살더라도 정신과 삶은 구별되어야 한다.

지금 죄를 멀리하며 살아야 심판 날에 주저함 없이 죄의 도성을 빠져나갈 수 있다.

어떤 유혹이 우리를 '멸망할 예살렘'에 주저앉히고 있는가?

 

'하나님께 권세와 영광을 받아 온 세상의 왕이 된 인자'로서

예루살렘을 멸하시고 성전을 무너뜨리실 것을 말씀하신다.

이 일을 통해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옛 이스라을 심판하시고,

핍박을 견디며 믿음을 지킨 새 이스라엘의구원과 승리를 선언할실 것이다.

인자의 구너세는 한편으로 메시아를 거절한 권력과 껍데기뿐인 종교에 대한 심판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핍박 중에 인내하며 믿음의 정절을 지킨 

자기 백성에 대한 구속으로 나타날 것이다. 

 

성전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은 성전이 파괴되는 날에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절망을 경험할 것이다.

성전이 돈과 권력의 도구로, 교만과 위선의 온상으로 전락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결과이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껍데게 종교에서 벗어나,

사랑과 정의의 예수님을 모신 참 성전 공동체를 세워가자.

 

불의한 도시와부패한 종교에 동화되지 않고 속량의 날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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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조를 주어 준비하게 하시는 하나님 ]

마지막이 가까울 때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은 온 우주적으로 닥치는 마지막도 있고 우리 각 개인의 마지막도 있습니다. 

그때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예루살렘이 군대에 에워싸이면 그 멸망이 가까운 것입니다. 

징벌과 환난과 곤고와 진노의 날이 닥칠 것입니다. 

그 환난과 곤고가 얼마나 극심한지 아이 밴 자들, 젖 먹이는 자들도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합니다. 

그들을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생각만 해도 기절할 정도라고 하십니다.

이런 일들이, 이런 징조들이 우리의 주님께서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실 날 가까이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오히려 일어나 머리를 들라고 하십니다.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새벽은 더욱 가까이 있습니다. 멸망이 가까우면 속량도 그만큼 가깝습니다.

 '망했다' 하는 그 순간에 사람들은 기절하는데(26절), 성도는 일어나 머리를 듭니다(28절).

극심한 환난을 막아주시지도 않으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니, 오히려 일어나 머리를 들라고 하십니다. 믿음으로 이겨내라고 하십니다. 

믿음이 없으면 믿음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예행연습을 시키고 사전에 징조도 주겠다 하십니다.

주님이 너무 엄격하신 것 같습니다. 연약한 우리를 이렇게 몰아붙이시다니...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날은 맞서거나 피하는 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날이고 맞설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날입니다. 

또한 마지막 날은 단 한 번밖에 없는 날입니다. 

그 날을 제대로 맞지 않으면 다시 두 번의 기회가 없습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래서 제대로 준비해서 정면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무섭다고 싫다고 피하거나 기절하면 안 됩니다. 

철저히 준비해서 맞아야 합니다.

마지막 날을 바르게 맞이하는 방법은 믿음으로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최후 심판은 힘으로 맞서서 없애거나 제거할 수 있는 위험이 아닙니다. 

마지막 심판, 개인의 마지막인 죽음은 우리가 힘으로 극복하거나 분쇄할 수 없기에 

오직 믿음으로 맞서는 것만이 성공적인 대응 방법입니다.

절대 실패하면 안 되는, 단 한 번의 기회이기에 

예행연습을 시키고 여러 번의 다양한 징조를 통해 충분히 준비하게 하십니다. 

구약에 기록된 모든 징조들을 하나하나 다 이루어 보이면서 경고해 주십니다.

잘 모르면 지나치게 염려하거나 두려워하게 됩니다.

미리 알고 준비하여 맞으면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결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까지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날들을 결코 길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 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도저히 힘들어서 안 되겠다 싶을 즈음에는 피할 길을 내실 것입니다. 

[고전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감당하라는 뜻은 위험을 제거하고 대적자를 박살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감당하다’의 헬라어는 ‘휘포페로우’로서 문자적인 뜻은

 ‘아래에 있어 지탱하다’입니다. ‘끈기 있게 참다’의 뜻입니다. 

믿음으로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자 되심을, 사탄과 핍박자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는 피조물일 뿐임을 알고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을 믿으며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모든 일상의 위험에 대해서 단지 참으며 기다리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지막 종말 심판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에 

일상에서도 할 수 있는 한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기다리는 연습을 많이 해야겠습니다. 

감당(휘포페로우)하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위험을 박살 내기만 하지 말고요. 

진짜 그날, 실전은 한 번밖에 없는 그날, 절대로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주님, 약속 믿고 잘 견디는 연습을 하겠습니다. 

마지막 날을 확실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연습하겠습니다. 

사전 징조를 주어 준비하게 하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믿음의 분량이 자라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한계, 딱 거기까지만 시험을 허락하겠다고 하셨으니 

지레 겁을 집어먹고 엄살을 떨지 않겠습니다. 

금보다도 귀한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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