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스더 3:7-15
모르드개에 대한 감정이 전 유대 민족에게 확산되어 유대인 전체를 멸절하려고 계획을 세운다.
무리들이 1월달에 모여 주사위(부르)를 던져 거사일을 12월로 정한다.
왕에게는 한 민족이 왕의 법률을 다르지 않으니 제거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한다.
그로 인한 손실 보전을 위해 은 일만달란트를 헌납하겠다고 제의한다.
왕이 이를 허락하자 모든 지역의 언어로 조서를 작성하여 내린다.
이제 페르시아 전 영토의 유대인들은 11개월 동안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한 인간의 증오심은 이렇게 엄청난 파장을 가져온다.
주사위를 던져서 계획을 결정하는 무지한 인간들의 세상사에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시는 것 같다.
결과를 알고 본문을 읽는 우리야 감정에크게 변화가 없지만
이 조서를 받아 든 유대인들은 어떠했을까?
맑은 날에 청천벽락같은 이 소식에 안연질색하여 실신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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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서 있습니다.(잠 16:33)
하만은 페르시아에 사는 유다 백성을 진멸할 나을 정하기 위해
흙으로 만든 작은 주사위인 '부르'를 사용합니다.
이방 우상숭배자들의 제비뽑기에 하나님 백성의 운명이 결정되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침묵하고 계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하만의 선택과 과정과 결과는 모두 하나님의 뜻 안에 있으며,
하만이 정한 날은 하만에게 파멸의 날, 유다 백성에게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부르'는 그 구원의 날을 기리는 '부림절'의 어원이 될 것입니다.
하만은 유다 백성을 '한 민족'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름조차 거론할 필요하 없을 정도로 하찮게 여깁니다.
그는 모르드개에게서 느끼는 단편적인 감정을 유다 백성 전체의 민족서으로 과장하며,
페르시아 전역에 퍼져 사는 유다인들의 배타적 성향이 반역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하수에로왕에게도 유다 민족이 하찮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유다인들도 페르시아에 속해 있는 엄연한 왕의 백성인데,
자세한 사정과 근거를 알아보지 않고 하만이 바치겠다는 은 일만 달란트의 뇌물에만 혹해 말살정책을 승인합니다.
"옳게(히. 토브) 여기시거든"이라는 하만의 말에 왕은 "좋을(히. 토브) 대로 행하라"고 응답하지만,
인간의 계획은 하나님이 "좋았더라"(히. 토브 창 1장) 여기시는 대로 만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에게 좋게'가 아닌, '하나님께 좋게'를 추구해야 합니다(갈 1:10).
뇌물과 모함과 왜곡이 출세 방법으로 통용되는 곳에서,
그리스도인은 기꺼이 명예로운 무명으로 남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진멸해야 할 아말렉 후손의 손에서
유다인이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죽이고 진멸하라는 조서가 만들어집니다.
'첫째 달 십삼일'에 쓰인 조서는 '열두째 달 십삼일'에 집행될 것입니다.
끔직한 조서를 반포한 후 술잔을 기울이는 왕과 하만은 11개월 동안도 태연할 것이고,
유다 백성은 11개월 동안 공포와 위협 속에 살 것입니다.
하지만 이 11개월은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기에도 너무도 넉넉한 시간입니다.
불의와 부정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명예로운 패배자의 길을 걷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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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어 계시는 하나님 ]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유다인 모르드개는 하만이 아말렉 족속(아각 사람)임을 알고서 하만에게 절하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인지한 하만은 치를 떨며 분노하였습니다.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습니다.
유다 민족 전체를 진멸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길일(?)을 택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
제비를 뽑는 날도 아무날로나 하지 않고 신중히 선택합니다.
첫째 달에 제비를 뽑았는데, 유다인 진멸 결행일은 열두째 달 13일로 뽑혔습니다.
[에스더 3:7]
아하수에로 왕 제십이년 첫째 달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제비를 첫째 달에 뽑았는데, 결행일이 열두째 달로 뽑힌 것은 우연일까요?
에스더서에는 모든 성경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삼위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표현이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행되는 사건에 대한 해설이나 인물에 대한 판단도 거의 없습니다.
아주 담백하게 외부자의 시선으로 상황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더서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왕후 와스디의 폐위 조서, 왕비 후보가 된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아니한 사실,
특별한 치장을 하지 않고도 에스더가 왕의 눈에 사랑스럽게 보여 왕비가 된 것,
모르드개가 우연히 왕에 대한 시해 음모를 알게 된 것,
이를 알려 왕의 목숨을 구했음에도 아무런 포상을 받지 않고 넘어간 사실,
어느 날 밤 왕이 잠이 오지 않아 우연히 읽은 역대 일기가 이 사건 기록이었다는 것 등 수없이 많습니다.
열두째 달로 결행일이 뽑힌 것은 하만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만은 하루라도 빨리 복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열두째 달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그전 3월에 모르드개만이라도 먼저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하만의 음모에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대항을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비라는 수단을 통하여 마련해 주셨습니다. 보려는 자들에게는 이것이 보입니다.
권력과 미신과 돈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심지어는 거짓말까지 해가면서(8절), 마귀는 성도를 대적합니다.
하만은 무려 은 일만 달란트를 아하수에로 왕에게 뇌물로 바치며 유다인 진멸 조서를 받아냅니다(9절).
일만 달란트는 약 350톤으로서, 당시 페르시아 제국 1년 수입의 2/3에 해당하는 거액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세력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일에 동조하는 것 같고, 성도는 너무나 나약한 것 같습니다.
온 세상이 난리가 난 듯 어수선한데,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듯 침묵만 하십니다.
대적은 이런 상황을 즐기며 우리를 조롱합니다(15절).
하나님은 왜 이렇게 자꾸 숨으시는 것일까요?
우리의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것입니다(히 11:1).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이 참된 믿음, 복된 믿음입니다(요 20:29).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환상을 보고, 기적을 체험하고 믿는 믿음에서
보지 않고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갈수록 점점 더 깊이 숨어서 우리 삶에 간섭하십니다.
숨어 계시는 하나님은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시력을 키워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숨어서 역사하기를 좋아하십니다.
주 하나님, 믿음의 눈을 더 크게 열어 주옵소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밝히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복된 믿음 가지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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