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시편 119편 113-128절
시인은 말씀을 훼방하는 자들의 속임수를 고발하면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말씀을 지키는 자들의 안녕이 확보되고 하나님의 명성이 회복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주의 말씀에 희망을 두는 이에게 은신처가 되어주신다.
하나님은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들을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다툼에서 면하게"(시 31:20) 해주신다.
지금 우리가 온갖 권모술수에 노출되어 있는 것 같을지라도
실상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골 3:3).
삶의 질곡 속에서도 말씀으로 우리의 은신처가 되어주시고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하게 방패로 막아주니(요일 5:18)
오늘도 감사함으로 주의 말씀을 붙들고 살기를 소원한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 행악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두 마음'은 마음의 연약함 때문에 헛갈리는 감정이라기보다,
헛된 생각과 탐욕에 시선을 두며 몸이 기울어져 있는 상태이다.
두 마음을 품은 자와 행악자가 나란히 배치된 구절에서
우리는 확정되지 못한 마음이 결국 악한 삶으로 이어짐을 깨닫는다.
말씀 묵상이 내 모든 삶에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고후 10:5) 하는 시간이기를 기도하자.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온다.
시인은 말씀의 지팡이에 지탱하면서만 말씀을 따라 걷는 길이 가능함을 알았기에
그 말씀에 붙들리기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을 붙드는 일은
사실 이 말씀이 우리를 붙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시인은 하나님 편에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교만함으로 악을 일삼는 자들의 극심한 훼방으로 진리가 힘을 잃고
시인의 마음도 낡은 옷처럼 너덜너덜해졌다.
그래서 시인은 지금 하나님이 모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우리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답답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간구하며,
주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착한 일을 해내자.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며 우리 일을 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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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심 ]
찬송가 316장 주여 나의 생명/ (C.C.M) 나의 맘 속에 온전히
<시편 119:113-128>
113.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114.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115. 너희 행악자들이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
116.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117.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118. 주의 율례들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그들의 속임수는 허무함이니이다
119.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찌꺼기 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사랑하나이다
120.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심판을 두려워하나이다
121. ○내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사오니 나를 박해하는 자들에게 나를 넘기지 마옵소서
122.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들이 나를 박해하지 못하게 하소서
123.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124. 주의 인자하심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내게 주의 율례들을 가르치소서
125.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
126. 그들이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니이다
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128.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모든 주의 법도들을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112절 복습>
(1-64)
시인에게 믿음이 생겼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걷는 삶이 복되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씀 붙드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일용할 양식과 평안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나아가서 말씀을 깨닫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시인이 이렇게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사모하게 된 것은, 말씀이 생명이요 소망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65-11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시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주의 율례를 배우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율례를 가르치신 방법은 자기 부인의 고난을 통해서였습니다.
자기 부인의 고난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율례의 능력을 배운 시인은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약해져도 말씀을 놓지 않습니다.
자기 부인의 고난을 통해
자신을 포함한 온 세상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탱되고 있음을 더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말씀을 붙듭니다. 종일, 항상, 늘 말씀을 묵상합니다. 말씀을 먹고 마셔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합니다.
(113절)
그랬더니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꽉찬 전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미워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14절)
세상은 끊임없이 하나님만을 사랑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심지어 생존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내 안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가치관에서 나를 지켜줍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붙들 수밖에 없습니다.
(115절)
사랑하는 것이 많은데, 그 중에 제일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사랑을,
하나님께서는 사랑이라고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을 행악자들이라 부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마음, 이 전심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만듭니다.
(116-117절)
종일, 항상, 늘 말씀을 묵상할 때 전심 곧 하나님의 뜻에 항상 주의하는 마음(117절)이 이루어집니다.
이는 말씀이 가치관, 인생관, 인격이 된 상태를 말합니다(종심소욕불유구).
전심 가진 자를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리십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118-120절)
이 전심이 없는 자를 주께서 멸시하시며 찌꺼기같이 버리십니다.
그는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께는 ‘적당히’가 없습니다.
우리가 전심을 가지지 못하면, 전심을 이루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영원한 멸망과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도저히 우리의 능력으로는 이 전심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형벌, 영원한 지옥을 면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두려운 심판을 면하는 길은 예수님을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구원이 전심 없이도 가능한 것이라면,
적당한 수준의 사랑과 순종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고도 구원받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도 믿고, 돈도 믿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온전하신 하나님께서는 '적당히'가 아닌, 전심을 요구하십니다.
정확히는 전심을 원하고 구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 수준까지 이루어주실 것을 믿고 원하며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는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자는 이 믿음, 이 소원 가진 자입니다.
자기로서는,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이 일을
주 예수님께서 그의 주인이 되어 이루어주실 줄 믿고서 예수님을 주인(왕)으로 영접하는 자입니다.
(121-128)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주로 영접한 자 곧 믿는 자를 의롭다 인정하시고(121절),
그에게 성령님을 선물로, 보증으로 주십니다(122절).
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124-125절).
육체와 환경의 장애를 초월하여 말씀을 묵상하게 해 주십니다(126-127절).
종일, 항상, 늘 말씀을 묵상하도록 만드십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전심을 가지도록 만드십니다(128절).
주 하나님, 우리에게 예수님을 구주로 보내주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믿는 자에게 성령님을 선물로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의 복음을 붙듭니다.
종일, 항상, 늘 말씀을 묵상하게 하셔서 전심을 만들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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