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지속되는 5우러 초순이다.
5/5~5/6일 연휴에 광주에 계시는 작은 형님을 만나뵙기로 했다.
수주 전에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을 비워두시라고 했다.
살아가면서 고향 방문도 뜸해지고 형님과 많은 시간을 가져본 적이 너무 적다.
그래서 다른 계획을 제처두고 떠나기로 했다.,
토요일에는 정목사님이 카톡으로 신불산 산행에 동참의 문자가 왔지만 양해를 구했다.
주일에는 여러가지 일들로 마음이 무겁고 영적 짖눌림이 심해져 온다.
일기 예보는 이틀 종안 비 소식이 있다.
아침 일찍 서둘러 고향으로 차를 운전했다.
모처럼 장거리 운전이다.
다행히 잔뜩 흐린 날씨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오후에 언제 비가 내릴 지 몰라 서둘러 출발했다.
오전 11시 30분, 3시간 반을 운전하여 산소에 도착했다.
형님이 먼저 와 계셨다.
이제 장손인 조카 소유가 되엇지만 밭에는 조상들의 묘가 있가.
고조, 증조, 조부모, 큰 형님까지 7봉의 묘가 있다.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 밭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묘에 있는 잡초들을 손으로 뜯어내다가 돌아 왔다.
여수 엑스포 때문에 고향 옛날 도로가 4차선 도로로 확장하고 있었다.
그 도로에 우리 논 일부도 도로에 편입되고 말았다.
옥과에서 점심을 먹었다.
'옥과촌'이라는 식당이엇는데 문전성시를 이룬다.
울산도 생고기가 유명하지만 이 집의 고기를 더 맛있고 부드럽고 육즙이 흘러나오는 것이 맛있다.
음식점은 뭐라해도 음식이 맛있어야 성공하는 법이다.
시설이나 직원의 친절도는 부차적인 것이다.
이 집도 한결같은 맛과 푸짐함이 유지되면서 광주에서도 이 시골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잊고 있었는데 5/5일은 형님의 결혼기념일이고, 할머니의 기일이며, 조카 세희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다.
맛있는 고기를 대접을 해드린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점심을 먹고는 담양 메타스퀘이어 거리를 걷기로 했다.
연휴이고 어린이날이다보니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주차를 하고 비가 내리는 케타스퀘이어 길을 걸었다.
한참을 걸고 큰 정원들을 갖춘 커피 집에서 차를 마시며 이러저런 이야기들을 하였다.
신앙인의 대화 주제는 믿음생활에 관한 것이 당연하다.
사람은 지금 자신의 내면의 상태, 생각하는 것들, 고민거라, 힘든 것들을 나누게 되어 있다.
영국에 사는 조카가 영상통화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이라고 축하의 전화였다.
조카는 영국인 가브리엘과 결혼하여 루카스와 로이스 두 아이르 ㄹ두엇고 런던에서 한 시간 떨어진
해안 도시 브라이튼에서 살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광주로 향했다.
세희가 1년 남짓 살다가 옛날 한옥에서 차를 마셨다.
예술가답게 옛날 집을 깔금하게 리모델링하였다.
작은 집 두채 였는데 한 채는 헐어서 정원으로 가꾸어 놓았는데 각종 나무들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형님 집 근처의 소문난 칼국수 집에서 저녁을 하기로 했다.
주 메뉴가 나오기 전에 보리밥과 열무 물김치와 배추 걸저리가 나온다.
보리밤에 열무를 넣고 비벼 먹었다. 감칠맛이 난다. 옛날 어릴 적에 먹고 그 맛이다.
품직하게 손칼국수와 수제비가 나온다.
큰 조게와 황태와 새우 및 애호박을 먹고 끓였는데 국물이 맑고 시원하니 일품이다.
소문난 집이라 그런지 저녁 7시가 넘었는데도 손님들이 적지 않다.
형수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가까운 호텔을 예약해 두었었다.
헤어져 숙소로 향했다.
아내는 우연히 내 핸드폰에 있는 담임목사의 페이스북을 보게 되었다.
그 내용에 충격을 받고 잠을 설치고 말았다.
호텔에서 주는 아침 조식을 먹고 세희 작업실에서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나의 영적 짖눌림과 고민과 갈등의 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형님과의 만남이 성령께서 계획해 놓으시고 인도해 주셨다는 확신이 든다.
새벽 기도회에서 울면서 기도하는 것들을 형님과 깊은 나눔이 있었다.
아내와 나의 12년 동안 울산신정교회에서 사역에 대한 것들이
'의'가 되어 우리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요즘 많이 묵상하는 단어가 떠오른다. '비움'이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처방은 '기도'였다.
내가 말로 어떤한 감정적 반응이 아닌 오직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뿐이다.
어줍잖게 내가 성령의 사역까지 도전하고 행하려 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형님도 자비량 목회를 20년 넘게 해 오셨다.
그것이 욓려 자기 의가 되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 자기의를 깨뜨리기 위해 적은 사례비를 받는다.
물론 그 사례비도 교회 운영비로 대부분 사용된다.
다음 후임 목회자를 위해서도 사례비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렇다 나의 12년 사역이 의가 되어 나를 교만하게 하고, 불평하게 만들며
주인 행세하려 하고, 비판하려고 하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성도들이 성장하지 않고 성숙해지지 않으며 각종 범죄와 죄들이 생길 때마다
나의 바리새적인 모습은 점점 강해져만 가고 있었다.
십자가를 통해 자신을 바라본다.
나의 어떤함을 진지하게 바라본다.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의 모습과 나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
눈물로 이야기함녀서 형수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조금은 치유가 되고
내려놓음과 비움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의 모습에 안타가워 걱정하시는 형님을 생각한다.
고맙고 감사하다. 이런 든든한 믿음의 목사 형님이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대화를 마치고 ACC (아시아문화세터)에서 현대미술대전을 관람했다.
과거 전남도청에 인접한 주택지를 매입하여 대규모 문화 센터를 건립했다.
건축적으로 특이하게 지상이 아닌 지하로 만들어진 건축물이었다.
인상적이고 전시된 현대 미술은 나의 미적 문외함을 더 드러나게 했다.
신혜와 외손주들과 함께 다시 내려와 보고 싶어졌다.
광주는 예술적으로 경상도와는 질적 수준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도심의 가로수는 온통 은행나무였다.
암컷의 나무와 수컷 은행나무를 구별할 수 있었다.
암컷은 나무가 둥그스럼하고 수컷은 위로 길쭉하게 자라 있어서 한눈에 구분이 되었다.
점심은 [제주항]이라는 굴비와 갈치 전문 음식점이었다.
예약을 해놓아 다행이다. 방마다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다 앉아 있었다.
정말 19가지 밑반찬도 정가랗고 맛있다. 집반찬과 같다.
갈치 조림과 굴비를 시켰다.
정말 난생 처음 그렇게 굴비를 많이 먹어보지 못했었다.
신선한 갈치도 맛있다.
형님 내외와 함께 맛잇는 점심 식탁을 함께해서 감사했고 대접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음식점에서 나와 골목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형님과 헤어져 나오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져 장마비처럼 내린다.
네이게이션는 광주대구간 고속도로로 안내하고, 거창을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우회전하고
울산밀양선 고속도로로 올라타 울산에 도착했다.
집에 오니 오후 5시 반이다.
형님에게 도착했다고 전화를 드렸다. 형님은 내가 걱정이 되시는지 또 다윗과 시므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잠잠히 교회를 위해 기도할 뿐이다.
성령께서 나의 길을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이다.
이번 형님을 만나게 하시고 회복하게 하신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행복한 만남을 허락해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를 한 단계 더 성숙시켜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나의 '의'를 내려놓고 겸비하게 하시며 주님과 기도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더 비우고 더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는 시간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 예수님이 성령님이 다 하실 것이다.
다시 새벽 기도회에 나갈 것을 다짐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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