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역대상 5장 1절-6장 81절
오늘도 새벽을 깨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아내의 일정 때문에 기도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했지만
이렇게 일찍 출근하여 영성일기를 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새벽 기도회 설교말씀의 제목은 [기도로 시작하라]였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하갈 사람과 여두르와 나비스와 노답과 전쟁하는 내용이다.
20절에는 '...도우심을 입었으므로 ..그들의 손에 패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싸울 때에 하나님께 의뢰하고 부르짖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응갑하셨음이라"
22절"... 이 싸움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음이라."
"그들이 그들의 강에 거주하여 사로잡힐 때까지 이르렀더라."
사실 정복 전쟁 후 요단 동편 지파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와 함께 전쟁을 치르며 선두에서 싸웠던 세 지파들 답다.
먼저 하나님게 기도하고 전쟁을 치르고 승리를 얻는다.
저자는 그들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ㄷ답하시고,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기록한다.
우리는 날마다 살아가면서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치열한 영적 전투에 내몰린다.
그런데 오늘 세 지파처럼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가?
솔직히 그렇지 못한 삶이 대부분이었다.
주님은 새벽에 늘 기도하시면서 하루 일정을 시작하셨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도 주님을 따라 새벽을 깨워며 새벽 제단을 쌓았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쭈욱 새벽을 깨우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모든 일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침이 바른 신앙의 삶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심을 기억한다.
오늘도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 하루를 거뜬히 살아내기를 기도한다.
나의 모든 기대와 감정과 생각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는다.
내가 짊어진 십자가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 놓는다.
내주하시는 성령이 충만히 임재하셔서 나를 온전히 통치하시고 지배하시고 다스려주시길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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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 없는 부르심 ]
5장에선느 요단강 동쪽에 자리 잡은 르우벤, 갓,므낫세 반 지파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고,
6장에는 레위 지파의 족보와 그들이 흩어져 살았던 성읍들이 소개되어 있다.
백성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신다.
르우벤이 야곱의 장자로 태어났지만, 그 명분을 요셉에게 넘기셨다.
거룩함을 저버린 르우벤을 가문의 대표가 되게 하실 수 없었다.
'거룩함'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특별히 지도자들에게는 더 엄격하게 거룩함의 기준을 적용하신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예배로 끊임없이 이끄신다.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직을 가벼이 여겨 심판받았지만,
하나님은 레위의 후손이 제사장직을 잇도록 자손을 주시고,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에도 레위의 후손 여호사닥을 동행시키셨다.
끊어지지 않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족보는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 중에도,
귀환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임을 보증하며,
동시에 재건된 성전에서 예전처럼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을 깨우쳐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찬양받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이스라엘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살던 요단 동편의 사람들은 일찍 번영하였지만,
죄와 우상의 흡수도 빨랐다. 하나님을 의지해서 승리한 적도 있었지만,
성소에서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하나님을 등지자 패망하고 말았다.
가만히 있으면 온갖 것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교회의 위치는 세상 한복판이다.
아론의 후손은 제사장 계열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는 일을 담당했고,
레위인의 기업은 이스라엘 전역에 나위어 있었다.
각지에 흩어진 레위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기능을 각 성읍으로 확장하는 역할,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성전에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위치해야 할 곳은 세상의 중심이다.
불의와 악행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그 중심에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이다.
부르신 뜻대로 사용하시어 하나님의 역사를 완성하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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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족보 ]
계속해서 족보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족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는 것은, 족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누구의 자식으로 살았느냐가, 누구에게서 믿음을 배웠느냐가 우리 구원의 여정에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족보는 교회를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교회가 되고 또 교회를 이어가는 일입니다.
제자 삼으라는 명령(마 28:18-20)은 믿음의 족보를 만들고 이어가라는 명령입니다.
교회 생활 없이, 교회를 세워가는 수고 없이,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가치를 두는 신앙생활은 죽은 신앙생활입니다.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인 것과 같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믿음의 족보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누구에게서 믿음을 받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딤후 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우리 각자는 믿음의 족보를 만들어가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누구에게 믿음을 전수해 주고 있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딤후 2: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수 있으리라.
(5장) 요단 동편 땅을 차지한 두 지파 반의 족보
요단 동편 땅은 본래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르우벤, 갓, 므낫세1/2 지파가 그 땅의 비옥함을 보고 모세에게 청원하고
모세가 하나님께 여쭈어서 허락된 땅입니다.
그들은 목축을 하기에 좋은 땅이라는 이유 때문에 요단 동편에 터전을 잡기를 원했습니다(민수기 32장).
문제는 그 땅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고 가꾸기에는 불리한 땅이라는 점입니다.
그들도 나름대로는 신앙의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요단 가에 '엣'이라 불리는 큰 기념 제단을 쌓아, 후손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직 어려울 때는,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등따습고 배부르게 되면서, 그들의 신앙적 정체성은 희미해져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앙 성전으로부터의 물리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은 언제나 위험을 초래합니다.
얼핏보면 둘 다를 원한 것 같지만, 둘 다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 하나가 마음을 점령하고, 다른 것을 밀어내는 일이 언젠가는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6장) 레위지파의 계보
역대기 전체를 통털어 가장 많은 지면이 할애된 족보가 레위 지파의 족보입니다.
숫자면에서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가장 작은 지파입니다.
가장 작은 지파의 계보에 가장 많은 지면이 할애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다른 지파들은 오히려 규모가 큼에도 불구하고, 그 족보가 한 장에 두 세 지파씩 묶여서 기록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레위 지파의 족보가 한 장 전체를 다 차지하면서 또한 그 분량도 81절이나 되는,
비상하게 많은 분량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 레위 지파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꾼 자들입니다.
창세기 49:5-7에서 야곱의 입을 통해 주어진, 레위 지파에 대한 예언은 저주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의 저주가 출애굽을 거치면서 축복으로 바뀝니다.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는 말씀대로
레위 지파는 복된 지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는 창세기 49:7절의 예언을 그대로 성취하시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복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이 헌신(가득 채움)으로 말미암아 레위 지파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는 표본집단이 되었습니다.
출애굽을 거치면서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장자는 가문의 대표입니다. 그러므로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의 대표 지파였습니다.
대표 지파로서 그들이 보여주어야 했던, 하나님 백성의 표본적인 삶의 방식은 '은혜'였습니다.
그들이 분배받은 땅(6:54-81)은 밭과 마을을 제외한 성과 초원이었습니다.
제물로서의 양들을 관리하는데 필요한 초장과 거주할 집만을 분배받은 것입니다.
그들이 먹고 살 기업은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전업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생업으로서의 농업을 영위하지 않고 여기저기 다른 지파들 가운데에 흩어져 살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삶을 증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일용할 양식 외의 잉여 재물은 그들에게 불필요한, 아니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일 외에는 모든 시간을 복음을 전수하는 일에 사용하는 신앙이 전업 신앙입니다.
[신명기 10:9] 그러므로 레위는 그의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 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
레위 지파의 족보 중에서 중심에 위치하며 가장 길고 자세하게 언급된 족보가 찬양대의 족보(6:31-48)입니다.
레위 지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살며, 그 은혜를 증거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6:54-81에 레위 지파가 각 지파의 성읍에 뿔뿔이 흩어져서 거주하도록
성읍을 분배받은 사실이 길게 기록되었습니다.
이들은 세상 가운데 흩어져서, 세상을 섬기는 일을 담당(6:49-53)한 자들이었습니다.
그 섬김은 육신에 대한 섬김이 아닌, 영적인 섬김이었습니다.
세상의 죄를 속죄하는 구원의 복음으로 섬기는 섬김이, 레위 지파가 감당해야 할 섬김이었습니다.
레위 지파의 계보를 이은 자들이 바로 오늘 우리들입니다.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소유로 부름받았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기 위해 다시 세상 속으로 흩어져 가는 자들,
바로 하나님의 교회가 오늘날의 레위 지파입니다.
나는 누구에게서 믿음을 배웠는가, 나는 지금 누구에게 믿음을 전수해 주고 있는가,
내게 믿음의 족보가 있는가, 가만히 답을 찾아봅니다. 그리고 다시 물어봅니다.
나는 믿음의 계보 잇는 일을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하고 있는가,
내가 배운 신앙은 겸업 신앙인가, 전업 신앙인가,
또 내가 지금 전수하고 있는 신앙은 겸업 신앙인가, 전업 신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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