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역대상 1장 1-54절
역대기는 포로 귀환 후 돌아 온 백성들을 향하여 쓴 책이다.
저자는 아담에서부터 족보를 쓰기 시작한다.
그들 민족의 근원, 뿌리를 생각하게 위함이었을 것로다.
족보, 거의 모든 종족이 자기들만의 족보를 가지고 있다.
기록으로 간직한 책으로든, 구전으로든 자기 조상, 자기의 뿌리에 대한 내용이다.
이 장구한 세월의 주관자는 따로 있다.
그들의 조상을 시작하게 하신 분, 그리고 그 많은 세월 동안 지키시고 더분이 게신다.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족보 이야기는 누가 누구를 낳고의 문제가 아닌 이 계보를 가능케하신 분이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이 모든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이시다.
하찮은 인생도, 죄인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이시다.
나같은 인생도 주님이 기억하신바 됨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더 나아가 내가 하나님의 족보에 내 이름이 실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하나님의 족보에 접붙임 되었다는 것이 말할 수 없는 은혜 중의 은혜이다.
새벽에 역사의 주관자되신 하나님,
내 이름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족보에 내 이름을 올려주신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위로를 받는 아침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영원히 하나님의 족보에 내 이름이 기록되고 지워지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심을 고백하며 나의 생각과 마음과 감정들을 내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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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시작]
모든 민족과 나라의 근원이자 온 세계의 통치자이시다.
유다 백성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왔으나, 여전히 바사(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하지만 첫 사람 아담부터 열국에 이르는 족보는 바벨론이든 바사든, 모든 나라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지으셨고 통치하신다고 선언한다.
가정, 회사, 교회, 국가 등 내가 속한 모든 세계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다.
세상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더라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선택이나 혈통과 상관없이, 주권적으로 언약 백성을 선택하신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삭과 야곱은 언약의 후계자가 되었지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낳은 아들임에도 하나님과 무관한 족보를 이뤘고,
아브라함이 그두라에게서 낳은 자손들도 미디안처럼 이스라엘의 적이 되었다.
에서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언약 백성은 폐새적이지 않다.
하나님은 이들을 '복의 통로'로 삼아 온 세상을 구원하신다(창 12: 2,3).
하나님의 자녀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고 고백하면서
나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기뻐한다
노아의 세 아들 중 야벳과 함의 자손은 일찍이 번성하였다.
특히 아버지 노아의 하체를 보고 비웃어 저주를 받았던 함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거점 삼아
문명을 발달시켰고, 그의 후손 니므롯은 세상의 영걸로서 제국을 출현시켰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써내려간 인류의 계보에서 이들은 변두리일 뿐이다.
하나님 나라의 중심은 돈과 권력을 확보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사람이고,
교만하게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게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에돔을 다스린 왕들은 잠깐 세상을 호령하였을지 모르지만, 결국 죽었다(44-51절).
왕이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 아래 허망한 권세를 바라는가? 아니면 영원한 생명의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겠는가?
알파와 오메가이신 영원한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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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약한 족보 ]
(1:1~27) 아담에서 아브라함까지
야벳의 자손 14명, 함의 자손 30명, 셈 자손 26명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버지 노아에 대한 바람직하지 않은 언행으로 인해 그 자손이 저주를 받은 함의 자손이 가장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고대에 대단한 세력을 가진 자가 되었음을 그 이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영걸로 소개된 니므롯 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이디오피아와 같은 고대 근동의 강대국을 형성한 미스라임, 구스가 함의 자손입니다.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블레셋도 함의 자손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에벨은 ‘건너온 자’, 벨렉은 ‘쪼개다, 나누다, 분산되다’, 욕단은 ‘작은’의 뜻을 가질 정도로
셈 족속의 계보는 미약한 족보입니다.
저주받은 자손은 번성하고 강성하였는데, 칭찬받은 아들의 자손은 미약하고 별 볼 일 없습니다.
이는 역대기뿐만 아니라 창세기와 마태복음, 누가복음의 족보에까지 공통된 특징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니, 그보다도 왜 성경이 이런 족보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까?
차라리 소개를 말든지, 기왕에 소개하려면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족보를 좀 그럴듯하게 소개하든지 하지 않고요.
도대체 왜 이런 족보를 믿음의 조상의 족보로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요...?
(1:28~33) 아브라함의 아들들
아브라함의 아들들은 8명이나 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이 장자였는데 그는 열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첩 그두라에게서 나온 자식은 6명이나 되어 서로 의지할 만했습니다.
약속의 자손 이삭은 홀로 자라서, 서로 갈라져 원수가 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을 뿐이었습니다.
(1:34~54) 에돔 족속
에서는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에돔 땅의 원주민인 세일 자손들과 잘 연합하여 일찍부터 강력한 왕국을 세웠습니다.
이스라엘보다 8대나 앞선 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 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 16:8).
아브라함 이후 야곱(이스라엘) 때까지의 족보도 마찬가지입니다.
택한 백성의 족보가 그렇지 않은 족속의 족보에 비해 한결같이 미약하고 보잘것없습니다.
이후 3장까지 이어지는 족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후도 동일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 분명합니다.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에게 강성함과 부유함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러시는가요?
은혜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 사모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은혜 안에 머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죄를 이기는 훈련이 끝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약한 가운데 두실 것입니다.
오직 은혜만 바라고 사모하는 가운데,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습성이 몸과 마음에 배게 만드실 것입니다.
우리가 미약한 것이,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진실이고 실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임시로 맡기신 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자는 망합니다.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며 교만을 떠는 자는 지옥의 형벌에 처해질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아무리 능력이 강해져도, 그 모든 것이 은혜임을 결코 잊지 않는 자임이 확정될 때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아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