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글 모음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1. 8. 12. 10:44

신앙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것이 아마 이것이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의 음성이 적접적으로 육적 음성으로 들린다면 그 말씀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은 싶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시고, 하나니므이 음성이 들리지 않을 때가 문제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면 의심을 하게 된다.

불신이 싹튼다.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시는가, 멀리 떠나버리셨는가?, 나를 버리셨는가?

 

멀리서 이런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질 것도 없다.

어린 아이가 엄마가 있을 때와 보이지 않을 때의 반응을 봐도 쉽게 이해가 된다.

아이는 엄마 품에 있지 않으면 엄마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으면 불안하여 안절부절하고 결국 운다.

내가 여기 있으니 엄아 와서 도와달라고 울부짖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온갖 생각들이 떠오른다.

 

신앙도 그렇다고 본다.

그러나 기독교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영적인 존재시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연약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상들을 만들어 세웠던가?

성경을 보면 출애굽 백성들이 모세가 40일 정도 나타나지 않자

자기들이 애굽에서 듣고 보고 알았던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자신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을 송아지로 만들어 세우고 그 앞에서 하나님 처럼 경배했었다.

보이지 않음에 불안해 하고 믿지 못하여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한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뒤 2천 년의 기독교 역사가 흘렀다.

지금도 기독교에는 온갖 이단들이 설치고 있다.

직접 하나님을 보았고, 음성을 들었고, 계시를 들었으며, 여러가지 환상을 보았고, 천국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고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되지만

일반적이고 자주 발생하는 일이 아니며 극히 제한적으로 매우 드물게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우리는 신앙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제 수요 기도회 때 진성만 목사의 설교는 많은 유익이 있었다.

 

에스더 9장 1-18절을 본문으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때>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셨다.

유다가 망하고 바벨론 포로기 시기이다.

과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으로 부터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고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전쟁에서 승리를 하였지만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아 가지고 왔고, 귀하고 좋은 것들을 취하여 돌아왔다.

이 일로 그는 선지자 사무엘에게 질책을 받고 불순종의 멍에를 짊어지고 결국 하나님으로 부터 버림을 받는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에 실패한 역사는 그 단회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백 년이 흘러 유다가 망하고 바벨론 포로 시기이다.

모르드개는 베냐민 지파의 기스 후손으로 왕족이다.

그리고 하만은 아각 자손으로 마말렉 족속의 후손이다.

두 민족간의 문제는 오랜 세월을 지나도 지속되었고

사울이 실패했던 언약을 모르드개가 온전히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신.구약 성경에서 유일한 성경이다.

그렇다면 모르드개는 무엇을 따라서 이 민족적 갈등을 문제에 대하여 처신하고 있는 것인가?

직접적인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와 음성이 없었지만 자기 민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했고

그 언약에 따라 행동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모르드개가 지위가 높은 하만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던 이유,

하만이 유다 좃속을 다 진멸하려고 했던 이유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통해 하만의 일가족을 몰살하고 대적들을 진면했던 이유.

수산성에서는 하루가 아니고 하루 더 대적들을 진멸했던 이유

그리고 대적은 죽이데 그 재산들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앗던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지금까지 에스더 설교를 여러 번 들었지만 두 민족간의 문제 발단과 언약을

지적해 준 것은 처음이라 매우 유익했다.

 

이제 적용의 문제이다.

현재도 하나님의 침묵하시는 것 같은 상황이다.

물론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통치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나 모세 시대와 같은 직접적인 신정통치의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충분한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을 믿고, 이 말씀을 따라서 실천하여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수많은 결정을 해야 하고 그럴 때마다 직접적인 기도 응답이 없을 때

그리고 우리의 기도와 간구에 직접 육성으로 우리가 인지할 수 잇는 방법으로 응답해 주시지 않아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마음, 말씀을 따라서 분별하고 판단하며 결정하여 살아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쉬우면서도 어렵다.

인간은 연약하고 무지하고 죄인이라서 자기중심적 판단과 잘못된 선택을 할

오류의 발생 개연성이 다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에게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간구한다.

그럴 때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직접적인 음성이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이다.

과연 침묵하시는가? 침묵하시지 않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믿음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서 하나님이 침묵하시지 않고 어떻게 일하셨는지 깨닫고 감사를 올려 올려드린다.

그래서 믿음 생활은 어려운 것이다. 믿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나이가 들수록 믿음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제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어떻게 믿음생활을 해야하는지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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