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인문학 2021. 03 .31
심각한 수준의 미세먼지로 회색빛 도시가 되었다.
처음 경험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는데
오늘은 조금 좋아져 강변을 걸었다.
성질 급한 벚나무는 화사한 꽃으로 시선을 사로잡지만
벌써 화사한 꽃잎을 허공에 날려 보낸 자리에는
파란 잎사귀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나무를 보다가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운동하는 시간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한 그루 나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러 부분이 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인 수분을 공급하고
나무가 서 있게 지탱해 주는 뿌리가 있고,
수많은 가지들의 무게를 온 몸으로 감당해내고 반듯하게 서게 해 주는
줄기가 있으며 줄기는 굵어져 기둥 같은 밑둥이 되고,
많은 작은 가지들과 수많은 푸른 잎사귀
그리고 시선을 사로잡는 화사한 꽃
그러다가 한 해 결산의 열매가 있다.
저렇게 화사한 꽃으로 갈아입었지만
얼마 후에는 푸른 치마를 두른 듯 싱그러움의 빛을 발할 것이다.
한여름 내내 작열하는 태양을 온 몸으로 맞이하다가,
잎사귀는 예쁜 색깔로 옷단장하고 본향을 향해 떠나가면
가지들과 줄기는 추위에 온 몸을 내어맡긴 채
새 생명의 잉태를 위한 인고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나무를 보다가 생각은 사람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뿌리 같은 사람도 있고, 줄기와도 같은 사람도 있으며.
가지 같은 사람, 잎, 꽃, 열매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뿌리는 보이지 않지만 나무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가.
생사를 넘나드는 수많은 시간들을 위해 지하에서 쉬지 않고 애쓰고 있다.
한 공동체에나, 국가에도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얼굴 없이 헌신하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수고는 멈출 수가 없다.
사명감, 소명의식 이런 단어가 이들에게 어울리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분들이 생각남은 ...
줄기는 수분을 가지들에게 공급해주는 수관이 있고,
지속적인 분열로 비대성장을 지속하여 높이 자라고 굵어져서
수년이 지나면 줄기는 굵어져 기둥처럼 된다.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 다음 세대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들이 사회나 교회의 기둥 같은 사람들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한다.
기둥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기둥은 하나다.
아무나 기둥일 수 없고 모두가 기둥일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녀들이 그런 인물들로 성장하고 성공하기를 소망한다.
큰 인물. 중요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인간의 욕망의 표현일까?
또한 줄기는 가지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과
지속적인 성장의 노력을 해야 한다.
어느 조직이든 줄기와 같은 몸의 허리 역할을 하는 계층이 중요하다.
우리 교회는 튼튼한 허리 역할을 해줄 30~50대 성도들이 많은가?
안수집사 그룹이 이들이다.
수많은 가지들이 있어 그곳에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누구도 한 가지에 주목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들 중 하나일 뿐이다. 또한 얼마나 연약한가?
가지는 자신 보다 잎과 꽃과 열매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의 자리가 아닐까?
모든 관심과 영광은 그들에게 돌리고
아무도 관심주고 신경 써 주지 않지만
그는 모진 추위와 비바람을 견디어내야 하는 자리다.
쉽게 꺾이고 부러지는 위험에 쉽게 노출되는 곳이다.
남을 섬기는 자리,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세워주는 자리
이런 분들이 많을 때 교회는 행복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교회를 섬기는 다수의 서리집사 성도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꽃은 아름답고 화려하고 향기를 내 뿜는다.
벌과 나비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영광을 누리지만, 그 영광은 잠시 잠깐이다.
한 달 이상 피어 있는 꽃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꽃 같은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기고,
온 인생이 항상 꽃 같을 줄 알고, 꽃길만 걷고 싶어 한다.
시들고 떨어져 짓밟힌 꽃은 어떠한가?
꽃이 항상 피어만 있던가?
그 꽃은 조화다. 생명이 없다.
외모의 화려함에 마음을 빼기고 살다가는
꽃이 지면 인생무상의 허무함이 엄습해 올 것이다.
젊은이들은 다 꽃이고 싶어한다.
잎의 운명은 어떠한가?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가 살포시 고개를 내민 새순은
점점 진한 초록빛으로 물들어 가며 뿜어내는 싱싱함과 생명력은
전장의 힘 센 젊은 용사와도 같다.
우리내 인생도 늘 푸르고 젊기를 원하지만
이내 세월 앞에 생기 없고 만지면 쉽게 부서지고 마는 낙엽이 된다.
그나마 마지막 온 몸을 불태워 화려한 색깔로 변신해보지만
그의 본향, 대지로 돌아가는 운명이다.
늘 푸른 잎사귀 같은 젊음을 희구하며, 항상 젊게 살기 원하지만
세월 앞에서는 장사 없다.
일년의 변화를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 잎이다.
동료들의 모든 희생 위에 맺어지는 열매,
나무의 모든 DNA를 간직한 열매,
삶의 훈장과도 같은 열매는
누군가의 먹이로 자신의 온 몸을 내어 맡긴다.
또한 자신은 썩어 없어지지만 새로운 나무를 자라게도 한다.
우리도 좋은 열매 맺기를 원한다.
그것도 알곡으로 말이다.
인간도, 자연도 무언가를 남기려고 한다.
종족 보존을 위하여, 삶의 결실로, 흔적을 남기려 한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쭉정이가 아닌 알곡이 되어 멋진 인생의 피날레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나님도 추수할 때 알곡은 거두어들이시고 쭉정이는 모아 불에 태우신다 하지 않았던가!
나의 모습은 나무의 어느 부위와 닮았을까?
내 인생은 지금 나무의 어느 부위에 와 있을까?
나는 직장과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한 그루 나무에서 퍼 올리는 수많은 생각들로
모래톱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팔뚝만한 잉어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아내가 한마디 한다.
당신은 치매 걸리지 않겠다고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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