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탁에 앉아 꽃병을 바라보았다.
처음 화병이 식탁에 놓였을 때는 얼마나 화사하고 아름다왔던가
붉은 동백꽃, 살구나무 꽃가지, 이팝나무, 수선화, 홍매화가지의
붉은 색, 하얀 색, 노란 색이 무릎 잎사귀와 나무 줄기가 빚어낸 아름다움에
기쁨과 감동의 작은 탄성을 자아냈는데...
오늘 아침에 바라본 화병에는
꽃은 시들어 떨어지고 잎사귀는 말라 비틀어졌다.
며칠을 화병 속에서 생명을 버티어내더만 이내 마지막을 맞이하고 말았다.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진리 중에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니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살고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오늘 이 아침에 이 말씀이 현실감 있게 가까이 다가온다.
가지가 살아 있기 위해서는 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한다.
제 아무리 화려한 꽃을 피우고 아름답고,
혼자서도 살아갈 것 처럼 생명력이 넘쳐나도
가지에서 잘려 나가면 며칠을 버틸 수가 없고 이내 죽고 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신앙인들이 날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생각하면서, 매일을 살고 있는가?
오늘 하루도 아침 일어나 말씀 묵상을 하였던가?
오늘 하루 먹을 양식에는 관심을 가져었도 일용할 영의 양식은 먹었던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나? 하나님과 교제의 기도는 하였던가?
나무로 부터 수액과 영양분을 받아야 하는데, 그래야 사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나무에 붙어 있으데 죽은 나무요 곧 나무에서 떨어져 나갈 가지임에 분명하다.
생명의 연약함과 허무함을 묵상하는 아침이다.
화사한 벚꽃도, 꽃비 처럼 내리는 아름다움도
대지에 내려 앉으면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뒹굴다가
무수한 발걸음에 밟혀 뭉게지고 만다.
진리를 아는 자는 진리를 모르는 자처럼 행동해서는 않된다.
그것은 어리석음이다.
진리는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한다.
진리를 모르는 자 자유함을 알지 못한다.
자유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오늘도 나의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그 생명 살리고 지키기 위해서는
내 생명줄 되고 생명을 공급해 주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나무에 잘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의 주 되신 주님에게 항상 붙어 있어야 한다.
주님에게 붙어 있는다는 말이 무엇일까?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고 내가 주님안에 거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주님이 말씀해 주셨다. 주님의 계명을 지킬 때 주님을 사랑한다는 사실
그것이 곧 거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과 일반 다르지 않으리...
오늘도 주님에게 붙어 있기 위해서
말씀의 자리,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고 지켜야 한다.
그리고 주신 말씀들을 오늘 일상에서 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