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 마지막 날이다.
계절은 아름답고 싱싱한 신록이 우거져 가는 시기인데
현재 내 마음은 참 답답하고 무겁다.
담임목사와의 보이지 않는 갈등으로 힘들고
수술 결과가 좋지 않아서 불편하고
장로직을 내려 놓으려고 하니 마음이 편치 않고
사역에 열정과 애정이 없어서 마음이 무겁다.
당뇨병과 고혈압의 경고등이 켜져서 다이어트와 운동 등으로
체중이 4kg정도 감량되고 나니 뱃심도 없고
말에 힘도 없고 만사가 매우 예민해진 느낌이다.
쉽게 짜증을 내고 불만과 불평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쉼과 휴식이 필요해 보인다.
재충전의 시간이 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 제주도로 한달 살이를 위해 신혜 가족이 출발하고
우리도 며칠 간 휴가를 내어 제주도에서 합류 할 생각이다.
좀 마음을 추스릴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이렇게 꼬이기 시작했을가?
담임목사와의 허니문 시기는 끝난 것일까?
담임목사와의 갈등으로 담임목사가 불편해 하고 목회에 지장이 있다면
내가 장로직을 내려놓는 것이 교회에, 담임목사 사역에 유익이 될 것이다.
성도들의 의견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르호보암이 노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 젊은 청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결정하고 난 뒤 이스라엘의 분열이 되었음을 떠올린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가 우중일 때가 있음을 있지 말아야 한다.
소수의 의견, 연장자들의 의견이 지혜로울 때가 있다.
다수의 의견을 쫒는 것이 현명하고 능사는 아니다.
교회의 리더십들은 시대를 잘 읽어내고, 앞서가는 예언자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시대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친환경적이고 환경의 파괴가 되는 일들에서 돌아서기를 경고하고 있다.
교회가 앞장서서 친환경적인 모습으로 돌아서고 앞장서야 한다.
작은 일 하나부터 어떤 일들을 결정할 때 신중해야 한다.
물질주의, 편리주의, 인본주의, 민주주의 라는 거센 세파에 거스르며
성경적, 친환경적, 본질적 것으로 교회를 이끌어야 하는데 ...
세상에서 힘들게 살다가 교회에 왔는데, 교회에서 까지 힘들게 봉사해야 하느냐?
교회는 그냥 편하게 쉼과 휴식과 안식만을 위한 곳인가?
물론 교회가 영적인 충전소, 오아시스 같은 곳이 되어야 함은 마땅하다.
그렇지만 반대로 교회에서 영적인 훈련을 잘 받아서 세상에 나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공동체로 모임이 해야 할 역활이 아닐까?
과연 리더십들이 이런 지식과 믿음과 마음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무엇이 교회의 부흥일까?
현재 수평 이동으로 인한 수적 성장을 부흥으로 볼 수는 없다.
초신자들이 거의 없다.
우리 교회가 중.소형 교회지만 부자교회라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
정말 위험한 말이다.
코로나 시대에 경제가 어려운 데 헌금 수입이 많다고 ...
부자는 위험한 위치이지 축복의 상징으로 보아서는 않된다.
패망과 타락의 시작이다.
구성원들의 마음과 헌금의 씀씀이 부터 생각이 달라진다.
19억이란 빚을 청산한지가 얼마되지 않았다.
모든 일들을 땀을 흘리고 수고하기 보다는 돈으로, 외부에 의뢰해서 처리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 환자 심방비 선물도 비용이 상당히 지출되었다.
어느 정도가 적정선일까? 풍성한 것이 능사였을까?
봄소풍 행사도 불만이 많다.
많은 일회용품 사용과 지나친 행사 경비, 외주 위탁 행사 진행 등등..
좀더 고민하고 절약하는 방법은 고민했더라면 ...
무엇이 교회의 하나됨인가?
무엇으로 하나됨을 만들것일까?
신기루 같은 것들로, 비본질적인 것으로, 피상적인 것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분위기, 행사, 숫자, 느낌, ....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하나됨을 이루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 안에 있는 질적 성장 보다는 숫적 성장에 마음이 더 가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말은 질적 성장은 원한다고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숫적 성장을 갈망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영향력은 숫자에 달려있지 않다.
그럼에도 자꾸만 주일 예배 참석자 숫자를 기욱거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여러가지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혼자서 이게 아니라고 거부하고 있는 느낌이다.
글을 쓰면서도 내가 지금 마음으로 불편한 것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번의 갈등이 자포자기하게 만들고 있는 느낌이다.
한계, 좋은 말로 양보, 내려놓음 ...
나의 사역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모세의 사역이 광야의 시대에 멈추게 되었던 것처럼 ...
성령이여 나의 멈춤과 내려놓음이 잘못입니까?
아니면 옳은 결정인지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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