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다윗을 떠나 아들 압살롬에게로 돌아섰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한 다윗은 도망하기로 결정한다.
그를 따르는 충성된 신하와 군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압살롬과 전쟁을 선택하기 보다는
싸움에서 무고한 백성들이 죽어가고 성전과 왕궁이 파괴될 것을 염려하여
도망을 결정한 것이다.
지도자가 결정을 할 때, 자신을 생각하는지, 아니면 먼저 공동체와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지
묵상되는 아침이다.
오늘 도망가는 다윗을 따르는 무리들을 보면서 한가지 의아한 것이 있다.
다윗을 왕으로 세웠던 유다 지파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의 신하들과 많은 백성들이 따랐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언급이 없고
그렛 사람, 블렛 사람, 가드 사람 그리고 잇대만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아닌 아웃사이드들이다.
잇대는 떠오르는 신흥 세력인 새 왕을 선택하기 보다,
권세가 기울어져 가고 권력에 밀려 도망가는 늙은 왕을 선택한다.
진정한 충신의 모습이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자신이 섬겼던 주인이요 왕을 끝까지 섬기는 모습이다.
다윗 왕이 잇대에게 돌아가라고 새로운 왕을 선택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고 권하지만
왕이 가는 곳에 어디든지 죽기 까지 따라 가겠다고 고백한다.
나오미를 따른 둘째 며느리 룻의 향기(헤세드)가 풍겨난다.
나오미도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빈털털이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젊은 미망인인 룻은 친족과 고향을 버리고 늙고 아무 것도 없는 시어머니를 선택하고 베들레헴으로 향한다.
나오미가 섬긴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나오미의 모습을 보고 그녀가 선택한 길이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손익을 따지고 만나지는 않는지 돌아본다.
어렵고 힘든 이웃을 외면하고 손해보지 않고 불편하지 않은 편한 사람만 만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
그러면서 몇 년 전에 읽었던 마틴 니버의 책, <나, 너, 그것>이 생각이 난다.
세상의 만남에는 두 종류의 만남이 있는데
나와 너의 인격적인 진실된 만남과
편의상, 필요상 , 정보를 얻고 이용하기 위해 만나는 나와 그것의 만남으로 구분한다고 설명한다.
다윗은 다시 광야로 들어갔다고 성경 저자는 기록한다.
사울 왕을 피하여 광야를 배회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무려 13년이었다.
지금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자 신세가 되어 기드론 시내를 지나 마하나임으로 피신한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기약없는 광야 생활로 다시 들어선다.
광야, 광야는 참 많은 것을 묵상하는 장소이다.
나름 광야와 광야의 영성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오늘 다윗이 다시 광야에 들어갔다는 기록이 눈에 들어온다.
다윗은 젊은 날, 사울 왕의 시기와 질투에 목숨을 건지기 위해 시작된 도피생활과,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가는 왕의 신분으로 피신하는 두번 째 도피 생활 가운데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많은 것을 묵상하며, 영성을 회복하고, 많은 시들을 지었었다.
광야가 주는 유익이다.
다윗 인생에서 젊은 날의 광야와 노년의 광야는 상황도 다르고 내용도 다르다.
그러나 광야가 주는 유익은 같다.
다윗은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 앞에 진실된 모습으로 서며, 회개와 회복의 시간들을 가진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구원의 소망의 모습으로 나아간다.
광야. 우리는 도시에 살지만 날마다 도시에서 광야의 영성으로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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