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영성일기

용서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3. 3. 9. 09:37

세상에는 용서에 관련된 많은 교훈과 격언들이 있다.

왜 용서가 필요할까?

인간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람은 관계의 동물이라 상대방이 존재하기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기독교는 죄인인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된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엄청난 죄를 범한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는

어느 종교도 따라올 수 없는 무한한 용서이다. 

우리는 그런 용서를 입은 자들이다. 

 

오늘 본문은 하늘나라는 자기 종들과 결산하는 어떤 왕과 같다고 하신다. 

일만 달란트 빗진 자가 빌자 불쌍히 여기고 면제하여 주었다.

그러나 이 빚진 자는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못한다.

이 왕은 그를 다시 붙잡아와서 벌을 내리시는 장면이다. 

용서와 심판, 그 사이에 무엇이 존재할까?

"내가 너를 긍휼히 여긴 것처럼 너도 네 동료를 긍휼히 여겼어야 하지 않느냐?"

"너희가 너희 형제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유대 랍비는 3번 용서하라고 가르쳤고, 베드로는 선심을 써서 7번 용서하면 되겠냐고 질문한다.

그러나 주님은 7번에 7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다.

 

이 본문을 대할 때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한다.

같이 근무했던 후배 의사 두명, 첫 전세 계약금을 떼어 먹었던 아파트 주인 

....

삶의 철학 중에 '내 사전에 원수를 만들지 말자'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억하고 미워하며 용서를 못하는 사람은 없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자 용서하기가 조금은 쉬워졌다.

 

주님은 내가 받은 용서의 크기를 생각하라고 하신다. 

받은 용서를 알면 이 땅에서 어떤 잘못도 용서해 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상대방이 저지른 잘못의 정도에 따라서 용서하기가 다를 것이다. 

자동차 사고도 그렇다. 간단한 접촉 사고 정도는 그냥 지나칠 수 있으나 

몸이 다치고 차가 많이 부서졌는데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내가 내  자식을 죽인 살인자를, 내 가정을 파탄 낸 상대방을 용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지금 나를 고난과 실패와  절망 속에 빠뜨린 구체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면 

말처럼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세월이 가면 감정은 무디어져 가겠지만 용서가 될까? 

그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아픔과 절망과 미움과 복수의 마음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머리로는 모르겠으나 마음으로는 진정 용서할 수 있을까? 

 

한 번이 아니다. 세번이 아니다.

일곱 번? 이 또한 엄청난 용서의 마음이다.

그런데 일곱 번의 일흘 번...무한히 용서하라는 말씀이시다.

이는 내가 그렇게 용서받았다는 반증이다. 

영원히 용서 받지 못할 용서를 내가 받았다는 말씀이다.  

지금 우리를 용서하여 주셨지만,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다시 우리를 심판하실 수 있다는 말씀처럼 들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용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용서에는 자신의 희생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나의 죄의 용서를 가져왔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주관하셔야 가능하다.  

받은 은혜를 생각해 보아라!

받은 용서를 생각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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