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21장
오늘 본문은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 중의 하나이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를 놓고 멀리 갔다가
소출을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보냈다.
농부들은 그 종들을 때리고, 돌로 치고, 죽이고 말았다.
더 많은 다른 종들을 보냈으나 그들에게도 똑같이 행하였다.
마침내 자기 아들을 보내면서 자기 아들은 존경하리라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이는 상속자니 그를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하고 포도원 밖에서 죽였다.
포도원 주인이 와서 어떻게 할까?
그러자 "그가 악한 자들을 처참하게 죽이고,
그 포도원은 열매를 제때 그에게 바치는 다른 농부들에게 줄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은 잘 판단하고 판결한다.
그러나 진즉 자신의 실수나 잘못과 허물에 대해서는 쉽게 인정하러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기 보호 본능인가?
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자신에게는 관대하다.
누군가 자신에게 잘못을 지적할 때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 기분이 상하고 불쾌해 한다.
자신에게 철저하다고 생각하다는 사람일수록 더 기분이 상할 것이다.
간혹 자기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수긍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도 기분은 썩 좋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난 더더욱 실수가 많은 편이라 누군가 지적을 하면 비교적 바로 인정하고 충고를 받아들이는 편이다.
좀 차분히 여유를 가지고 그 문제를 자세히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판단이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언행이 틀린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으면 기분은 유쾌하지 않다.
자신의 약점을 들켜버린 것 같아서일까?
인간은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지 않고 좋은 인상과 좋게 평가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인간이 안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좀 너그럽게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양약고어구],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로 좋은 충고는 귀에 거슬린다는 뜻이다.
에수님은 시편 118:22-23절을 인용하시면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되었다. 이는 주께서 하신 일이고 우리 눈에 놀라운 일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너희에게서 빼앗아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에게 주실 것이다."
건축자들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여 버린 돌이 건물의 가장 중요한 모통이 돌이 되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쓸모없던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쓸모 있고 중요한 모통이 돌이 되었다.
볼 품도 없고 연한 순 같으신 나사렛 예수가, 만유의 구주로 만왕의 왕으로 오르신 것이다.
기이한 일이다. 놀라운 일이다. 이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예수가 나에게는 버린 돌인가, 모통이 돌인가? 걸림 돌인가, 주춧 돌인가?
나는 아직도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사람을, 상황을,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언제쯤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을까?
삶의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진행된다고 알고 인정하면서도
일상의 부딪히는 문제 앞에서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대하지 못하고 있으니 부끄럽고 한심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에게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자들에게서 빼앗아
하나님 나라를 찬탈하여 자기 소유로 삼으려는 자들에게서 빼앗아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는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신다.
빼앗길 것인가, 받을 것인가?
심판을 받을 것인가, 구원받을 것인가?
선택은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나에게는 하나님의 나라 열매가 맺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 들이고 성령의 셩령의 열매들이 맺혀 있는가 말이다.
'2023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의 강령 (0) | 2023.03.21 |
---|---|
청함과 택함 (0) | 2023.03.18 |
성전 (0) | 2023.03.15 |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 (0) | 2023.03.14 |
예수님의 낮아지심 (0) | 2023.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