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빌립보서 4장 1-23절
바울의 로마의 감옥에서 지금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쓰고 있다.
2차 선교여행에서 마케도니아 지역네서 처음으로 세운 교회이다.
남다른 예정이 묻어 있는 교회이다.
그리고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선교에 많은 후원을 해준 교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른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불리고 있을까?
나는 울산신정교회 성도들을 이렇게 부를 수 있는가?
"이와 같이 주 안에서 서라.' 고 말한다.
어떻게 주 안에서 충실하는가?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고정하고, 이 세상이 우리의 집이 아님을 기억하며,
그분이 모든 것을 자신의 통치 아래 두실 날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주님께 충실한다.
충실함은 유혹과 거짓 가르침과 박해의 부정적 영향에 단호하게 맞선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도전을 받거나 반대에 직면할 때 그분을 붙잡고 인내해야 한다.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한 성품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성령과 동료 신자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주님께 충실할 수 있다.
오늘 본문은 교회를 위해 열심히 헌신한 유오디아와 순두게, 글레멘트와 바울의 동역자들이
성도들간에 불화하고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을 지적하며 화해하고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기를 원했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면서 서로 의견이 충돌하거나 오해와 다툼이 생길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시간을 미루지 말고 바로 화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오래 경과하면 화해의 기회가 없다. 골이 깊어져 완전히 서로 틀어지고 만다.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그렇제 중요한 일도 아닌 문제들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고 혈기를 부렸였다고 생각이 들 것이다.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조금 내 의견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며 경청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교회의 지도자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생길 만큼 , 한마음으로 "굳게 서서" 협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어져 주어지는 바울의 권면들은 주옥같은 말씀들이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궁극적인 기쁨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그리스도께서 다시오실 것이며, 그분의 재림은 이 궁극적 기쁨을 온전히 실현할 것이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누가 누구를 향하여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바울의 태도는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우리의 내적 태도가 외부 환경에 지배될 필요는 없다.
바울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깨하심을 알았기에 기쁨에 충만했다.
우리는 유쾌하지 못한 환경에 낙담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쉽다.
기쁨이 충만하지 못하다면 자신이 성령 충만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내적 상태가 외적 요인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참 기쁨은 주님과 그분의 재림 약속에 있음을 일깨우실 것이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습은 늘 기쁨이 충만하고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 모든 사람에게 사려 깊게 대해야 한다.
합리적이고 공정하며 자비로워야 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수없이 들었던 성경 구절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울의 조언은 우리의 염려를 기도로 바꾸라는 것이다.
덜 염려하고 싶은가? 더 기도하라.
염려하려고 시작할 때마다 멈추어 기도하라.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셔야 하는 말씀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고
그분이 당신에게서 하신 모든 선한 일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평안은 세상 평안과 다르다.
참 평안은 긍정적 사고나 갈등의 부재나 좋은 느낌에 있지 않다.
참 평안은 당신이 세상에서 이루어야 하는 하나님의 일에서 자신의 역할을 이행할 때
하나님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당신에게 최선이 되게 하심을 믿는 데서 온다.
우리의 그리스도 나라 시민권은 안전하고,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으며, 최종적으로 죄에게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의 평안이
당신을 주저앉히고 당신의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옮기려는 이 세상 근심에서 지켜 줄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분은 우리에게 평안의 눈을 주신다.
기도란 내 지각으로 상황을 통제하려는 수고를 멈추고,
하나님의 지각에 내 마음과 생각을 연결하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는 없다.
"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우리의 마음에 무엇을 집어넣는지에 따라 우리의 말, 바람, 행동으로 나오는지가 결정된다.
바울의 상기 덕목들에 훈련을 집중하라고 말한다.
유해한 투입물을 유익한 것으로 대체하라.
무엇보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라.
당신의 마음을 선하고 정결한 생각으로 채우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하라.
훈련이 필요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따라서 진실하고 경건하고 정의롭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게 계시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거나 심지어 잘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노출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반드시 순종으로 이어져야 한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관념적인 믿음은 능력이 없는 믿음이다.
"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자족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바울의 이 말씀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더 갖고 싶다면, 이런 욕구를 제거하고 모든 상황에서 만족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길 하나님께 구하라.
당신이 가진 모든 복에 대해 매일 하나님께 감사하라.
하나님이 당신의 필요를 채우실 테지만, 그분은 당신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채우실 것이다.
바울이 만족했던 까닭은 삶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초점을 맞혔다.
바울은 우선순위를 분명히 했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 감사했다.
바울은 영원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비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흔히 더 많이 또는 더 좋은 것을 가지려는 바람은 자신의 삶에서 빈 곳을 채우려는 갈망을 가리킨다.
당신이 내면이 비웠다고 느낄 때 무엇에 끌리는가?
어떻게 진정한 만족을 찾을 수 있는가?
대답은 당신의 시각, 당신의 우선순위, 당신의 힘의 근원에 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관심사와 무관하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할 초인적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지는 않는다.
믿음을 위해 싸우다 보면 어려움과 압박과 시련을 만날 것이다.
이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필요한 힘을 주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그것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해야 한다.
대부분은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불편과 고통은 피하고 싶은 한다.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은 다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써 우리의 태도와 욕구는
많은 것을 원하는 데서, 그분을 위해 살 수 있게 하는
그리스도의 공급과 능력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바뀔 수 있다.
오늘 바울을 통해서 비록 로마의 감옥에 있는 죄수였지만
기쁨과 평안의 참 비결을 배웠다.
그리스도를 본 받고 다른 이들을 섬기는 것이었다.
마음을 그리스도께 집중함으로
우리도 하나됨과 겸손과 기쁨과 평안을 배울 것이다.
우리는 또한 그분을 위해 살 동기도 부여받을 것이며, 누군가가 따를 본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확신하는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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