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주목하는 것 - 2024. 07. 25. 목요일
어제 수요기도회 때 허영웅 목사님이 전하신 메시지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본문은 누가복음17장 11~18절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다가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시던 중에
열 명의 나병환자를 만나신 사건이다.
누가만 이 사건을 기록하였는데 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죄인들을 찾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과 기도소리에 직접 내려와 찾아가신 모습처럼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 지나가시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나병환자들을 찾아가신 것이리라.
왜냐하면 일반적인 유대인들은 그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지 않고 빙둘러 지나갔기 때문이다.
지나가지 않을 확률이 더 놓은 상황에서 기다림이란 ....
특별한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그들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멀리 서서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무슨 마음으로 기다렸을까?
가만히 앉아서 편안히 기다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과 일행들이 보이자 소리친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결코 놓칠수 없는 기회이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다.
나병 환자라 가까이 갈 수는 없고 멀리서 목이 터져라 외쳤을 것이다.
이런 간절함이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찾고 찾는 자에게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이미 저들의 상태와 마음을 아시고 있기 때문이다.
병든자에게 필요한 것은 병고침이다.
아무 것도 묻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병고침을 허락하신다.
"그들이 그 지시함을 따라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게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아홉 명은 대제사장에게 갔을까?
예수님이 대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고 하셨으니 그 말씀에 순종한 것일까?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그들을 찾으시는 것일까?
사마리아인 처럼 먼저 예수께 나아와 감사 인사를 드리고 대제사장에게 가라는 의미인가?
아니면 저들은 감사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냥 치료된 것에 기뻐 어쩔줄 몰랐던 것인가?
아홉 명은 자기 몸이 나은 것을 주목하지만
사마리아인은 이 병을 낫게 해주신 예수님을 주목하고 있었다.
어제 설교 중에 이 부분에서 큰 울림이 있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부차적인 것들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진즉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신데 말이다.
나병환자는 이 병을 고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본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네 믿음'이 란 바로 이 부분을 가리킨다고 본다.
구원자 하나님을 알아보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 믿음의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처럼 병이 낳아서 기뻐하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는지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들 앞에서 그 문제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 말이다.
진즉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과 깊고 친밀한 교제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질이 아닌 비본질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 친밀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다.
그럴 때 내 안에 살롬(평강, 평안)이 임하고 그것으로 인한 기쁨과 감사가 충만해진다.
무언가를 받고 이루고 응답되었을 때만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닌 ...
하나님,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리라.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환경과 상황이 어떠하든지
예수님이 나의 주 되시고, 나의 하나님 되심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 사마리아 나병환자가 보인 반응이 선명하게 부각되어 다가온다.
주님은 나병환자에게 이런 합당한 믿음이 있음을 보시고 구원을 허락하셨다.
우리가 예배할 때나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닌지 늘 조심한다.
내가 기쁘고 행복하며, 은혜받으면 좋은 예배, 바른 예배인가?
모든 것의 관점이 사람 중심이 아닌지 조심스럽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인지, 우리가 만족하고 기쁘고 은혜받는 예배인지...
물론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예배가 되도록 예배해야 한다.
기도도 하나님께 우리를 필요를 아뢰며 간구하는 것은 맞지만
하나님과 진정한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상대방과 주고 받는 것이 아닌 일방적인 보고 형식, 간구 형태는 아닌지 말이다.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오늘도 구원자 하나님을 주목한다.
날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랑하는 주님을 주목한다.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에게 주목한다.
나같은 자를 만세 전에 택정하여 주시고, 때가 되어 복음을 듣게 하시며,
믿어지는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심에 무한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며
구원받은 자로 어떤 것과도 비할 수 없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며
이 땅에서 행복하게 하나님의 자녀로 현재형 하나님나라(주권)를 누리며 살아가고
이 장막을 벗어나 영원한 미래형 하나님나라(장소)에 들어가 사랑하는 주님과 영원히 살 것을 고대하며
오늘도 기쁨과 감사로 충만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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