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리더스 팀 인문학 강의) 2024. 9. 13-17
my life, my history
- 행복, 평범 이상의 삶-
안녕하세요?
먼저 이번 태풍 [야기]로 인하여 베트남에 많은 인명 피해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여러분 가정과 고향에는 피해가 없는지요.
모든 것이 빨리 복구되어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기를 바라고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이름은 박 상섭입니다.
제 직업은 의사이고, 전공은 흉부심장혈관외과 의사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한 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십니까?
다양한 주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의 전공인 의학적인 것도 유익한 강의 주제가 될 수 있겠지만,
인생의 선배로써 나의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의미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의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들이 살아갈 인생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사람들은 유한하고, 한번뿐인,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직선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 성공적인 삶, 보람된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행복하고 성공적이며 보람된 삶일까요?
행복과 성공에 대한 많은 정의가 있고, 각자 생각하는 기준이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어서, 위인들의 전기를 읽기도 하고,
성공한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보입니다.
그들을 닮고 싶고, 따라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처럼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분들, 유명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와는 너무 동떨어진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나와 비슷한 평범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하여, 저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특별히 잘 살아왔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생 이야기가 어떤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하여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올 해 나이가 63세입니다. 한국에서는 육십갑자로 치면 환갑을 지난 나이입니다.
인생의 생로병사를 다 경험한 나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을만한 많은 일들을 대부분 경험해 보았다는 의미겠죠.
노인들의 특성 중에 하나가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지혜가 있습니다.
성공했던 실패했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결과와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삶의 지혜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에게도 삶의 작은 지혜들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1961년, 소위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시골,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루에 몇 차례 시외버스가 비포장도로를 왕래하던 곳, 벼농사와 밭농사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곳,
전기도 없던 산골 시골마을이었답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흙 수저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젊은 날 홀로 되신 할머니,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부모님 그리고 5형제의 막내로 태어났죠.
그 와중에 아버지는 한 살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답니다.
어때요? 여기까지 들으면 여러분들이 태어나고 살아온 환경과 별반 다르지 않죠?
그렇게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시골에서 자랐어요.
학교를 다녀오면 공부는 뒷전이고 어린 나이지만 늘 무언가를 해야 했어요.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도와드리거나, 심부름을 하고, 소를 먹이는 풀을 베거나, 산에 가서 땔감을 해 와야 했답니다.
논농사와 밭농사에는 일손이 많이 필요해요.
왜냐하면 옛날에는 기계화가 되어 있지 않아서 대부분 사람이 직접 손으로 일을 해야 했거든요.
따라서 각종 집안 일과 어머니를 도와드려야만 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감사할 일이죠
그러나 어린 시절에 동화 같은 책들은 거의 읽어보지를 못했어요.
문명의 혜택이라고는 유일하게 손바닥만 한 크기의 트렌지스터 라디오가 있었을 뿐이죠.
국가대포 축구 경기를 하거나 프로 레슬링 시합을 중계하는 것을 시청하려면,
내가 사는 동네에는 칼라가 아닌 흑백 T.V가 있는 집이 한 집 밖에 없어서, 그 집으로 몰려가서 보곤 했답니다.
살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유년 시절이었습니다.
이렇게 환경은 열악하고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다들 어렵게 살다보니 서로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이 불행의 첫 걸음입니다.
부족한 것 투성이고 나름 불편했지만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한번 씩 고향 생각을 하면, 그 시절을 힘들었던 기억으로 기억하기 싫고 고통스럽기보다는,
나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은 행복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은 과거를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아름다웠던 추억이 더 많이 있는 곳이고, 시절이었습니다.
그리움이 있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 고향입니다.
수천 km를 헤엄쳐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산란을 하고 죽어가는 연어처럼,
인간도 이런 회귀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원히 돌아갈 곳, 본향을 그리워하며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되어서 중학교 3학년 시작하는 3월에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부산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고향에서 약 30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지역인 대한민국의 지도 상 서쪽 전라도와 유학을 간 오른쪽 경상도는 방언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지역이었답니다.
그곳에는 큰 형님이 직장을 다니고 계셨고, 형님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답니다.
물론 형님 가정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가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 주셨으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족이란, 형제란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가족 공동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 혼자 살 수 없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갈수록 세상은 개인주의로 흐르고 있지만, 세상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행복합니다.
젊고 잘 나가고, 많이 가지고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아프고, 고난을 당하고, 외로울 때, 경제적으로 힘들 때에
같이 하는 누군가가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힘이 되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누군가와 함께할 때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어려움들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한국 속담에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365일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길은 열심히 공부하여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을 하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물려받을 유산은 아무것도 없고, 딱히 뛰어난 재주나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가정 형편상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육군사관학교에 진학을 하고자 했는데,
1차 필기시험을 합격하고도 작은 형님의 반대로 무산되고,
마음이 어수선한 상태에서 전기에 약학대학 지원을 했는데 불합격을 했어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후기에 의과대학에 합격을 하였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 내 인생을 뒤돌아보니 내가 계획하고 원하던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걸어왔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직업군인이 되고 싶었으나,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의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뒤돌아보면 이 길이 내가 생각한 인생보다 훨씬 행복한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믿는 그분은 내가 의사로써 살아가기를 원하셔서 내 생각, 내 계획보다 더 좋은 길로 인도하셨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진로를 생각할 때 고민하면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긴 인생을 살아보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나에게 맞는 인생길이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억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 순응하는 것도 한 가지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의과대학을 진학한 뒤로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심각한 고민을 하면서 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로 무엇을 하며 살겠다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냥 주어진 삶에서 열심히 성실하게 부지런히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모험이나 도전 정신이 부족하여 늘 안전한 길만을 걸으려고 했습니다.
저의 삶에 이 부분은 단점 중에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의사로 살아가는 길에는 몇 가지 길이 있습니다.
크게 대학 교수, 종합병원 등에 근무하는 봉직의, 개원하여 운영하는 길 등이 있는데,
저도 군복무를 마치고 종합병원에 근무하면서 개원을 하려고 심각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몇 번이나 계획했던 개원의 길이 막히는 것을 경험하면서,
개원을 포기하고 봉직의로 만족하면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이 길 또한 돌아보니 나에게 가장 적당한 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개원의가 돈도 많이 벌고 자유롭고 더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맞는 길은 아니었다.’ 라는 결론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나의 성장 과정과 내가 의사가 된 과정 그리고 병원에서 흉부외과 의사로 살아 온
과정을 간략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과 의미가 무엇이냐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가 충족될 때 보람 있는 삶, 성공적인 삶,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합니다.
각 개인들은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서 영향을 받고 또한 어떤 계기가
삶의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좋은 책들과 신앙이 그 목적과 태도를 결정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받느냐가 살아가는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수많은 유혹의 손길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습니다.
잘못된 만남을 통해 인생을 망친 경우도 수없이 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외손자, 외손녀가 성장하면서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 좋은 멘토들을 만나기를 기도한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누구로부터 아니면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으셨나요?
10대에서 20대 그리고 30대 초반까지는 학업과 수련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의사 면허와 흉부 심혈관외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난 뒤에,
약 40개월 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군의관으로 근무하였습니다.
군을 제대한 뒤로는 종합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병원에서 30년 넘게 근무하고 있답니다.
평범한 한 인간의 삶입니다.
의사가 특별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지만 한 명의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지 일반 회사원들과는 좀 다른 직종일 뿐이죠.
20대 후반에 전공의 수련 중에 병원에서 만난 간호사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였고, 한 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무남독녀 외동딸이 결혼하여 아들과 딸 두 명의 자녀를 낳았고, 직장을 다니는 워킹 맘으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누가 보아도 특별한 면이 없는 한 평범한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평범한 삶과 비범한 삶은 어떻게 다를까요?
저는 그 평범해 보이는 삶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평범한 삶을 비범한 삶으로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노력하면 평범 이상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40대 초반에 박사 과정을 마무리할 즈음에, 한국의 유명한 김 형석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인문학 강의 중에서 행복한 인생, 보람된 인생을 이야기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는 평균수명이 길지 않아서 인생 수명을 60세로 기준으로 말씀하셨습니다.
60년의 인생을 3등분하여 태어나서
20년은 열심히 공부(수학)하고,
다음 20년은 배운 것을 가지고 일을 하면서 가정을 일구고 돌보며,
마지막 20년은 사회와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보람되고 지혜로운 인생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최근에 아서 브룩스가 지은 [인생의 오후를 즐기는 최소한의 지혜]란 책을 읽었습니다.
저도 인생의 후반전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은퇴와 그 이후의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자는 사람에게 인생을 살면서 가지는 두 가지 지능이 있다고 소개하는데,
젊은 시절의 <유동성 지능>과 중년을 지나면서 노년 시절의 <결정성 지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지능을 잘 활용해야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무엇인지
전 세계의 수많은 유명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 질문하고 답을 구했습니다.
고대 인도의 ‘아쉬라마’는 행복과 깨달음 속에서 중년의 삶으로 건너가는 법을 알려준다는 정보를 접하고,
저자는 인도에 가서 구루 [노처 벤카타라만]을 만나서
인생의 각 단계에 맞게 삶을 잘 사는 법을 알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질문합니다.
아차리아(스승)는 네 단계에 이루어진 삶을 사는 것이
인간의 바람직한 삶이라는 고대 인도의 가르침, 즉 아쉬라마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100세까지 사는 것을 전제로 하여 25년을 주기로 인생을 네 단계로 구분합니다.
아쉬라마의 첫 단계는 학생기로 배움에 전념하는 어린 시절과 청년기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시기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논란의 여지없이 꽤 당연해 보이지만,
힌두교 사상가들은 이 단계에서 가장 흔히 빠지는 함정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바로 돈, 권력, 섹스, 명예와 같은 세속적인 보상에 대한 집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단계를 평생 연장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디서 들어본 말 같지 않은가?
이는 자기 대상화를 낳지만 결코 만족감은 주지 못하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네 가지 우상(돈, 권력, 즐거움, 영광)을 좇으며,
유동성 지능 곡선이 더 이상 상승하지 못하고 가로막혀 있는 상태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우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들(영적인 기술들)을 가지고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의 이동이 필요합니다.
아차리아는 그 변화가 마치 다시 성년이 되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과정이며,
세상의 잣대로 우리를 정의했던 모든 것들의 내려놓음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건너가 거기서 지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보상을 초월하고, 집착이라는 재앙을 물리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쉰 살쯤 되었을 때 우리가 그동안 성실하게 살았다면 이룰 수 있는 일이다.
그 새로운 단계를 은둔기, 즉 바나프라스타라고 합니다.
바나프라스타는 ‘은퇴하다’와 ‘숲속으로’ 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두 산스크리트어 단어가 합쳐진 말이다.
이 단계는 우리가 목적의식을 가지고 오래된 개인적. 직업적 직무에서 물러나
영성과 깊은 지혜, 결정성 지능, 가르침을 주는 활동, 신앙에 점점 전념하는 단계입니다.
완벽한 인생을 살기 위해 50세에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가 아입니다.
그보다는 인생 목표를 정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바나프라스타는 우리가 두 번째 곡선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것과 동일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차리아는 은둔기가 마지막 종착지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노년기에 오는 마지막 영적 단계인 유행기, 즉 산야사가 남아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오로지 영적 깨달음에만 집중합니다.
옛날에 힌두교 남성들은 말 그대로 75세가 되면
가족을 떠나 종교에 귀의하여 남은 생을 스승 밑에서 기도하고 성서를 공부하며 보냈다고 합니다.
아차리아의 말을 빌자면,
“당신이 육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되는 순간이 바로 자기를 인식하는 순간이다.
자신이 영원한 진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인식과 깨달음이 바로 산야사이다.”
65세에 동굴에 앉아 있는 당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내포된 핵심은 여전히 분명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목표는 인생의 가장 깊은 비밀을 담은 성배를 들이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은둔기에 이루어지는 철학과 신앙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입니다.
그냥 나타나서 깨달음을 얻게 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선수로 훈련되지도 않은 사람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일과 같습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깨달음을 얻은 노년을 기대하며 영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원래 믿던 신앙이나 새로 가지게 된 신앙, 더 깊어진 신앙, 혹은 다시 만난 신앙에
자기도 모르게 끌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온 힘을 다해 이 변화에 저항하곤 한답니다.
노쇠함에 분노하고 변화한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그들은 신적인 존재에 자신의 요구도 차단해버립니다.
그들은 자동차 뒷 창문 너머를 바라보며 말년을 살아갑니다.
영광스러운 과거가 서서히 희미해지는 것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새로운 가능성과 모험이 존재하는 미래는 생각할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영광은 단지 과거 영광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는 사이 운둔기의 영적 성장을 건너뛰고 이제는 산야사의 축복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직업심리적 중력의 법칙의 영향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이 됩니다.
당신이 에너지가 넘치는 변호사나 언론인, 경쟁심이 강한 최고 경영자, 혹은 아차리아를 만났을 당시의 저자처럼
미국의 싱크 탱크의 대표라고 가정해봅시다.
성인이 된 초기부터 중년이 된 지금까지 당신은 일에 관해서라면 항상 앞으로 나갈 태세가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성공이라는 세속적인 보상을 추구하고 그중 일부(혹은 많은 부분)는 성취해서
이 보상들에 아주 집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스로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기 전에 이 성취와 보상을 두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유동성 지능이 쇠퇴하기 시작하면 그것에 분노하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분노해봤자 만족감을 주지 않는 집착만 더 강해지고 좌절하게 될 뿐입니다.
그보다는 결정성 지능을 더 강화하고 당신의 지혜를 타인과 공유해야 합니다.
일 중독자이자 성공 중독자로 살고 있는 중년들에게 전하는 충고는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그게 다입니다. 다른 건 없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집착을 버리게 해주지 못합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마음이 더 고요해지면, 당신 안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그 보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책은 서양인이 쓴 책이고 전 세계에서 유명한 분들을 찾아 질문을 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 지혜를 묻는 물음에, 인도의 은둔한 현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저는 결국 행복한 인생에 대한 동서양 현인들의 동일한 대답을 발견하고는,
사람들이 행복한 삶에 대한 생각이 같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인생의 시기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지혜를 가르쳐주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적에 대해 질문하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절대 다수의 대답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요?
현대인들에게 행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필요한 것이 물질, 돈,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돈을 가지고 있어야 내가 원하는 것을 살 수 있고, 누릴 수 있으며,
쾌락을 누릴 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다는 의미를 쾌락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물질이 필요하고, 그 물질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길을 찾아 동분서주합니다. 더 많은 수입을 가져다 줄 직업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사느냐 보다는, 무엇을 하고 사느냐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무엇이 되느냐가, 어떤 직업을 갖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지름길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재능이나 능력과는 다른 어떤 것,
즉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찾아 길을 잃고 헤메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은 결코 소유에 있지 않다고 수많은 지혜 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사람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동물들이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과 다릅니다.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상실해 버리면 인간은 진정 행복하지 않습니다.
감각적인 쾌락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행복이라는 주제를 빙 둘러 왔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노 교수님의 강의가 계기가 되어서, 40대에 시작한 것이 해외 의료봉사활동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주어진 일 년 휴가가 6일밖에 안 되었지만
그 휴가를 이용하여 매년 몽골, 피지, 키르기스스탄, 베트남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하였답니다.
수개월 전부터 봉사 팀을 꾸리고, 의약품을 준비하고, 여권, 비자발급 등 각종 서류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짧은 기간이지만 비교적 의료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곳들을 찾아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곤 했답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번거롭고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나의 개인적인 휴가를 반납하고 비용을 지불하면서,
누군가를 돕기 위한 봉사활동을 20년 가까이 지속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중간에 힘들어서 이젠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못하고 지속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이유들 중에 하나가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힘들고 시간과 물질의 손해를 보는 것 같았지만,
다른 것을 하면서 누리는 즐거움보다 내 안에 주어지는 행복은 그것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행복이었답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었다는 보람이나 자랑보다, 내가 받아 누리는 행복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행복을 찾아 의료봉사활동의 길을 떠나곤 했답니다.
힘들어도 행복이 그곳에 있기에 발길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주는 자만이 누리는 행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이런 행복은 각종 레저 활동을 하고, 비싼 음식을 먹으며, 값비싼 명품을 걸치고,
고가의 자동차를 타며, 넓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누리는 행복과는 차원이 다른 행복이랍니다.
지금까지 내 삶의 여정은 그런 삶의 의미를 쫓아서 살아왔다고 해서 과언이 아닙니다.
노 교수의 강의가 제 삶의 영향을 미쳤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하게 되었으며,
제 직업의 특성을 살려 해외 의료봉사활동이었는데,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찾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즐기고 싶고, 편하게 살고 싶고, 나만을 위한 시간들을 누리고 싶은 욕망이 저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짧은 인생을 살면서 모든 것을 다 하고 누리며 이루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순간마다 선택을 해야 합니다.
무엇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고 행복한 삶이며 의미가 있는 삶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해야 합니다. 결정한 후에는 행동해야 합니다.
인생길에서 가장 먼 길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길이고, 그 다음이 가슴에서 발까지 이어지는 길입니다.
마음은 원하지만 실천하기는 매우 힘든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실천을 통해서만 진정한 행복은 찾아옵니다.
수고하고 노력하는 자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이며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한자에 사람인자(人)는 두 사람이 기대어 살 수밖에 없음을 알고 형상화하여 만들었습니다.
창조주도 인간이 혼자 사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셔서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답니다.
수입이 많은 좋은 직장을 다니며 혼자서 마음껏 온갖 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을 향한
솔로 족, 골드미스 등등 신조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부러워합니다.
과연 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할까요? 자기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최고라고 착각합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자기 사랑이라고나 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진정한 참 행복이 무엇인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치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자기 좋은 소견대로 살아갑니다.
상대적인 가치만 존재하고 절대적인 진리는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남의 이야기는 다 간섭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좋은 사람들의 지혜로운 말과 충고에 귀 기울이는 자들입니다.
내가 진정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더 긴 인생을 살아온 어른들의 말씀에 귀를 열고 들으십시오.
좋은 책들을 통해 지혜로운 스승들이 들려주는 말에 우리 눈을 사용하십시오.
손과 발을 사용하여 그 지혜를 찾아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삶에 만족하느냐가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든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족하는 마음, 만족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삐뚤어진 것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보아도 바른 삶을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찾아 누리는 행복이어야 합니다.
하나 꼭 덧붙이고 싶은 것은 사랑입니다.
행복한 삶에 필수적인 것이 사랑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저는 내가 믿는 그분도 사랑합니다.
내 인생이 행복했는가라고 묻는다면 100점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박한 점수를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수고하고 노력한 것 이상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로서 경제적인 안정과 사회적인 인정 속에 편하게 즐기며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평범한 삶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살았습니다.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갑니다.
그 행복이 단지 나만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창조주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축복합니다.
정리하자면 지난 나의 인생길은 내가 원하는 삶의 의미를 쫓아 살다보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살았노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나라에는 그 나라의 역사가 있습니다.
형통의 역사도 있지만 굴곡진 역사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한 나라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그 역사를 읽고 배우면서 교훈을 얻습니다.
타산지석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타산지석의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자신의 산의 옥돌을 가는 데에 쓸 수 있다는 뜻으로,
본이 되지 않은 남의 말이나 행동도 자신의 지식과 인격을 수양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경≫ <소아(小雅)>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 각자의 인생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각자의 역사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나의 인생, 나의 역사이야기를 자주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인생은 겉보기에는 성공한 인생 같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실수와 실패 그리고 죄와 허물로 얼룩진 인생이기에,
나의 진솔한 역사 이야기를 통해 타산지석으로 삼아 교훈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부터는 저의 실수와 허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내가 제대로 살지 못한 삶의 모습 중에서 첫 번째가 무엇이냐면 정말 평생을 같이할 좋은 친구를 사귀지 못했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라면 평생을 같이 할 두세 명의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젊은 날 상처로 인해 사람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했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을 알고 그들과 잘 지내고는 있지만 진정 생사고락을 같이할 친구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늦기 전에 좋은 친구를 사귀기 바랍니다.
좋은 친구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여야 합니다.
물론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자신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좋은 친구가 있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로는 자기 성격에 따라 살다보면 실수를 많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의 성격은 단순하고 직선적이고 급하며 저돌적인 행동형입니다.
그러다보니 신중하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실수를 자주 하게 됩니다.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하며,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분석적인 면이 부족합니다.
자기 성격 유형과 단점을 잘 파악하고, 단점을 보안하는 일도
인생을 살면서 실수와 실패를 줄이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살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성격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실수도 만회할 기회가 있기는 합니다만,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나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단점을 보완하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아내는 저와는 다른 유형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직관에 의존하던 습관을 고치기 위해 독서도 많이 하고, 주변에 의견을 구하기 위해 질문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을 친절히 대하고, 다정다감하게 대하며,
늘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오히려 소흘하게 대할 때가 많습니다.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에만 담아두지 마세요.
사람이 죽을 때 ‘걸 걸 걸 ’하며 후회한다고 합니다.
그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할 걸, 그때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때 용서한다고 말해줄 걸 ...등등 말입니다.
저도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같이 있을 때 마음을 표현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다 읽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오해가 생기지 않고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살면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관계입니다.
그 관계를 잘 유지하는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가 대화이고 진실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수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합니다.
진실 된 대화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월을 아끼시기 바랍니다.
젊은 날 자기의 전문성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헛된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인생을 즐기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저의 젊은 날을 돌아보면 좀 더 전공이나 어학이나 독서 등에 더 집중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과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아쉬움도 남아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T-자형 인간입니다.
아래로 뻗은 획은 전문성이요, 자기 개발이며,
옆으로 뻗은 획은 광범위한 지식과 경험도 필요하다는 의미이고 이웃과 함께하는 교제의 폭이기도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더 깊게 그리고 더 넓게 펼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젊은 날 좋은 책들을 많이 읽기를 권합니다.
얄팍한 SNS를 통한 정보나 얄팎한 지식의 습득보다는, 책을 통한 독서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책보다 더 좋은 인생의 길잡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한 때 [명품]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명품을 가지고 싶지요.
세상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돈을 모아 명품을 사고, 그것을 자랑하며,
그것을 소유함으로 인한 만족과 행복을 느끼려고 합니다.
명품을 구입하지 못한 사람은 짝퉁이라도 갖고 싶어 합니다.
그것보다는 그 어떤 명품보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명품, 자신을 명품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외모는 세월이 가면 낡아집니다.
갈수록 풍성해지고 진가를 더해가며 빛나는 내적인 명품인 고상한 인격의 소유자,
존경받을 만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의미 있는 삶,
자신만이 아니라 남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아쉬운 것들이 참 많습니다.
오늘 [나의 인생, 나의 역사]라는 주제로 들려준 이야기가 타산지석이 되어서
여러분의 앞으로의 살아가는 인생길에 조금이라도 유익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시간 평범한 특별하지도 않은 저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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