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열왕기하 10장 1-17절
예후의 아합 일가에 대한 심판은 계속된다.
요람, 이세벨에 이어 70명의 아합의 아들들과 아합 가문 사람들과 측근들
거기다 아하시아의 42명의 형제들까지 살해한다.
예후는 레갑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여호와를 향한 나의 열심을 보라" 고 호기를 과시한다.
악의 근원까지 철저하게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대행자로 기름주음 받은 예후는
아합 일가와 관련된 이들을 철저하게 숙청한다.
이로써 아합 가문에 속한 모든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신분에 관계없이 멸절될 것이라는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왕상 21:21)
아합 왕가는 영원한 제국 같았고 철용성처럼 견고해 보였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꺼내 드시자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사라져버렸다.(시 1:4,5)
악인의 성공을 부러워하지도, 그들의 득세를 두려워하지도 말자.
하나님의 심판은 정해진 때를 향해 지금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다.
아~~~
그러나 연약한 인간은 당장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들로 인하여 마음을 빼앗기고 흔들리며 넘어진다.
성령이여 마음을 붙들어주시고, 요동치 않게 도와 주소서.
믿음과 소망으로 흔들리지 않고 이 믿음의 순례길 걸어가게 은혜를 베푸소서.
예후의 명령에 귀족들은 아합의 아들 70명의 머리를 가져오고,
예후는 당시 관행대로 이를 성문 어귀에 달아둠으로 심판의 필연성과 엄중성을 알린다.
비록 이러한 잔혹함이 오늘 우리에게 당혹감을 주지만 이를 통해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나의 죄를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예후를 심판의 도구로 선택하셨다.
그러나 그가 보인 행동은 도를 지나치게 넘어선 잔인한 열정이었다.
유다 왕 아하시의 형제 42명까지 남김없이 죽인 것은
차후에 발생할 수 있는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인 계산이 깔린 결정이었다.
이러한 빗나간 동기에서 비롯된 과도한 숙청은
훗날 예후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가 된다.(호 1:4)
이러한 면은 "여호와를 향한 나의 열심을 보라"라는 호기 섞인 그의 과시에서도 드러난다.
하나님이 예후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은
그가 의로워서라기보다 그의 무자비한 성품과 지나친 권력욕이
아합 가문에 대한 철저한 심판을 집행하기에 제격이었기 때문일 수 있다.
혹시 나의 이기적인 뜻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용하지는 않는지,
혹은 하나님을 향한 충성으로 시작했으나 나의 과욕으로 변질된 일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정당한 만큼 인정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기질과 성격대로 일을 하는 경향이 많다.
나도 지나친 열정이 빗어내는 실수와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또한 자기와 다른 성도들의 행동을 자기 기준에 맞춰 판단하는 죄를 범하기도 한다.
나아가 초심을 잊어버리고 욕심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늘 하나님의 뜻과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 비춰보며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보다 나의 생각이 앞서고 강할 때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아니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다 죄이며 잘못이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온전한 통치와 질서와 지배하에서만 살아가야 한다.
늘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 길, 이 방법만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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