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엘리사의 죽음과 요아스의 소극적 순종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9. 26. 09:24

본문 : 열왕기하 13장 1-13절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자 요하스 왕이 병문안으로 찾아 와서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부른다.

 

여로보암의 길로 걸아가고 있지만 왕에게 엘리사는 육신의 아버지 이상의 기댈 언덕이었다.

자기를 찾아온 왕에게 화살과 활을 가지고 동쪽을 향해 쏘게 하고, 땅을 치라고 한다.

그러나 왕은 화살로 땅을 세 번 치고 만다. 

왕의 그런 소극적인 행동에 향후 결과를 예언하는 엘리사의 마음이 편치 않다. 

지금 엘리사가 자기에게 지시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생각했더라면 그렇게 했을까?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선지자의 수고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언약을 생각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엘리사는 죽어서도 하나님을 증거한다.

모압이 처들어오자 장사를 지내던 자들이 놀라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에 던지매

죽은자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난다.

죽어서도 영원히 살아계시며 생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증거한다.

 

아람은 하사엘과 그의 아들 벤하닷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침략해온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요하스가 아람을 물리치고 여호아하스가 빼앗긴 성읍들을 되찾아온다.

 

우리는 엘리사의 사역에 엘리야보다 덜 주목한다.

그러나 성경은 엘리야 못지 않은 더 많은 사역을 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엘리사만큼 기적을 일으킨 사역자도 없다.

이 위대한 선지자도 병에 걸려 죽는다.

엘리야의 죽음과  엘리사의 죽음은 차이가 크다. 

한 사람은 살아서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고, 한 사람은 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다 멋있게 아름답게 아무 고통없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우리르 소천하시는 방법은 다르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기도한다.

나의 마지막을  위해서 ...

 

요하스의 행동을 읽을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 땅을 선지자가 멈추라고 할 때가지 계속 쳤더라면  아람을 진멸했을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인간은 늘 아쉬움이 남는 행동을 한다.

후회없이 살다가 미련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는 없을까?

하나님 앞에 온전히 순종하고 최선을 다해 봉사할 수는 없을까?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

어머니는 "썩어 없어질 육신을 뭐 그리 아끼느냐"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게을러질때면 어머니의 이 말씀이 생각이난다.

앞으로 얼마나 살다가 갈까...

죽는 날까지 적극적으로 살자. 후회없이 살자. 

미련없이 홀가분하게 떠날수 있게 말이다.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하고 손 흔들며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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