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여호수아 5장 13절 - 6장 7절
불타는 떨기 나무에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이 서 있는 모세에게 명하셨다.
내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여호수아는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러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서 있는 한 사람을 만난다.
전쟁을 앞둔 여호수아로서는 상대가 자기 편인지 적인지 구분하고 싶었을 것이다.
여호수아가 너는 누구 편이냐 묻자
"나는 여호와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다." 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자신에게 무엇을 말씀하려 하는지 묻는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의외의 대답을 듣는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한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경외와 존경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합당한 반응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의 태도와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당시 문화적인 이해가 없이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모습이지만
아마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향한 존경과 경외의 표시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또한 더러운 신발을 벗음으로써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성결해야함을 나타내는 의미이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묻는 여호수아의 질문에 여호와의 군대 대장은
이스라엘이나 가나안이 아닌, 여호와의 편이라고 답한다.
그의 대답은 격려이면서 동시에 경고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면다면 여호와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도울 것이지만,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기면 여호와의 군대는 그들의 적이 될 것이다.
그의 격려는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성취되고, 그의 경고는 아이성 전투에서 패할 때 실현된다.
우리도 언약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지원을 경험하겠지만,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징벌을 경험할 것이다.
내편도 아니고 상대편도 아닌 여호와의 편이라는 말에 깊은 울림을 받는다.
우리가 이런 의식을 같는다면 하나됨은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지 못하여 일어나는 교회 안의 분열을 보면서
우리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여리고성은 어떤 성이었나?
여호수아가 태어나기 전 천여 년 전에 세워진 여리고 성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 중 하나였다.
7.5m 높이에 두께가 6m에 이르는 요새화된 벽이 있는 장소도 있었다.
성벽 위에서 경비를 보는 병사들은 몇 킬로미터 밖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여리고는 군사력과 힘의 상징이었다.
가나닌 사람들은 그 성을 천하무적이라 여겼다.
이스라엘은 이 도시를 먼저 공격했고,
여리고의 멸망은 이스라엘에 대한 두려움을 가나안에 사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심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요단강을 가른 이스라엘 하나님을 자연의 신으로 보았고,
또한 시혼과 옥을 물리쳤기 때문에 전쟁의 신으로 여겼다.
하지만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요새의 신으로는 여기지 않았다.
여리고성 정복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가나안 신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뿐 아니라
아무도 그분을 이길 수 없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여리고성의 전투 이야기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 뒤에 진행된 많은 전투는 그냥 건너뛰는 모습이다.
파죽지세로 성들이 무너지고 승승장구하는 모습만 기록하고 있음은
여리고성 함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믿고 신뢰했는지를 가늠케 한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를 이미 그의 손에 넘겨주었으며 적은 이미 패배했다고 말씀하셨다.
출정할 때 여호수아는 얼마나 확신에 차 있었겠는가 !
그리스도인 역시 패배한 적과 싸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대적 사탄을 이미 물리치셨다(롬 8:37-39 : 히 2:14-15; 요일 3:8).
여전히 우리는 날마다 전투를 벌이고 죄가 만연한 세상에 살지만
그 전쟁에서 이미 승리를 확신한다.
패배한 적의 능력에 꼼짝 못하고 서 있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다.
기선제압, 심리적 안정, 승리에 대한 확신이 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한다.
세상의 어떤 환란이나 고난이 닥쳐와도,
파도같은 시련이 밀려와도 감당할 수 있음은 이 믿음때문에 가능하다.
아니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가능하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왜 이 전쟁에 이토록 온갖 복잡한 지침을 주셨는가?
① 하나님은 전쟁이 자신에게 달려 있지,
이스라엘의무기와 전문 지식에 달려 있지 않음을 더없이 명백히 하고 계셨다.
이 때문에 군인들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전쟁에 나갔다.
② 그 성을 취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여리고 사람들이 이미 느꼈던 공표를 (2:9) 강화시켰다.
③ 이 이상한 책략은 이스라엘 자손의 믿음과
그들이 기꺼이 하나님만을 온전히 따르고자 하는지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나팔을 부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는데,
그들은 전쟁에서도 종교 절기에 사용하는 나팔을 불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그들의 군사력이 아니라,
여호와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민 10:9-10).
직접 여리고 성을 함락하겠다고 선언하시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한 지시를 내리신다.
완전성을 뜻하는 '7'의 반복은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
"양각 나팔 소리'는 희년의 선포를(레 25;8-10),
'7일간의 과정'은 하나님의 창조를 의미한다고 한다.
즉 하나님은 이 특별한 지시를 통해 가나안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억압받고 자유를 잃어버린 자들을 해방하시며,
새 창조를 이룰 것을 알리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은
이 일을 이루실 하나님을 환영하고 예배하는 행위이다(삼하 6:15).
하나님은 '온 땅의 주'((3:11)로서 온 세상을 억압으로부터 해방하여(눅 4:18,19)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로 새로이 창조하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를 이 일의 목격자요, 참여자로 부르셨다.
가나안 입구에 칼을 들고 서 있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의 모습은
불칼을 들고 에덴동산을 지키는 그룹들(창 3:24)과 성소 휘장에 수놓인 그룹들(출 36;35)을 떠올리게 한다.
군대 대장은 여호수아에게 '거룩한 곳에 서 있으니 신을 벗으라'고 명령한다.
이는 가나안 땅 전체가 하나님이 계신 성소이니 그 안에서 성결을 지키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성전 안에서 사는 정도가 아니라 성전 그 자체가 되었다(고전 3:16).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겸손함과 신발을 벗는 정결함을 견지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살며 희년을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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