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여호수아 6장 8-27절
난공불낙으로 생각하던 철옹성 같은 여리고성이 무너졌다.
우리 세상사나 인생사도 그렇지 아니한가
경제적으로 견실하거나 안정적이어서 결코 부도가 나거나 망하지 않을 것 같은 기업이
한 순간에 부도가 나고 망하는 것을 보며
건강하고 튼튼하여 질병에 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어느날 중병에 걸려 있는 것을 본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은 없다.
하나님이 간섭하시면 안전하다고 장담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저자는 여리고성 전투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하게 길게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가나안 정복 전쟁의 첫 전투이기도 하고
전쟁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전쟁에 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과 자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지
전쟁의 승패가 누구에게 달려있는지 ...
등등을 깨닫게 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지시를 이행하자 하나님의 약속대로 여리고 성벽이 무너졌다.
이처럼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능력을 보이시고 승리를 안겨주신다.
여리고 전쟁 이야기가 과거 역사로 기억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물리적인 전쟁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는 사람이 아닌 악한 영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엡6:13-18).
이 전쟁에서는 물리적인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영적 무기를 들어야 한다.
진리, 평화, 복음, 믿음, 구원,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명되는 삶을 산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승리, 복음의 승리를 보게 될 것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다.
상식적으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알려주신 대로 여리고성 주변을 돈다.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와 '충성심'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자기 욕망을 거슬러 성령의 욕망을 따라야 하는 (갈 5:16),
넓은 길을 외면하고 좁고 협착한 길로 가야 하는 (마 7;13,14)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마음이다.
상식과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만날 때 그리고 그것에 순종을 요구받을 때
우리는 당황한다. 어쩌면 반항하고 거부한다.
자기의 지식과 경험과 이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그 명령을 내리는 자가 누구인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상대방을 믿을 때 우리는 비상식적이라고 생각되는 행동도 하게 된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인 이 7일간의 행진을 묵상한다.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어떤 결과를 기대했을까?
요단 저편에서는 무기로 시혼과 옥을 처서 승리했었다.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전술에 얼마나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순종했을까?
하루 이틀은 명령대로 따라할 수 있을 것 같다.
며칠이 지나고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 마음에서 의심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런데 광야에서 보이던 그들의 불신, 불순종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항상 기적은 끝까지 순종할 때 일어나는 법인가 보다.
하나님은 끝가지 불평, 불만 없이 명령대로 따라 여리고성을 돌고 있는 이스라엘 벡성들을 보셨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순종이 아닐까 싶다.
순종은 상대를 온전히 신뢰할 때 나오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주와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로서
그들에게 요구되는 모습은 믿음과 신뢰에서 나오는 순종이고 충성이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의 바른 관계이다.
바른 관계만이 살롬이 임하고 평강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리고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을 멸하라고 요구하셨는가?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의 악함에 대해 가혹한 심판을 하고 계셨다.
이 심판 혹은 금령은 일반적으로 모든 것을 멸하라고 요구했다.
가나안은 악한 관행과 열정적인 우상 숭배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근거지였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올바른 삶에 위험이 되는 것은 제거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암이 자라듯이 악이 이스라엘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사사기에 나오는 슬픈 이야기처럼).
여리고의 몇몇 사람과 어떤 항목은 멸하지 않았지만 이는 특별한 경우였다.
라합과 그의 가정이 구원받은 따닭은 라합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고, 이스라엘 정탐군을 도왔기 때문이다.
은금과 동철 기구를 보관한 이유는 백성을 부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막과 예배를 아름답게 하기 위함이었다(6:24)
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의 믿음이 오염되지 않게 하려는 데 있었다.
하나님은 전리품이 가나안 족속의 관행들을 상기시키지 않기를 바라셨다.
하나님은 우리도 순결하기를 바라신다.
그분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우리의 죄와 우상 숭배를 깨끗하게 없애버리길 바라신다.
개인적인 이익을 얻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영적인 목표를 향한 삶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또한 하나님께 반역하는 삶을 떠오르게 하는 물건은 모조리 거부해야 한다.
여리고성 함락후 취한 행동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영적인 의미를 생각한다.
여리고성의 '온전히 바침'(히, 헤렘)은 세 방식으로 이뤄진다.
살아 있는 것을 죽이는 것,
은금과 동철 기구들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는 것,
나머지는 불사르는 것이다.
여기엔 죄에 대한 심판, 하나님의 소유권 인정, 죄의 잔제 척결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의 심판을 친히 '헤렘'이 되심으로
'은혜의 때, 구원의 날'(고후 6:2)이 되었다.
우리가 실천할 헤렘은 남이 아닌 나의 죄를 죽이고(롬 8;13),
나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며(롬 6:13, 12:1),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것(롬 15:16)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하나님의 심판 명령을 수행하는 중에도
라합을 잊지 않고 그를 살리기 위해 마음을 썼다.
이스라엘이 심판 때도 살리려는 마음을 놓치지 않았다면,
구원과 은혜의 때를 사는 우리는 더욱 그리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 불의하고 부정한 죄를 버릴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