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10장 1-24절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것을 주저하는 자들을 보시고
따로 70명을 세우셔서 복음 증거를 위해 파송하신다.
그러시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행동 규칙을 일러 주신다.
제자들의 보고는 성공적인 사역 보고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 사역의 결과보다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복음이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아닌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한다.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에게 주신 자들과 아들이 계시한 자들이 아버지를 알아보았다.
많은 선지자들과 임금들이 보고자 한 것을 보고 있는 너희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은 문맥의 흐름을 잘 따라가야 잘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이다.
자신이 떠나신 후 당신의 사역을 이어갈 자들을 생각하시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사역에 임하는 자세와의 마음가짐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등을 가르쳐 주신다.
순전하게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된다.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의 마지막 훈련 과정인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은 사역보다
제자들이 하나님을 보았고, 알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이다고 말씀하신다.
사역에 매몰되어 구원의 감격과 천국 시민권자로서 누릴 영광을 잊지 말자.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 살아갈 영생의 소망을 단단히 붙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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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제자가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상징한다면,
칠십은 이방 민족의 수(창 10장)이므로 칠십며의 제자는 열방을 상징한다.
예수님의 선교 계힉은 애초부터 이스라엘 너머 온 세상을 향했다.
"추수할 일꾼을 더 보내주소서"라는 기도문은, 열둘과 칠십을 넘어서는 세 일꾼들의 숫자에
바로 우리가 포함되어야 함을 알려준다.
복음에 적대적인 세상에서 위협과 위험을 마주할 제자들은
'완전 무장'이 아닌 '빈손'을 요구받는다.
지갑, 가방, 신발 등 여행의 필수품조차 지참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의지하라는 뜻이다,.
칠십 제자는 광장이 아닌 가정으로 간다.
설교가 아닌 '관계 전도'를 한다.
무엇보다 그 집에 평안(살롬)을 선물해야 한다.
하나님의 선물을 전했으니 환대를 받는 게 마땅하지만, 환대가 적다고 다른 집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계산적인 마음을 버리고, 이미 시작된 하나님나라만 전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그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 증거를 보고도 거절하는 자들은
주님의 나라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더 많이 받은 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귀신을 쫓아내는 기적은 사탄의 몰락을 보여주는 징조이다.
사탄을 패배시키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수반되는 현상 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 그 자체이고, 우리가 구원받아 그 나라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천국 백성으로 순종하는 모든 삶이 사탄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기적이다.
이 땅에 틈입한 하나님나라는 어린아이처럼 순전하게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이들에게만 보인다.
약한 자들을 통해서 세상의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이고 신비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복을 어떻게 누리고 있는가?
어린아이의 마음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통치에 기쁨으로 참여하고 누리게 하소서.
--- [ 복음의 증인이 누리는 평안]
12제자를 전도 파송하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70인을 보내십니다.
지난번 제자들의 경우에는 훈련 차원에서 보냈는데,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전도하라고 보내시는 것일까요?
이제 드디어 하나님 나라의 본격적인 확장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필요 없다. 가라.’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신 주님께서, 그래도 가지 않고 남은 자들을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전도가 주된 목적이 아니라 믿음의 단련과 확증이 주된 목적입니다.
3절과 20절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입니다.
돌아온 제자들에게 전도에서 역사가 일어난 것 때문에 기뻐하지 말고
그들의 믿음이 확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20절).
제법 믿음이 있는 자들이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보내는 주님의 심정은 이렇습니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나마 믿음이 좀 나은 분들인데도 주님이 보시기에는 위태하기 짝이 없습니다.
단지 앞서 보내는 것뿐이니까, 주님께서 곧 뒤따라 갈 것이니까, 먼저 가 보라고 하십니다.
70인의 제자들을 아끼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런 불안한 심정이면 보내지 말거나,
보내더라도 있는 것 없는 것 가릴 것 없이 다 챙겨 준비시켜서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주님은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주님의 이 이율배반적인 행동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전도를 열심히 하라고 하시지도 않습니다. 결신을 많이 시키라고 하시지도 않습니다.
“평안의 복음을 전해라. 받지 않으면, 발에 먼지를 떨어버리고 나와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성과를 크게 기대하시며 파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70인을 보내시는 것입니까?
20절 이하를 통해 확인되는 것처럼 결국 70인도, 12사도와 마찬기지로
믿음을 심어주려고, 자기 자신들에게 생명 있음을 알게 하려고 보내십니다.
예수님은 70인을 복음의 증인으로 보내셨습니다.
생명의 복음, 평안 복음의 증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주신 복음의 증거는 ‘평안’이었습니다.
5절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를 직역하면, “평안이여, 이 집으로”입니다.
'평안'이 목적격이 아닌 주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70인의 제자들에게 그들 자신에게 있는 평안을 나눠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6절에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너희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그 평안은 제자들에게서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공동번역, 현대인의 성경은 모두 ‘돌아오다’가 아닌 ‘되돌아오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0:6]
(표준새번역) 거기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내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공동번역) 그 집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 만일 평안의 축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가 빈 평안이 그에게 내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이 평안은 영생을 가진 자에게서 나오는 평안입니다.
영생은 단순히 오래 사는 생명이 아니고, 풍성한 생명입니다(요 10:10).
하나님으로 인해 부족함이 없는 충족의 삶입니다(시편 23편).
예수님은 70인 제자들이 자기에게 있음을 확인한 이 영생이
하나님을 아는 것(알아 가는 것, 알고 지내는 것, 진행시상)에서 비롯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전도 현장에서 돌아온 70인들에게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음을 기뻐하라고 하시며(20절)
그들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22절).
예수님을 계속 보는 것(23절), 예수님을 계속 알아가는 것(22절),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듣는 것(24절)이
영생의 복을 계속 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아는’이라는 표현은 단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사용하는 ‘야다’의 헬라어 표현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안다’는 표현에 ‘야다’를 사용합니다.
몸으로 체득하여 아는 것을 말합니다.
계시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하나님의 형상이 내 안에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풍성한 생명, 평안의 생명을 누리는 길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는 목적은, 복음 증거를 맡기시는 목적은 성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믿음의 사람, 평안의 복음 누리는 사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의 증거자로 살 때 내가 진정으로 생명의 복음, 평안의 복음 가진 자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가르치면서 가장 많이 배운다고 하지 않습니까?
일등 스타강사들이 이야기하는 공부 잘 하는 비결은,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복음을 가장 확실히 알게 되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의 평안을 가장 확실히 누립니다.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 때문에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복음의 증거는 받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소식이지만,
거절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증거가 됩니다(빌 1:27-28).
그래서 거절하는 자들에게도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거절당할 것을 예상하면서 담대히...
그래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앞당겨질 것입니다(마 24:14).
뭔가를 한다고, 뭔가를 할 거라고 껍죽댔습니다.
"그러지 마라. 나는 니가 뭘 하기를 바라는 것 아니다. 니가 복음을 잘 누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뭘 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다시 듣습니다.
주여, 저를 목사 되게 하신 이유를 또 잊어버렸습니다.
주장하는 자세 버리고 언제나 훈련생으로 살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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