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아가 6장 13b- 9:4절
춤추는 아내를 발 끝부터 머리까지 신체 각 부분을 아름다운 언어로 묘사한다.
나는 하나님을 어떤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내와 딸과 외손자.외손녀를 그리고 사위를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할까?
나도 아가서의 연인들처럼 서로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식어진 첫 사랑을 생각하고 안타까운 눈물을 보낸다.
내 가슴에 뜨거움과 열정이 식어져버림으로 슬퍼서 운다.
어디서부터 사랑이 식어졌을까?
뜨거운 사랑도 신선한 사랑도 아니고 미지근한 사랑이 내 모습이다.
메말라버린 사랑으로 이웃에게 흘러보낼 사랑이 없다.
허한 가슴, 답답한 가슴, 황량해진 가슴에
주님의 사랑을 부어 주시기를, 채워 주시기를 기도한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있기는 한 것인가?
나는 나를 사랑하기는 한 것일까?
나는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사랑 없음에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이라는 문구를 좋아하게 되었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고 있는가?
내 안에서 그 사랑이 경험되어 지기를, 충만히 채워지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알기 원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를 원한다.
주님의 사랑을 닮기 원하고, 나도 그 사랑을 흘러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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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도록 솟구치는 사랑]
여자의 친구들은 남편에게 가는 여자에게 '돌아와서 춤추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남자가 나가서 거절한다.
지금은 남편만이 아내의 춤을 감상할 때이다.
남편 앞에서 춤추는 여자의 모습은 '귀한 자의 딸'처럼 기품이 있다.
남자는 춤추는 아내의 발부터 시작해서 다리, 배꼽, 가슴, 목, 눈, 코,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아내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탄성을 터뜨린다.
더 나아가 이제 아내와 사랑을 나누길 원한다.
그에게 아내의 몸은 오르고 싶은 늘씬한 종려나무 같고, 맛보고 싶은 탐스러운 열매 같다.
남편 앞에서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아내나, 그런 아내의 아름다움을 경탄의 눈으로 응시하는 일은
금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부부에게 주신 거룩한 희열이다.
여자는 자기를 향유하도록 남편에게 허락한다.
자기가 남편에게 지극히 소중한 존재임을 확신했고, 자기를 향한 남편의 열정 속에서
진정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뜨거운 사랑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고,
그 안정감은 우리 안에서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변모한다.
여자는 남편의 구애에 자신을 허락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편과 사랑을 나누기 원한다.
인적 없는 들로 가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 그들의 포도원으로 가자고 한다.
남편의 초대에 응해 포도원 문을 열고 들어오면 자신이 준비한 햇열매와 묵은 열매를,
자기의 사랑을 다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늘 함께 있고
언제든 사랑을 나누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사람들이 오누이로 알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어떻게든 자신의 사랑을 더 자주, 더 많이 주고 싶어 한다.
나는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사랑하는 주님에게 무엇을 드리고 있는가?
여자는 사랑에는 때가 있으니 기다려야 한다고 거듭 당부한다.
사랑 없는 쾌락이나 무첵임한 사랑에는, 시린 아픔과 쉬이 사라지지 않는 후유증이 남기 때문이다.
사랑의 표현으로 사랑의 마음을 키우고, 사랑의 충만함이 표현의 풍성함으로 이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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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한 신뢰와 사랑, 행복을 향하여 ]
찬송가 604장 완전한 사랑
(남자)
6:13b. 그대들은 어찌하여 마하나임 춤마당에서 춤추는 술람미의 아가씨를 보려 하는가?
7:1. 귀한 집 딸아, 신을 신은 너의 발이 어쩌면 그리도 예쁘냐? 너의 다리는 숙련공이 공들여 만든 패물 같구나.
2. 너의 배꼽은, 섞은 술이 고여 있는 둥근 잔 같구나. 너의 허리는 나리꽃을 두른 밀단 같구나.
3. 너의 가슴은 한 쌍 사슴 같고 쌍둥이 노루 같구나.
4. 너의 목은 상아로 만든 탑 같고, 너의 눈은 바드랍빔 성문 옆에 있는 헤스본 연못 같고, 너의 코는 다마스쿠스 쪽을 살피는 레바논의 망대 같구나.
5. 너의 머리는 영락없는 갈멜 산, 늘어뜨린 너의 머리채는 한 폭 붉은 공단, 삼단 같은 너의 머리채에 임금님도 반한다.
6. 오 나의 사랑, 나를 기쁘게 하는 여인아, 그대는 어찌 그리도 아리땁고 고운가?
7. 그대의 늘씬한 몸매는 종려나무 같고, 그대의 가슴은 그 열매 송이 같구나.
8. ‘이 종려나무에 올라가 가지들을 휘어 잡아야지.’ 그대의 가슴은 포도 송이, 그대의 코에서 풍기는 향내는 능금 냄새,
9. 그대의 입은 가장 맛 좋은 포도주
(여자)
잇몸과 입술을 거쳐서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이 포도주를 임에게 드려야지.
10. 나는 임의 것, 임이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
11. 임이여, 가요. 우리 함께 들로 나가요. 나무 숲 속에서 함께 밤을 보내요.
12. 이른 아침에 포도원으로 함께 가요.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이 피었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함께 보러 가요. 거기에서 나의 사랑을 임에게 드리겠어요.
13. 귀나무가 향기를 내뿜어요. 문을 열고 들어오면 온갖 열매 다 있어요. 햇것도 해묵은 것도, 임이여, 내가 임께 드리려고 고이 아껴 둔 것들이라오.
8:1. 아, 임께서 어머니 젖을 함께 빨던 나의 오라버니라면, 내가 밖에서 임을 만나 입맞추어도 아무도 나를 천하게 보지 않으련만,
2. 우리 어머니 집으로 그대를 이끌어들이고, 내가 태어난 어머니의 방으로 데리고 가서, 향기로운 술, 나의 석류즙을 드리련만.
3. 임께서 왼팔로는 나의 머리를 고이시고, 오른팔로는 나를 안아 주시네.
4.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우리가 마음껏 사랑하기까지는 제발, 흔들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아 다오.
어거스틴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목마름과 인간의 목마름이 만나는 곳이다.“
우리가 조금만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꺼워하시는지가 이 노래들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잠시 소원해졌던 관계가 다시 가까워질 때, 신부보다 더 기뻐하는 신랑의 모습을 봅니다.
1-5절을 공동번역은 친구들의 노래로 보았지만,
신부의 속살에 대한 묘사 내용으로 볼 때 신랑인 솔로몬 왕의 말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한 듯합니다.
남자는 시골 농가 출신에 불과한 여자를 귀한 집 딸이라고 부릅니다.
사랑이 가치를 만들었습니다. 사랑이 기쁨을 만들었습니다.
가치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가치 있게 되었습니다.
하찮은 피조물, 흙에 불과한 피조물인 인간을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내어주실 정도로 귀하게 여기시는 이유는
단지 하나, 사랑 때문입니다. 인간을 처음부터 아들로 삼으신 사랑 때문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사랑하면 귀하고, 사랑하면 이뻐 보이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렇게 남자의 완전한 사랑을 확인하면서 여자의 믿음과 사랑도 온전해져 갑니다.
신랑에 대한 술람미 여인의 신뢰와 사랑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깊어져 갑니다.
신랑과 자신의 관계에 대한 고백이 이렇게 진전되어 가고 있습니다.
임은 나의 것, 나는 임의 것. 임은 나리꽃 밭에서 양을 치네(2:16).
-> 나는 임의 것, 임은 나의 것. 임은 나리꽃 밭에서 양을 치네(6:3).
-> 나는 임의 것, 임이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7:10).
임은 나의 것이라는 고백을 앞세우던 자기중심적인 여인이
나는 임의 것이라는 고백을 더 앞세우더니,
마지막에는 나는 임의 것이라는 고백만 내세우는 타자 중심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자기가 가진 것에서 찾지 않고
임에게 소속된 것으로, 임의 사랑을 받는 것에서 찾고 있습니다.
신랑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 하는 사랑이, 신랑에게로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사랑으로 바뀌었습니다.
자존심과 자격지심에 눌려 있던 방어적 심리상태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신뢰와 사랑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항상 신랑이 이끌어야 했던 두 사람의 만남이,
여인이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찾아가는 만남으로 바뀌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이렇게 진전이 되고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여전히 그들을 힘들게 합니다.
두 사람의 신분 격차가 사람들의 입방아 대상입니다.
왜 사랑에 신분의 격차가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여인은 아무런 제약 없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신랑과 마음껏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동생이 형을 챙기는 것을, 오누이가 함께 있는 것을 아무도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듯이
그렇게 둘의 사랑이 순수한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날이 오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 날은 과연 오게 될까요...?
세상에서는 신분의 차이, 빈부의 차이, 재능의 차이로 차별받는 일이 완전히 없어질 수 없습니다.
크든 작든 차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우리는 차이가 있으면서도 차별은 없는 공평과 인애의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 차별을 없앱니다. 사랑하면 누구나 존귀한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의 그런 차별을 인식하지만, 그것을 하늘에 대한 비전(소망)으로 극복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약육강식의 질서를 권력이나 폭력으로 파괴하지 않지만, 그것을 무력화시키는 사랑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유교적 가부장 제도, 부의 세습을 통해 고착화되는 새로운 신분질서,
이런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겨내는 믿음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교회에는 강북과 강남, 전라도와 경상도, 진보와 보수를 버무려서 맛있는 비빔밥으로 만들어내는 힘이 마땅히 있습니다.
적어도 교회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힘쓰는 공동체입니다.
이런 공동체, 이런 사랑의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아는 것, 깨닫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 가진 사람은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차별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아무 조건 없이 거저 줄 수 있습니다.
우리를 완전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 주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사랑 앞에 모든 것이 예뻐지는, 그런 사랑 하게 해 주세요.
그래서 내게 참으로 가치 있고 존귀한 것이 많이 생기게 해 주세요.
그 존귀한 것과 가치 있는 것들로 인해 행복해지게 해 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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