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성일기

자족함, 기뻐함, 풍성함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5. 31. 10:59

본문 : 빌립보서 4장 10-23절

 

환경과 상황에 관계없이 자족한다는 바울의 고백은 삶의 기쁨으로 이어진다.

감옥에서도 기뻐하고, 궁핍한 가운데서도 만족하는 바울의 이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바울은 이런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한다. 그냥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서 배웠을까?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다.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자족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다.

자족함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람의 노력으로, 수양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바울의 괴로움에 동참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향하여 잘하였다고 칭찬한다.

바울의 괴로움이 무엇인가?

복음과 십자가의 증인으로 살다가, 십자가와 복음을 전하다가 당하는 고난이 아니던가?

이 복음 전파에 동참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감사하고 

이 영광스러운 일에  함께 동참함을 인하여 기뻐하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동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물론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준 후원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는다.

이 모든 빌립보 성도들의 기도와 물질적 후원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제물이다.

이것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왜냐하면 복음 전파에 아름답게 쓰여진 것들이여서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히 채워주실 것을 기도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문안 인사로 빌립보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하길 기도한다.

 

이런 모습이 진정한 믿음의 동력자, 동반자 아닌가?

난 얼마나 이런 진실한 믿음의 동반자를 두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바울 사도가 따라 갔고

사도가 걸어갔던 길을 우리도 따라 걸어간다.

선한 본을 보여준 사도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나 또한 다음 세대들이 본받고 뒤따라서 걷을 수 있는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가능하다.

오늘도 새벽을 깨우며 주님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집중하며 걷기로 다짐한다.

비우자, 내려놓자, 다짐 또 다짐한다.

내가 욺켜쥐고 있는 생각과 마음들, 물질적인 것들, 세상적인 것들을 ...

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못 박고, 죽기를 원한다.

진실로 거듭나고 새로워져 주님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삶이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자족함도 기쁨도 풍성함도 다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언제 주어지는가?

사랑하는 주님 안에 있을 때, 주님과 동행할 때, 주의 일에 헌신할 때이다.

십자가와 복음의 증인으로 살고, 복음과 십자가만 전하다가 주님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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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하신 주 안에서]

아낌없이 바울을 후원하며 복음의 역사에 참여한 빌립보 성도의 헌신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쓸 것도 자신의 부요하심에 어울리게 넉넉히 채워주실 것이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마음을 평강으로 지켜주시듯,

계산하지 않는 사랑에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는 셈으로 갚아주셔서

바울이 경험하고 있는 풍요로움을 그들도 함께 누리게 하실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헌신과 돌봄과 나눔을 기쁨이 되고 예배가 되게 하실 것이다.

 

바울은 편지 끝에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준 헌금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바울에게 헌금보다 더 반가운 것은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복음을 위해 협력하고 

바울의 곤경을 자기 일처럼 여기며 동참하는 그들의  마음이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고,

자기 안위보다 성도를 먼저 생각했던 바울의 마음이었다.

이 마음을 품으면 많든 적든 복음의 진보와 지체의 안녕을 위해 내 것을 기쁘게 나누기 마련이다.

 

바울은 곤궁하든 넉넉하든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상황에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채워지든 부족하든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수용할 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비결은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돈이 아니라 주를 의지하는 것이다.

삶은 내가 만족할 만큼 스스로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

'감사와 자족'의 삶은 배금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절실한 '복음에 합당한 삶'이다.

 

빌립보 교회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바울에게서 복음을 받은 이후부터 

바울이 옥에 갇혀 있는 지금까지 바울의 사역을 아낌없이 후원했다.

이것은 사도에게 큰 위안과 사랑의 징표였고, 복음 사역에 진보를 가져온 밑거름이었으며,

하나님께서 기브게 받으실 향기로운 제물이었다.

내 마음 씀씀이에는 이웃 사랑과 복음에 참여하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가?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항상 하실 수 있으니 오늘도 능하신 주 안에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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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구원의 길, '주 안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그와 함께 '주 안에' 있음을 확인하고 크게 기뻐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빌립보 교회가 그를 위해 헌금을 보내온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뻐하는 이유가 다릅니다,

 

물질이 부족하던 차에 마침 그의 빈곤을 채워주는 도움의 손길에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빌립보 교회가 복음에 함께 참여한 것 때문에 기뻐한 것입니다.

 

13절 말씀을 긍정적인 사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장려하는 구절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물론 넓게 보아서 긍정적, 적극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전체 문맥상으로 보면 수동적인 긍정의 뜻을 가집니다.

'할 수 있느니라'는 적극적으로 뭔가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의미라기보다 수동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뚯입니다.

복음에 대한 기쁨, 복음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형제들로 인한 기쁨이 그렇게 만들어 준다는 뜻입니다.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에 반응하고 있는 것,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사랑의 열매가 풍성하게 된 것이 기쁜 것입니다.

함께 십자가를 따르고 있는 것이 기쁜 것입니다.

그에게 도움이 되고 그의 편이 되어 주어서 기쁜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가 자기와 함께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 기쁜 것입니다.

 

14,15절에 '참여'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이는 1:5절에 언급된 '참여'와 맥을 같이하는 '참여'입니다.

복음을 향하여, 복음을 위하여 함께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한 이라는 표현에 사용된 '에이스'라는 전치사는 목적과 방향을 나타내는 전치사입니다.

'...안에서'의 뜻을 가집니다.

복음을 향하여, 그리스도를 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함게 나아가는 것이 

복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해서 기쁘다고 했지만,

단순히 자기의 개인적인 어려움을 동정하였기에 기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의 어려움은 복음을 사랑하기에 겪는 어려움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그 어려움에 동참하고 있기에 기뿐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복음에 대한 사랑으로 바울과 한 마음이 되었음을 확인하였기에 기쁜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 곧 한 몸 공동체인 교회임을 확인하였기에 기쁜 것입니다.

 

서로 다른 인격들이 어느 하나의 인격이 말살되거나 무시되지 않고도 하나가 되는 비결은 '주 안에'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 되는 비결은, 참 사랑이요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같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안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그 사랑을 먹고 마시는 가운데 그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에 전염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됨으로써 서로 다른 인격체인 우리가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직 멀어보이지만,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가 가까워지는 만큼, 반드시 우리도 서로 가까워집니다

우리 가운데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온전히 성취됩니다.

 

이런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런 공동체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거합니다.

만물을 충만하게 거하시는 이의 충만함이 부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거기에 영생을 명하십니다. 

 

'주 안에 '있는 것,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 이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온전한 사랑의 나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누리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주님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확인해서 기쁘기보다,

우리가 서로를 돕고 서로를 위해 염려해주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기뻐하기보다,

우리가 동일한 복음을 붙들고 있음이 기쁘고, 동일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음에 기뻐하게 하옵소서,

서로 가까워진 것 때문에 기뻐하기보다, 함께 예수님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음을 기뻫게 하옵소서.

푯대를 향하여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형제를 , 자매를  바라보며 즐거워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자기'를 바라보지도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함게 바라보는 구원의 길에 동참하고 있음을 즐거워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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