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무엘하 19장 16~39절
반란은 진압이 되고 다윗 왕은 예루살렘 왕궁으로 회군한다.
성경은 제일 먼저 사울왕의 지파, 바후림에 사는 베냐민 사람 시므이가
나와 엎드려 다윗이 피신할 때 오아을 저주했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조아린다.
그 뒤에 사울 지방의 종 시바가 자식들과 종들과 함게 나아 온다.
그리고 초췌한 모습으로 므비보셋이 나와 왕을 영접한다.
마지막으로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나아와 함게 강을 건너고 왕을 배웅한다.
오늘 4명의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한다.
먼저 시므이는 다윗 왕이 피신할 때는 그를 향해 돌을 던지며 저주하더니
이제 상황이 역전되어 다시 왕권을 회복하자 가장 먼저 나아와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다.
사람의 한치 앞도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살아가면서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자주 본다.
잘나가고 흥할 때는 가가이 하다가도 어렵고 형편이 좋지 않을 때는 멀리하고 버리며
심지어 흉을 보고 험담을 하기도 하지 않는가...
두번째 시바는 현실주의자적이고 기회주의자이다.
이 형국에 자신만이 왕에게 충성하는 자이고 므비보셋에게 누명을 쓰도록 거짓을 말하는 자이다.
우리 주변에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을 바르게 대하지 않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번째 미스보셋은 좀 억울한 면이 있다.
자신이 처한 신체적 장애로 인한 행동의 제한을 변명 아닌 사실을 아뢰고
왕의 처분 만을 기다리는 면이 있다.
상대방이 나의 형편을 알아주겠지 하고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편과 상황을 사실대로 정직하게 알리는 것이 오해를 사지 않게하는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바르실래이다.
그는 나이가 80세인데도 몸소 왕의 피난에 물질로 공궤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람은 어려울 때 받는 도움을 잊을 수 없다.
다윗도 바르실래와 왕궁으로 동행하자고 청한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겸손히 사양하고 대신 아들 김합을 부탁한다.
이제 내 나이 진갑도 지냈다.
돌아보면 내가 알고 지낸 수천명의 사람들 중에 바르실래와 같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돌아본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다.
적을 만들지는 않았으나 이런 우정을 지닌 친구를 두지 못했으니 말이다.
젊은 날 받은 상처로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왔다.
인간에게 무엇을 기대하거나 의지하거나 하지 않았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로 실망과 상처를 주고 받는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그래도 요즘 나이들면서 이런 친구 몇 명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내가 선택한 인생이기에 뭐라고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아쉽다.
그리고 조금은 후회한다.
인간이 신 한분만으로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먼 인생 길에 함께 동행할 좋은 동반자가 있다면 아름다울 것이다.
그래서 딸이나 사위에게 그리고 손자들에게는 나의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와 여러 만남 중에서
내 주변에 바르실래와 같은 사람을 찾고 있지만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바르실래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아침 묵상이었다.
주변인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는 사람일까?
누군가의좋은친구이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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