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글쓰기

신년 특새 : 개척자들의 발자국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3. 1. 2. 11:11

1일 차(월요일)

제목 :  '믿음'의 개척자로 살아가라.

본문 :창 12장 1~4절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 같은 곳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사람들을 개척자

PRONTEER 라고 부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가?

현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삶에서 더 실재적이고 중요한 것은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믿음이다. 

믿음은 추상적이고 믿음을 갖는 것도 믿음으로 사는 것도 쉽지 않다.

믿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다.

 

노아도 한 번도 큰 비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지만 배를 만들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기도 응답, 천국, 영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아브라함에게 ,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고향과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가 살았던 갈대아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이고

나중에 그가 정착한 땅, 가나안 까지는 1500km에 이르는 긴 여정이다. 

 

 <야살의 책>의 책을 읽으면 왜 하나님니 아브람에게 나타나셨는지 

그리고 아브람이 선뜻 갈대아 우르를 더날 수 있었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창세게 11장은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기 귀하여 하란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자녀 아브람과 그의 아내 사라, 나홀과 그의 아내 밀가, 하란은 롯을 낳고 죽었으나 밀가와 이스가를 낳았다.

이 밀가가 나홀의 아내이다.  

성경은 데라가 우르를 떠난 이유에 대하여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하란에 도착했는데, 창세기 12장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으로 가라고 하신다. 

이 시간적이 차이와 하나님이 어디서 아브람을 부르셨는지 궁금하다. 

그보다 먼저 과연 당시의 아브람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을까?

모르는 신의 명령 앞에서 어떻게 이런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왜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펼칠 수가 없으셨을까?

가나안이 갈대아 우르보다 우상을 덜 섬겼다는 증거는 없다. 

당시 문명이 더 발달한 곳에서 덜 발달한 곳, 변방으로 부름심 외 무슨 이유를 찾을 수가 있을까?

가나안이 동.서 문명이 만나고 교류가 왕성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가나안으로 부르셨을까?

가나안을 택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어떤것인지 궁금하다. 

왜 가나안이어야만 했을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으로의 부르심이다. 명령이다. 

사람은 늘 친숙하고 편하고 안전한 곳을 선호한다.

새로운 곳으로의 이주는 늘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오게 만든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 강을 따라 올라가고,

하란에서 가나안 세겜으로의 이동도 강을 따라서 이동한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의 직업과 하란에서 직업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가나안에서 아브람의 삶의 흔적은 가축을 기르는 유목민의 삶이다. 

우리는 직장과 주거지 때문에 이사를 다니는 것이 가장 흔한 일이다. 

그러나 먼 타지로의 이주는 당시 고대근동의 상황에서 결코 흔한 일은 아니다.

당시 씨족 사회에서 낯선 곳으로의 이주는 더더욱이나 위험이 뒤따르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람의 결단과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본다.

성경은 이를 아브람의 믿음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갈바를 알지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말씀에 의지하여 나아간다.

그러나 당시의 아브람의 믿음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았다.

성경은 여러 사건들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에 아브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위험을 무릅쓰고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을 믿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어떤 책은 자식이 없었던 그들에게 자녀의 축복에 대한 약속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 

당시 문화에서 자녀가 없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난 아브람의 순종은 

말씀하시는 분,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든 맥도날드 : 순종이야 말로 모든 문을 여는 열쇠이다.  

 

이 낯선 땅으로 믿음의 순례의 길을 시작한 아브람이 있었기에

그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일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창조 이후에 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더 구체적인 구역 역사가 펼쳐진다. 

 

길이요 진리이시며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 앞에 순종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오시는 분을 보고 주님이 원하시면 자기도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요청할 때

예수님이 오라 하시매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었다.  

 

고든 맥도날드 : 

 

난 새벽에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100% 순도의 믿음, 믿고 신뢰하며 전혀 의심하지 않는 믿음,

구원에 합당한 믿음,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믿음, 변치 않는 신실한 믿음

교회의 어른으로 나를 닮을 수 있는 믿음, 

성경에 나타난 놀라운 믿음의 사람들 처럼 나도 그런 큰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다. 

 

2일차 (화요일)

본문 : 여호수아 14장 1~12절

제목 : '비전' 의 개척자로 살아가라.

 

알람에 눈을 떴는데, 몸이 많이 찌부둥하고 개운치 않다.

아내도 인서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예배당을 향해 차를 운전했다.

 

자녀는 부모를 닮는다.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

 

인간에게 꿈과 비전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요즘 다음 세대들이 꿈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꿈을 꿀 수없는 상황 때문에 꿈이 없을 수도 있고

아예 꿈을 꾸지 않는 젊은이들도 있을 것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구체적인 비전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비전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이루고 어던 사람이 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비전은 그런 구체적인 목표보다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주시는 거룩한 뜻이다.

빌립보서 2: 13 :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오늘 본문은 가나안 정복 전쟁 중 갈렙이 헤브론을 정복하겠다고 여호수아에게 요청하는 본문이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정탐을 다녀 온 뒤 열명의 부정적 보고 후에 

슬퍼하고 낙담하며 절망하고 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이 믿음의 보고를 하지만 묵살되고 말았다.

그로 인한 38년의 긴 광야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 중에 있다.

갈렙은 가나안 정복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험지 헤브론을 두고

85세 나이에도 직접 싸워서 그 땅을 정복하겠다고 여호수아의 허락을 구하고 있다.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꿈이 이루어질 때 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슴에 품고 끊없이 노력하게 된다.

갈렙은 어떻게 그 꿈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확신이 있었다.

애굽과 홍해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기적을 보았던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신뢰를 가질 수 있었고,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언약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에 대한 믿음과 확신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이

평생 그 꿈을 가슴에 안고 기다리며 노력하며 살아왔고

이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현실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목표가 없으면 부패하고 타락한다.

잠언에도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삶에 힘과 생기를 주고, 보람을 주고, 의미를 부여하고, 소망을 주는 것이 목표요 꿈인 것이다.

큰 꿈과 높은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자.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하여 온 힘을 다해 전진하자.

 

역대상에 나오는 본문에 갈렙의 후손들이 ~~~의 아버지 *** 라고 거듭 언급된다.

원문에서 ~~~의 아버지란 육신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명을 가리킨다고 한다.

즉 여기에 언급되는 사람들은

황무지와 같았던 땅을 정복하고 개간하여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든 개척자라는 뜻이다.

그들이 누군인가!  비전의 사람 갈렙의 후손들이 아닌가.

그 아버지 그 아들이었다.

갈렙이 비전을 ㄲ굼꾸고 살았기에 자녀들도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줄 것인가?

믿음과 비전을 그들에게 물려주어서 그들도 자신들처럼

믿음의 사람, 비전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방황하는 자가 많다.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솝 우화에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있다.

교훈은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에 있다.

토끼는 거북이를 바라보았기에 잠을 잤고, (비교)

거북이는 결승선을 바라보았기에 느리고 더디어도 열심히 걸었다.

목표도 변하고, 인기 있는 직종도 변한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비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가지고 갈 비전 말이다.

 

 

3 일 차

본문 : 열왕기하 22 :14~20

제목 : '말씀'의 개척자로 살아가라.

 

성경을 소유하고 있는 것, 읽는 것 그리고 행하는 것의 중요성은 다르다.

성경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말씀으로 살아본 경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오늘 설교 서두에 "자극과 반응" 이라는 말이 기억이 난다.

죽은 자는 자극에 반응이 없다. 

살아 있는 영적 반응은 말씀을 들을 때 애통하거나 다짐과 행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같은 본문으로 하는 설교를 여러 번 듣게 된다.

그럴 때 내가 알고 있다는 인식때문에 설교에 대한 반응은 크지 않다.

신선함이 덜하다고나 할까?

여행도 그렇지 않은가? 처음 가본 곳에서 느끼는 감동이나 기쁨이 크지

외국도 자꾸 가다보면 처음 만큼은 감흥은 크지 않는것 같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성경을 또 읽고 또 읽으면서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걸까?

 

오늘 본문은 유다 왕 요시야에 대한 이야기다.

요시야의 가장 큰 업적은 성전 보수 중 율법 책을 발견한 것이다. 

성전 재건을 하다가 제사장 힐기야가 율법 책을 발견하고, 서기관 사반에게 전달한다.

사반이 요시야 왕 앞에서 율법 책을 낭독할 때 

요시야  왕은 가슴을 치고 옷(마음)을 찢으며 통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두번째로 중요한 업적은 율법책을 읽을 때 들으면서 보인 반응이다.

남 유다의 마지막 종교 개혁가로 불려지는 그는

가장 타락하고 우상 숭배에 열심이었던 므낫세의 아들이다.

이 므낫세의 타락으로 남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 당하는 원인을 제공한 왕이다. 

그러나 그는 이 율법 책을 가까이 하면서 율법을 따라 

부패한 나라를,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평생을 힘쓰고 노력했다. 

 

딱딱한 것은 반응하지 않는다. 마음에 찔림이 없는 자들이다. 마음이 완악하고 강팍한 자들이다.

마음이 부드러워야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인 반응을 한다.

눈물, 겸비함, 무릎 굻음 등등

NIV번역 : heart wass responsive /마음이 반응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부드러워지는가?

에스겔 36:26 :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엣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11:2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결코 되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 및 삶의 모습이 정말 바뀌지 않음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성령이 역사 하셔서 우리 안에 새 영을 부어주실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날마다 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충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레마의 말씀이 들려져야,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슴을 순전하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번 특새로 마음이 부드러워지기를 바란다.

 

아멘은 동의합니다. 그렇게 살겠습니다. 라는 뜻이다.

우리의 문제는 말씀에 반응하지 않을 때이다.

시편 119:1-2   :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3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자. 그 말씀이 레마의 말씀으로 나에게 들려지게 하자.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반응하여 삶으로 살아내자.

이것이 신앙의 성숙이 아니겠는가?

말씀과 성령의 역사 없이, 일년의 계획과 다짐이 온전히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먼저 말씀 앞에 엎드리고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가자. 

 

에브리데이 스터디바이블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일고 연구하며 실천하는 한 해 되기를 소망한다.

 

4일 차 (목요일)

본문 : 여호수아 20장 5~13절

제목 : "기도"의 개척자로 살아가라 

 

코로나 팬데믹 시대가 3년이 되어간다.

바이러스로 인한 생명의 위험과 어려움, 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코로나 블루로 인한 관계의 어려움 등

많은 어려움들이 함꺼번에  몰려왔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려운 들이 연달아 발생하여 더욱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오늘 이야기는 남유다 여호사밧의 왕 때 모압, 암몬, 마온 연합군이 유다를 침략해 온 상황이다. 

1절은 '그 후에' 라는 말로 시작한다.

19장에는 여호사밧 왕의 종교개혁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즉 종교개혁을 하여 신앙을 회복을 하고 열심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연합군이 처들어 온 상황이다.

우리도 그렇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부흥회 등 은혜를 받은 뒤에

고난이 찾아오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기억할 것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임을 기억하자.

 

문제는 어려움이 찾아올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하는 것이다.

즉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는 영적 자세가 중요하다.

어려운 일이 찾아오면 사람이 보이는 첫 반응은 두려움이다.

3절에 믿음의 왕이라고 한 여호사밧 왕도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려워하여 주저하거나 우왕좌왕하지 않고 그는 재빨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간구한다. 또한 온 유다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에 동참할 것을 지시한다.  

12절, "~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로 알지 못하고, ~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라고 간구한다.

 

해바라기(sunflower) 처럼 주바라기가 되는 것이다.

몽골인은 시력이 4.0이고, 태국 모렌족은 7.0 이라고 한다. 독수리과 사람들

시력은 사물을 정확히 분별하는 능력이다.

현대인들은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 시력교정수술(라식, 라셋)을 받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력이 아니라 시선이다. 

시력 교정이 아니라 시선 교정이 필요하다. 

믿음으로 결단할 때 시선이 교정된다.

시선이 교정되면 문제에 집중하기 보다 하나님에을 집중하여 바라보게 된다.

"예레미야 33장 3절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기대하고 기도하라.

 

길이 없다고 절망할 때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곧 길이 되시기 때문이다.

 

오늘 사건의 결과는 남유다를 공격한 연합군이 서로 싸우게 하심으로 승리케 하셨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골짜기 이름이 바뀌었다. 

전쟁이 있었던 엔게디브라가(찬양)로 바뀌었다.

 

기도할 때 내 가정이, 직장이, 교회가, 나라가 엔게디에서 브라가가 될 것이다.

시편 43편 5절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문제와 어려움과 고난을 만날 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주만 바라보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다. 

              

                

                                                    

'2023년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웅  (0) 2023.01.22
봉사의 정신  (0) 2023.01.20
감람유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0) 2023.01.20
나는peace maker인가, trouble maker인가?  (0) 2023.01.18
버킷 리스트  (0) 2023.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