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글쓰기

죽음의 발자국 소리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3. 4. 1. 09:46

밤 10시경 동강병원 병원장인 후배 의사로 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성 **선생님이 조금 전에 운명하셨습니다.

'아!' 외마디 외침이 튀어 나왔다.

 

고인은 대학 1년 선배다. 학창 시절에는 친분은 없었다.

그는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제의대 1회 졸업생으로 입학했다.

부산백병원에서 외과 수련을 받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는지 대학 시절에 보건사회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았다.

군복무를 마치고 동강병원 응급센터에서 공중보건장학의로 5년 의무복무를 했다.

그리고 몇년 후에 개원을 하였고, 몇년 후에는 항사랑 병원을 신축하고 

최근 몇년 전에는 요양병원을 인수하고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공중장학의 신분인 나도 제대 말년에 선배에게  진로 절차를 물으러 전화를 걸었다가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도 동강병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양** 비뇨기과 선배, 양**이비인후과 의사와 승용차 한대로 함께 대학원 석사 과정을 다니던 기억도 있다.

선배가 내가 살 아파트를 계약해주기도 했고, 선배를 따라 골프를 치러 다니기도 했다. 

 

그는 수술 테크닉도 좋아 수술을 참 잘 하던 외과의사였다.

하루에도 탈장 수술을 10명 이상 하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가정에는 충실하지 못했다. 여자 문제로 가정과 불화하였고 별거하듯 하였으며

다른 여자와 동거한 것으로 안다. 

지금 같이 생활했던 여인은 또 다른 여자라고 한다. 

외로웠을까? 경제적인 여유가 가져온 일탈이었을까? 

물어보지 않았고 자세하게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교제가 많지 않은 분이셨다. 동문회에서 가끔 얼굴을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3년 전인가 대장암으로 서울 아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1년 전에는 간 등에 전이 되어 울산대병원에서 친구인 나교수에게 재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었다.

그리고 늑막에 물이 찬다고 나에게 몇번 전화해서 자문을 구하기 위해 통화를 했었다.

 

어제 들은 이야기이지만 복수가 많이 차서 동강병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이미 온 복부에 전이가 되어 terminal state 였음을 본인이 알고 삶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요양병원에 입원해서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을 조절해 가며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제 저녁 화장실에서 구토와 함께 의식을 잃고 운명하였다고 들었다. 

최근 3/19일 동료 의사가 힘들다고 병원을 그만둔다고 하여 다른 의사를 채용하는데

그분의 인적 상황을 물어보려고 전화했었다.

그러면서 같이 오랫동안 같이 일해던 대학동기이자 동료인 의사가 3월 말로 힘들어서 사직한다고 하자

매우 섭섭해하며  참 냉정하다고 하신 말이 뇌리에 오래 남는다.  

그래도 이렇게 심각한지는 몰랐다. 

그 통화가 고인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었다. 

수술 후 몇 번 전화만 하고 직접 찾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를 울산에 오게 한 장본인이고 여러 인연과 추억이 있는 분인데 ...

 

올해 들어 주변의 사람이 세 명이나 운명을 달리했다.

나이는 40대, 50대, 60대 초반, 그중에 두명이 의사이다. 

대학 시절 철학 시간에 들djT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죽음은 동심원처럼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들이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정밀 실감이 난다. 조부모, 부모, 형제, 동료를 거쳐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죽는 것에 순서는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 세상을 떠난다. 

 

안따갑다. 삶을 어떤 모습으로든 치열하게 살다가 간 선배이다. 

좀더 더불어 살지 못하고 평탄하게 살지 못하고 갔다. 

개인의 삶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인생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생각하면 

내 인생이 나만의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땅에서 내가 알고 지낸 한 인생이 참 허망하게 쓰러져 갔다.

마음이 무겁다. 

하늘이 내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잔뜩 흐려있다. 

인생이 무엇인가?

왜 사는가? 

 

토요일 저녁 문상을 다녀왔다. 

고인의 마지막을 지킨 자와 시신을 지키는 자가 달랐다. 

수년 전 부터 별거했다고 들은 본처와 가족들이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서글펐다.

고인은 죽음에 임박해서도 병원으로 고민하고 걱정했던 것 같다.

대장암 재발로 힘든 상태면서도 병우너에 매달리는 모습이라니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욕으로 요양병원을 인수하고 대출 등으로 스트레스 받지 않았을까 싶다.

누구를 위하여 ...

상주인 부인은 고인이 암투병으로 임들었던 것은 이야기하기 보다

병원이 어떻게 잘 운영될까만 생각하고 있었다.

고인에 대한 애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문상객 중에 지인은 아무도 없다.

장례식장 입구에는 학교 동문 등 조화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산길을 운전하고 내려오는데 마음이 답답하고 인생의 묵상함과 허무함이 밀려온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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