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열왕기상 2장 13-25절
실패한 반란으로 끝날 것 같았던 아도니야의 사건은
왕권에 대한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계책을 모색하다가
다윗왕의 마지막 후궁인 아비삭을 요청한다.
왕의 후궁을 요청한다는 것은 왕권을 찬탈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는 눈치를 채지 못한다.
아도니야의 작은 요청이라고 다가오자
혹시나 아도니야가 야심을 품고 쿠테타라고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하다가
첩을 달라고 하니 그 정도는 해줄수 있고, 그것으로 야심을 잠재울 수 있다면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도니야의 청을 받아들여 솔로몬 왕에게 나아가 아도니야의 청을 전달한다.
역시 솔로몬이다. 젊은 왕이었지만 아도니야의 의도와 계략을 단번에 꽤뚫어본다.
결국 그는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아도니아도 자신이 왕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인간적인 조건들로 보변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솔로몬이 왕이 된것은 오직 여호와의 뜻이었기 때문이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삭을 아내로 달라고 하고 왕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도전하는 행위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지 알면서도 다른 행동을 할 때가 무지기수다.
아비삭처럼 사탄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다.
솔로몬처럼 상황을 정확히 보는 안목과 판단력 그리고 악을 처단하는 과감한 행동이 필요하다.
이 본문에 대해 깊이 묵상한 적이 별로 없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그것이 불법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아도니야가 1차 역모에서 행동을 멈추었더라면 생명을 유지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행동이다. 무엇을 하든지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
인간적인 관계나 정에 이끌려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협조하는 경유가 많다.
밧세바의 행동 처럼 보증이 가져다 준 엄청난 피해를 목격한다. 패가망신하고 만다.
불의와 타협하는 모습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적당히 협조하고 타협하고 눈감아 주는 일은 없는지 돌아본다.
불법에는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단호해야 한다. 즉각적이어야 한다.
솔로몬이 왜 왕이 되었는지, 왜 그를 지혜의 왕으로 부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죄나 불법, 잘못된 습관 등에 미지근하게 반응하고 미루다가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근묵자흑 근적자적]이라는 한자 숙어가 젊은 날 나를 지켜주었다.
오늘 본문에서 아비삭의 존재는 무엇인가?
협상 카드로 전략한 물건 취급을 당하고 있다.
아무도 그의 의견을 묻지 않는다.
압살롬의 반역 때도 다윗의 10명의 후궁들이 정략적으로 이용을 당하고
백주대낯에 압살롬과 옥에서서 동침을 했다.
그리고 반역이 끝난 뒤에는 다윗 왕에게 나아가지 못하고 후원에서만 여생을 보내야 했다.
그녀들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억울하게 성폭행을 당하고, 불공평한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오늘도 노동자, 피고용인, 약자, 이주민들의 삶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있을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도 되심을 기억해야 한다.
거룩함에는 불법이, 악이 공존할 수 없다. 빛이 어둠과 공존할 수 없듯이 말이다.
오늘 본문이 여러가지를 묵상하게 한다.
아도니야, 밧세바, 솔로몬, 아비삭의 삶과 생각 속으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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