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욥기 31장 24-40절
어제 읽은 본문을 다시 읽는다.
놓친 구절이 있었다.
욥은 눈, 발, 손을 주의했다고 말한다.
악한 곳에 시선과 마음을 두지 않았고, 악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으며, 손으로 범죄하지 않았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주의하며 살았다는 말이다.
시편 1편의 복 있는 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몸소 말씀대로 살았다는 말이다.
욥은 종들을 대하면서 당시에 노예나 종들을
재산으로 물건 취급하던 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평등한 인간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로, 인격체로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당시에 이런 의식을 가질 수 있었을까? 참으로 놀랍다.
욥은 젊은 날부터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면서 살았고
이웃의 재산과 소유권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살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재앙과 위엄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즉 코람데오, 하나님 면전의식으로 매일 매 순간을 살았다는 말이다.
욥은 재를 뒤집어 쓰고 앉아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며
아무리 생각해봐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아무리 따져 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정직한 삶, 의로운 삶을 살아왔기에 지금 고난이 억울하다. 답답하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신하기에 더하다.
이 정도 삶을 살았다면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께 항의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라면 따져 묻고 싶다. 아니 욥보다 더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항의하지 않았을가?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의 작은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의 지식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욥기서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게 감사하다.
더 크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세상은 운행되고 있음을 알게 하시니 말이다.
겸허히 말씀을 읽으면서 욥의 삶을 묵상해본다.
나는 욥을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을까?
하나님이 칭찬하신 욥의 삶이 어느 정도였는지 진지하게 깊이 살펴보고 연구하지 않았었다.
욥의 친구들도 피상적으로 욥을 바라보았고
단순히 인과응보, 보응의 원리라는 세상 잣대로 판단한 것이라고 본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이, 누군가의 문제를 이해한다는 것이
누군가의 고통과 고난과 슬픔에 공감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본다.
욥의 합당한 변론이지만
크신 하나님의 계획 하심과 섭리 안에서만
이 고난이 설명되고 이해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처럼 살고 싶다.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삶을 살고 싶다.
더불어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깨닫고 이에 순종하는 삶이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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