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신명기 2장 26-37절
세일에 거주하는 에서 자손과 아르에 거주하는 모압 자손의 땅을 지나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아모리 족속의 땅을 통과해야 했다.
모세는 헤스본에 있는 아모리 왕 시혼에게 평화롭게 지나가기를 요청한다.
필요한 양식이나 물은 돈을 받고 팔고,
에서와 모압 족속처럼 하여주기를 원하였으나 왕 시혼은 거절하고
온 군대와 함께 전쟁을 치르러 나온다.
하나님은 애굽 왕 바로처럼 그의 마음과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다.
이는 그를 이스라엘에게 넘기시려고 하신 일이다.
이제는 그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넘기니, 가서 차지하여 기업으로 삼으라고 하신다.
헤스본 왕 시혼과 야하스에서 싸워 그들의 아들들과 모든 백성들을 치고,
성읍을 점령하고 남녀와 유아를 진멸하였으며, 다만 가축과 성읍에서 탈취한 것만 소유로 삼았다.
아르논 골짜기에서 길르앗까지 점령하였으나
"오직 암몬 족속의 땅 얍복 강 가와 산지에 있는 성읍들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가기를 금하신 모든 곳은 네가 가까이 하지 못하였느니라."
무기도 변변찮고 전쟁의 경험도 없으며 훈련도 되지 않은 군사들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 이어 더 큰 군사력과 나라를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이 전쟁의 승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서 벌어진 정복 전쟁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엄청난 자신감으로 사기가 충천했을 것이다.
전쟁이 자신들의 능력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약속도 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대적들도 변함이 없다. 우리만 변하면 된다.
불신에서 믿음으로,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말이다.
모세의 행동은 도전을 준다.
먼저 화친을 제안한다. 처음부터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 뜻이라고 막무가내로 무리하게 무례하게 행동하지는 않았는지,
하나님의 뜻이라며 이웃을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인정사정 없이 판단하고 정죄하지는 않았는지 회개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나의 뜻과 계획보다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먼저 물어야 한다.
하나님 뜻과 상관없이 싸운 전쟁은 아모리 사람들에게 패했지만,
하나님 뜻에 따라서 싸운 전쟁은 모두 이겼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면 하나님이 이루시지만,
하나님의 뜻과 반대된다면 하나님을 상대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보다 앞서지 않겠다고 늘 노래한다.
하지만 진즉 살아가면서 나의 뜻이 우선시되고 앞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함을 회개한다.
죄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100% 나를 비우고
오로지 내주하시는 성령님만을 따라 살아가기가 정말 쉽지 않다.
다 내려왔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자신의 마음의 왕좌에 올라 앉아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성령이여 도와주소서.
주님만이 나의 주(Load) 이심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며 살게 도와 주소서.
아모리 사람 시혼의 땅은 점령했지만, 하나님이 금하신 암몬의 땅은 가까이 하지 않았다.
"너희가 밟는 모든 곳을 모두 주실 것이다.(수 1:3)" 는 약속은
땅을 밟기만 하면 밟은 만큼 주시겠다는 뜻은 아니다.
'어디든'이 아니라 '정해진' 곳이 있다.
아무리 힘이 있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신 땅은 절대로 넘봐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에는 절제와 양보가 따를 수 밖에 없다.
욕심과 사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살기를 결단한다.
오늘 헤스본 왕 시혼을 이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과 태도가
한결 같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성경을 통해 그렇지 못했던 것을 우리는 안다.
신실하신 하나님, 내 삶도 신실하고 한결같기를 기도합니다.
'2024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계명 (0) | 2024.01.12 |
---|---|
믿음은 들음에서 (1) | 2024.01.11 |
누군가를 믿는 다는 것 (0) | 2024.01.10 |
듣고 실천하라 (0) | 2024.01.08 |
다시, 가나안으로 (1) | 2024.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