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글쓰기

죽음 앞에서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3. 12. 09:41

5시 30분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발인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아내도 부시럭 대더니 일어나 준비를 한다.

밤새 비가 내렸나보다. 

비는 그쳤으나 안개가 자욱하다. 

차를 몰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광고에는 6시 30분이라 여유를 부렸는데 시장에 들어가니 벌써 예배가 시작되었다.

6시 10분으로 변경이 되었었나 보다.

장로님의 기도가 끝나고 담임 목사의 말씀이 이어진다.

몇 가지 고인에 대한 회고와 사망이 고인을 엄습하였지만

그러나 우리의 소망과 믿음은 고인이 오늘 천국에 부활체로 입성하시리라는 것이다.

 

운구를 도왔다. 

화장과 하관까지는 함께할 수 없어서 유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을 한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늘은 개이고 태양은 찬란히 빛난다.

봄 기운이 완연하다. 

매화 꽃이 환하게 피고 동백꽃 붉은 몽오리가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죽음 앞에선 인간은 한없이 연약하고 무기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듯하다. 

인생을 돌아본다.

살아 갈 날들을 생각해 본다. 

나그네 인생길 얼마 만큼 걸어왔을까? 얼마나 남아 있을까?

내 죽음 앞에서 함께해 줄 사람은 몇이나 되며

내 죽음 앞에서 울어줄 사람 몇 명이나 있을까?

내 장례 예배에 참석할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내가 참석한 장례 예배만도 꽤 많이 참석했던 것 같은데 ... 

그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함께한다고 하지만 어찌보면 홀로 인생길이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붙들고 살아간다.

사랑하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할 날을 간절히 소망한다.

이 땅에서 아웅다웅하며 살아갈 일이 아니다.

짧은 시간을 아끼며 소중하게 다루며 행복하게 살아야지 

다 부질없는 일들에 시간과 마음을 빼앗기지 말자. 

죽음 앞에서 선 인간은 경건하다. 정직하다.

무엇이든 다 내려놓을 수 있다. 아니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오늘도 고 이석기 성도(75세)를 먼저 천국으로 환송했다. 

딸을 몇 주 전에 먼저 보내신 분이다.

자신도 그 딸을 따라서 떠나셨다. 

두 분 다 대장암으로 ....

줄 초상이라니 ...

연거푸 장례를 집례해야 하는 목사와 성도들 그리고 유족들의 마음이 한없이 무너진다. 

이 땅에는 부인만 홀로 남아 있고, 아들 내외는 베트남 선교지에 있다. 

작년에는 영정 사진보다 여권 사진을 찍고 선교지에 다녀오셨다.

아들이 신학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였지만 이제는 선교사로 자신의 곁을 떠나보냈다. 

 

산자는 또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이 땅을 떠나간다. 

혼자서 걷든, 같이 걷든 인생길을 걸어 간다. 걸어가야만 하고 걸어 갈 수밖에 없다. 

고달픈 인생길 .... 

잠시 숨을 몰아 쉬고 다시 힘을 내어 주님 부르시는 날까지 걸어간다. 

이럴때면 인생예찬론자가 아니고 허무주의자가 되고 만다. 

찬란히 빛나는 태양이 아니라 어둠 속에 조용히 비가 내리는 것이 더 어울린다. 

 

시간은 멈추어 주지 않는다. 

고인을 땅에 묻듯이 모든 것들을 가슴에 묻는다. 

그리고 지난 날들의 모든 삶의 흔적들을 기억 저편으로 떠나보낸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진다.

가물가물한 기억의 편린 몇가지만 남게 되겠지.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성도 ....

이 땅의 삶은 산자들의 몫이다. 

천국이라는 소망의 끈을 붙잡고 오늘도 걸어 간다. 

 

경건해지는 아침이다. 

오늘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장례식을 거행하는가?

오늘도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새 생명들이 태어나는가? 

산 자들은 또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직장을 가고, 아픈 자들은 병원을 찾고 ....

 

인생이란 것이 ....

 

'2024년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24.03.21
봄소식  (0) 2024.03.14
욥기서의 인내  (0) 2024.02.29
2월의 마지막 날  (0) 2024.02.29
감기  (1) 2024.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