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영성일기

향유 옥합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3. 22. 10:33

본문 : 마가복음 14장 1-10절

 

유월절과 무교절 이틀 전이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한 흉계를 찾지만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민란이 무서워 계획을 연기한다.

 

한 여인이 값진 향유, 곧 순전한 한  나드 옥합을 가지고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붓는다. 

어떤 사람들이 삼백 데나리온 이상 나가는 비싼 향유를 함부로 사용한다고 책망하고 괴롭히자

예수님은 여인이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잘한 행동이니 가만두라고 나무라신다.

덧붙혀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기억하리라고 하신다. 

 

유다는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갔고 그들은 기뻐하며 돈을 주기로 약속하며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엿본다.

 

오늘 본문에는 세 부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첫째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며, 둘재는 한 여인(아마도 마르다의동생 마리아)

그리소 세번째는 유다이다. 

 

복음서에는 이 사건의 시기를 달리 기록하고 있다.

마태와 마가는 최후의 만찬 바로 앞에 두고 있으며,

요한은 한 주 앞선 시점,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직전의 시점에 두고 있다.

저자들이 기사들을 시간 순서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관련되어 기록했을 것이다.

마가는 마리아의 헌신과 유다의 배신을 대비하기 위해서였으리라 생각한다.  

 

유월절, 출애굽 전날 행했던 유월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준비해야 마땅한 시점에

하나님의 어린 양을 죽일 생각과 흉계를 도모하는 무리들이다. 

무엇때문인가?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항하며, 기득권 유지에 방해되는 인물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가장 중요한 일을 기억해야 한다.

사순절이다.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지금 부활절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처럼 세속적인 이익과 권리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는가?

종교지도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유월절을 대하는 저들의 자세와 마음이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나 또한 세상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본다.  

 

반면에 한 여인은 최선을 다해 자기가 가진 최고의 것으로 예수님을 예배하고 있다. 

여자가 삼백 데나리온 이상의 가치가 나가는 향유를 준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절약하고 아껴 모은 돈으로 가장 중요할 때 쓰려고 구입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물건도 아니면서 그녀의 행동을 책망하며 괴롭힌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간섭하기 원하고 자주 입을 댄다. 

우리는 누군가 특별한 행동을 할 때는

상대방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는데

자기가 가진 가치나 주관에 따라 판단하고 정죄한다.

우리는 성경의 여러 본문들을 통해 이 말을 하는 자가 유다임을 암시하는데,

재정을 담당하던 인물이었고, 공금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이타적인 예배 행위를 칭찬하셨다. 

예수님을 예배하는 본질은 최고의 사랑과 존경과 헌신으로 그분을 대하고

가장 귀한 것을 기꺼이 드리는 것이다.

 

성경에 나타난 마리아의 태도를 보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잘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예수님이 가시는 길, 십자가의 죽음을 이해하고 깨닫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아무 때나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사랑하는 주님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 드리고 대접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도 눈물을 흘리며 붓지 않았을까? 미어지는 마음으로 눈물을 삼키며 말이다.

이런 마리아의 마음과 행동이 부활절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과 자세가 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유다는 왜 예수님을 배신했는가?

유다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깨달았을까?

예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실체를 보았을까?

로마를 전복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 재정부 장관을 기대했는데

노동자 1년치 품삯에 해당하는 향유를 쏟아부은 마리아를 칭찬하심을 보자

마침내 예수님의 나라가 자기가 기대했던 물리적이거나 정치적인 나라가 아님을 깨닫고

예수님을 따르면 돈과 지위에 대한 욕망을 채울 수 없음을 알고

허탈함과 배신감에 사로잡혀 종교 지도자들을 찾아 나선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쪽에서 예수를 넘겨줄 댓가로 혜택과 자리와 돈을 기대하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잘 이해해야 한다. 

성령님이 내 안에 내주하시면서 그의 주권, 통치, 질서, 지배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

현재형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육신이 죽으면 장소 개념인 천국, 미래형 하나님 나라로 이동(아날뤼시스)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신비, 부활의 신비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지만 

믿음으로 그 신비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하나님을 찬양한다. 

 

성령이여 나에게 지혜와 분별력을 주사

이 신비를 잘 깨닫고 이해하고 믿으며 순종하고 따라 살게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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