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5. 23. 11:30

본문 : 사도행전 10장 17- 33절

 

살아 오면서 인간은 얼마나 고집스럽고 변화를 두려워하는지 경험한다.

나 또한 매일반이고 나이가 들수록 더 힘들어 한다.

그래서 노인들이 보수적이다는 말을 듣는다.

변화에 대하 두려움이 인간에게 존재한다.

익숙한 것이 편하고 안전하고 좋다.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노출되면 긴장하고

어떤 상황이 전개될 지 모르는 미래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는다.

 

베드로는 환상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한다.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하여 자신을 찾는다. 

그 일행 중에는 로마 군인도 있다. 아마도 조금은 긴장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성령의 음성은 의심하지 말고 내려가 만나서 함께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조금은 안심하지만 긴장은 늦추지 않는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도착하여 고넬료 집에 도착하자

고넬료가 친척과 그의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고 있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고넬료가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한다.

베드로의 첫 일성이 무엇인가?

"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게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환상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던 베드로는 성령의 말씀을 다시 듣고도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에게 자신을 찾은 이유를 묻고, 고넬료에게도 자신을 부른 이유를 묻는다.

거듭 생각하고, 듣고 또 듣고, 재차 묻고, 내려놓고 더 내려놓으면서 하나님의 뜻에 가닿고 있다. 

그만큼 신중했고 그만큼 어려운 결정이었다.

들려주시고, 보여주시고, 깨닫은 것만큼 한걸음씩 발을 떼고 있다. 

베드로는 서서히 '환대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을 본다.

 

베드로는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는 성령의 지시를 따른다.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고 단순하게 순종한다.

성령의 명령이 오랜 세월 지켜온 율법이나 관습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지만, 세상을 배타적이거나 세상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내 안의 장벽을 허물지 않으면 말씀이 갇히고 복음은 막혀버려 새 시대를 맞이할 수 없게 만든다.

 

오늘 베드로가 변화되어 가는 중요한 과정을 바라본다.

그 결정에 무엇이 작용하고 있는가? 그것은 성령의 말씀하심,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변화의 기준이며 잣대이고 표준이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바른 변화, 올바른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오랜 경험과 습관과 지식들 보다도 위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정해야 변화가 가능하다.

곧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인간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신념과 지식을 쉽게 내려놓지 않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터득된 경험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

증명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고 망설이는데는

실패, 손해, 상황의 악화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요인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자신이 믿고 신뢰하는 안전한 길로 오히려 상대방을 설득하고 이기고 끌여들이려 한다. 

정치인들의 모습 속에서 확연히 들어난다.

대화를 통한 합의, 정반합의 정신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기 주장만이 난무하고 포용과 관용의 정신은 너무나 희박하다. 

참 인간은 고집스러운 존재이다. 완고하다.

성경은 이런 인간들을 '목이 곧다'고 표현하고 있다.

 

오늘 고넬료가 보인 태도는 참으로 열린 마음, 겸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친지들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다 불러서 기다렸고,

베드로를 보자 그 발 앞에 엎드려 극진히 환대한다.

그만큼 간절했고 겸손하였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믿었고, 

베드로를 통해 주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원했다.

그와 그의 사람들은 지금 베드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다.

 

고넬료의 말이 참 인상적이다.

" ....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이 무슨 말인가? 

인간 베드로가 아닌 하나님의 대언자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고넬료를 본다.

이런 마음 상태를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가히 짐작이 간다.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본다.

베드로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의 마음에 다 심겨졌을 것이다.

백 배의 결실을 거두었으리라 확신한다.

늘 예배의 자리에 나아갈 때 이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을 때 이래야 한다. 

이방인 고넬료는 창세 전에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 분명하다. 

때가 되어 베드로를 통해 복음이 들려지게 하고 이제 하나님을 온전히 믿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상황은 다 달라고 우리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이렇게 쉽게 변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분명 카데마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끝가지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마도 유기된 자들이 아니겠는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변하기 위해 계속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베드로 모습이 그의 기질과는 사뭇 다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자기에게 적용해 가는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또한 고넬료의 마음과 자세가 큰 도전을 주는 아침이다.

 

성령 하나님

나 또한 베드로의 자세와 고넬료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